매일 부모님께 전화드린다

3월 3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마음,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by 조이홍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린다. 여든을 넘기신 부모님께 하루의 무게는 젊은이들의 그것과 다를 터였다. 바람 잘날 없던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여섯 개의 여린 씨앗을 대지에 심었고 그 씨앗들이 훌쩍 자라 또 다른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들 역시 씨앗을 뿌렸다. 나무들이 모여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었지만, 숲의 진원지이자 최초의 나무는 갈수록 기력을 잃어갔다. 자연의 섭리니 그저 받아들이자고 하기에 헛헛한 속내가 자꾸 마음을 삐져나왔다. 때론 그 뾰족함이 가시 같아 아렸다. 매일 전화를 드려 안부를 여쭙는 것은 어쩌면 그림자처럼 드리운 허한 심정을 저만치 밀어내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것이라도 거르지 말자 싶었다.


사실 통화 시간은 특별한 이벤트나 사건이 없으면 채 5분도 걸리지 않고 끝난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짧은 5분으로 자식은 만 냥 빚 중 한 냥을 갈음하고, 부모님은 전화기 너머로 들여오는 정겨운 목소리로 자식과 손주의 안녕을 갈음하며 하루를 소박하게 마무리했다. 그렇게 짧은 5분은 고작 5분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호음이 울릴 새도 없이 마치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던 교환수처럼 재빨리 수화기를 드는 건 언제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백 번 중에 한 번 받을까 말까였다. 청력이 약해진 아버지가 텔레비전 볼륨을 크게 올리고 시청하는 탓에 전화기 벨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정을 들은 건 나중 일이었다. 독불장군이던 아버지는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며 더욱 고독해지셨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종종 아버지를 바꿔 달라고 했다. 5분은 그렇게 10분이 되었다.


통화 내용은 별반 특별할 게 없었다. 저녁은 드셨는지,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집에 별 일은 없는지 여쭙는 게 전부였다. 때론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특히 겨울에는 난방비 아끼느라 춥게 생활하지 마시라, 여름에는 전기세 아끼지 말고 에어컨 실컷 작동시키라 청하는 정도였다. 그럼 부모님도 똑같이 호응하셨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내와 아이들은 건강한지 등을 물으셨다, 코로나 시국 이후로는 손발 깨끗이 씻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앞뒤 순서만 조금 바뀔 뿐 1년 365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다정함이 전파를 타고 서로의 가슴에 꽃을 심었다.




그런데 어제 통화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통화 말미에서 갑자기 어머니가 '이번에 누구 뽑을 거야?' 물으셨다. 아버지라면 몰라도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먼저 '정치' 이야기를 꺼내신 적 없으셨다. 순간 어찌나 당황했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박근혜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었다. 평생 살면서 자식한테 칭찬도 꾸중도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와 부모님 말씀에 한 번도 토 달지 않던 아들이 '정치' 문제로 집이 떠나갈 듯 논쟁을 벌였다. 몇 시간이나 계속된 논쟁은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결국 허무하게 끝났다. 그날 이후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 질문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질문으로 질문을 덮었다.

"어머니는 누구 뽑으실 건데요?"

"아빠가 ▲번 뽑으라고 하던데…."

순간 가슴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해일처럼 일어났다. 이번 대선에도 세대 간 대립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왔다. 아들 말이라면 기차 바퀴가 세모라고 해도 믿던 어머니도 정치만큼은 언제나 아버지와 한 편이셨다. 아들이라는 카드는 진작에 유효 기간이 끝나버렸으니 손주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이제 손주들 생각해서 투표해야죠. 미래를 위해서요."

"그럼 몇 번 뽑아야 하는데?"

"차라리 ★번 뽑으세요, 아니면 ■번 뽑으시던가요."

"그래…."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희생하신 어머니께 이번에는 손주들을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한 셈이었다. 백세 시대이고 부모님은 여전히 건강하시다. 두 분도 당신들을 위한 대통령을 손수 뽑을 권리가 있다. 자식이나 손주가 아니라 '나'를 위한 대통령 말이다. 솔직히 ▲번이 정말 부모님을 위한 대통령인지는 잘 모르겠다. ★번이나 ■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성숙한 어른이다. 보고 듣은 내용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해 나에게 주어진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대통령 선거는 이런 열정과 열정이 맞붙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절차이다.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에도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부모님도 그러셨으면 좋겠다. 오늘은 전화드려 안부를 여쭈면서 꼭 투표장에 나가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솔직히 기울어진 언론 지형이 좀 걱정이다. 편파적이고 일방적이며 왜곡된 정보가 난무하는 일부 언론에만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부모님께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깨어 있는 시민이자 자식 된 도리라 믿는다. 이번 선거가 끝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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