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소박한 한 평 텃밭러가 되었는가?

Prologue - 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사계절

by 조이홍

텃밭러는 '텃밭을 가꾸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말 '텃밭'에 영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붙였다. ‘어, 이런 말이 있었던가, 나만 몰랐나?’ 잠깐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는 아니니까.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 언젠가 국어사전에 오를 테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세종대왕께서 아시면 역정 내시겠지만,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자신을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싶어 처음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다. 손바닥보다 조금 넓은 한 평 텃밭을 가꾸면서 농부나 농사꾼이라고 부르기에 왠지 민망했다. 카렐 차페크가 <정원가의 열두 달>에서 지칭한 '채소밭 정원가'는 더더욱 아니다 싶었다. 적당히 부를만한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고민하던 참에 텃밭가, 텃밭지앵 같은 후보들보다 입에 착 달라붙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텃밭러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어쩌다 소박한 한 평 텃밭을 가꾸게 되었을까? 이 이야기부터 먼저 풀어놓아야겠다.


한 평 텃밭을 가꾸게 된 게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마당과 텃밭이 딸린 집에서 자랐지만, 어른이 되어 꼭 텃밭 있는 집에서 살겠다거나 텃밭을 가꾸고 싶다고 꿈꿔 본 적이 없었다. 텃밭은 싱싱한 푸성귀가 가득한 할머니의 곳간이자 동시에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자라는 어머니의 안식처였다. 두 분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을 테지만, 어린 내게는 온갖 벌레와 잡초가 무성해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었다. 무서울지언정 텃밭 자체가 꼭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완연한 봄이면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아카시아 나무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났고, 이른 여름 탐스럽게 핀 빨갛고 하얀 장미를 넋을 잃고 쳐다보기도 했다. 보름달이 유난히 밝은 가을이면 살구나무와 사과나무에서 수확한 달큼한 과일들로 주전부리를 대신했고, 이유도 모른 채 새끼손가락에 누나들이 들여준 선홍빛 봉선화 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남아있기를 빌었다. 자연이 내어준 소박한 행복들의 진의를 깨닫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텃밭의 사계절을 즐겼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나날도 많았다.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며, 깻잎, 풋고추나 오이가 밥상에 오를 때였다. 입 짧은 어린아이에게 소시지 반찬 하나 없는 허름한 밥상이 달가울 리 없었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몰랐어도 그 시절 어머니들은 균형 잡힌 밥상을 척척 차려내셨다. 지금이라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외치며 맛있게 먹겠지만, 심술 가득한 철부지는 아무 잘못도 없는 푸른 잎사귀들을 밀어내기에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텃밭과 멀어지는 결정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스마트폰에 담았다면 유튜브에 ‘웃긴 짤’로 수백만 조회수는 족히 기록할 장면이었을 테지만 사실은 무척 위험한 사고였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하얀 반창고를 작은 빵떡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다녀야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어느 날 할머니가 텃밭을 갈아엎는 중차대한 일을 어린 내게 맡기셨다. 국민학교 5학년 아이에게 맡겨도 될 일인가 싶었지만,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지라 더 잘하고 싶었나 보다. 하필 그곳에 곡괭이가 있었다. 삽도 있고 호미도 있었지만 어린 내 눈에 들어온 건 묵직한 곡괭이였다. 개구쟁이였기에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 부리처럼 생긴 곡괭이에 저절로 손이 닿았다. 몇 번이나 곡괭이를 내리꽂았을까? 곡괭이를 높이 치켜든 순간 자루에서 쇳덩이 부분이 툭 빠지더니 머리로 쿵 하고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프다기보다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오히려 외마디 절규는 호미질하던 할머니께 들려왔다. 뚝뚝 떨어지는 피를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꽃무늬 손수건으로 틀어막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향했다. 평생 호된 시집살이를 살던 어머니는 이날 처음 할머니께 역정을 내셨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사건 이후 텃밭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볕 좋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텃밭은 내 삶에 잠깐 머물다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텃밭이 문득 내게로 왔다. 가슴 뻐근한 그리움도, 잠 못 들던 설렘도 없던 기억의 파편들이 아주 구체적인 바람으로 다가왔다. 신혼의 단꿈에 취해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던 시절이었다. 고단한 삶의 무게라기보다 숭고한 가장의 책임감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점심은 김밥 한 줄로 때우고 회사 근처 영어학원에서 CNN 뉴스 수업을 들었다. 그날 교재는 '면역력'에 관한 기사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더불어 주거 환경이나 교육 환경도 개선되면서 오히려 아이들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사회 전체가 커다란 무균실로 변해 면역력이 약해진 아이들이 각종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했다. 뉴스 막바지에 사회자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흙이라도 한 줌씩 먹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했는데 그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굳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회색빛인 도시에서 흙 구경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도 잔디가 깔리고 아이들 놀이터도 푹신한 인공소재가 모래를 대체한 지 한참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흙 한번 제대로 만져볼 기회가 없을 듯했다. 그때 텃밭, 두 글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푸른 파도처럼 넘실대는 초록의 식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이들과 작은 텃밭을 일구리라 마음먹었다. 아빠가 코흘리개였을 때 흙장난하며 놀았듯이 아이들도 흙으로 밥도 짓고 빈대떡도 빚고 두꺼비 집도 만들며 투박한 흙의 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내도 이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날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뿌린 씨앗 하나가 결국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당장 직장을 옮길 수도, 도시를 떠날 수도 없던 우리 부부에게 한 평 텃밭이 제공되는 한적한 변두리 아파트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한 평 텃밭에서는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식물을 가꾸기로 했다. 조그맣고 뽀얀 아이들 손으로 직접 심은 채소를 가꾸고 거둬들여 먹는다면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꿈꾼 <조화로운 삶>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동경하던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닮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인생 수업이 되리라 믿었다. <정원가의 열두 달>을 쓴 카렐 차페크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꿔야 한다고. 그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조차 발밑의 흙만큼 변화무쌍하지도 아름답지도 경외할 만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땅을 딛고, 흙을 만지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한 평 텃밭러로 다시 태어나고 강산이 한번 바뀌었지만, 흙은 쉽사리 속내를 내보이지 않았다. 열 길 물속보다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이라면, 사람 속보다 헤아리기 힘든 게 흙이었다. 어느 해에는 씨앗을 뿌려두고 너무 바빠 잡초도 뽑지 못하고 제때 물도 주지 못했는데도 온갖 채소들이 텃밭을 한가득 풍성하게 채우더니, 또 어느 해엔가는 주말마다 갖은 정성으로 보살펴도 시름시름 앓는 식물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기만 했다. 한 평 텃밭을 메운 검푸른 흙은 아무것도 기약하지 않았기에 때론 감탄사를, 때론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흙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지에는 닿지 못했지만 경외할 대상이라는 데는 공감했다. 대지의 신 가이아는 보통 인자한 어머니로 비유되지만, 한 평 텃밭은 차도남과 츤데레를 반반씩 섞어 놓은 탈신화적 존재에 가까웠다. 그저 계절의 순환에 따라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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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의 첫째 아이와 2012년의 둘째 아이

아빠 엄지손가락을 꼭 움켜쥐고 텃밭에 오르던 아이들이 어느새 아빠 키만큼 자랐다. 텃밭을 가꾸고 흙과 부대끼며 자란 덕분에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주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여전히 아이들이 텃밭을 가꿀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공부와 세상에 더 관심이 많은 중학교 3학년 첫째 아이는 텃밭에 발길을 끊은 지 3년이 넘었고, 게임과 유튜브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교 6학년 둘째 아이는 아빠에게 아쉬운 부탁할 때만 겨우 따라나섰다. 이제 한 평 텃밭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내다 팔 만큼 많지도 않고 더는 아이들에게 멋진 인생 수업을 해줄 수도 없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텃밭에 오른다. 잘 키워내리라는 욕심은 빗물에 흘려보냈지만, 이웃 텃밭에 비해 초라하지는 말아야지 싶어 모종삽을 챙겨 잡초를 뽑고 잔돌을 제거한다. 할 일도 많지 않은데 한 시간은 훌쩍 간다. 언제부턴가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비타민처럼 느껴졌다. 주말마다 텃밭에 오르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고작 한 평 텃밭에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냐며 눈을 흘긴다. 손바닥만 해도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아내는 모른다. 아빠에게도, 남편에게도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20120411_170551.jpg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 귀가하는 텃밭러 삼총사, 벌써 10년 전이다.>

텃밭러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계절을 경험한다. 아무리 게으른 텃밭러라고 해도 계절의 변화를 깨닫지 못할 만큼 아둔하지는 않은 법이다. 텃밭을 가꾸지 않았다면 계절 변화는 날씨 보도나 기온에 민감한 동료들의 옷차림에서 알아차렸을 터였다. 남들보다 먼저 계절 변화를 감지한다고 딱히 좋은 점은 없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그저 조금 신기할 뿐이다. 어김없이 제 차례를 찾아 돌아오는 계절도, 불청객처럼 불현듯 찾아온 노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씨앗이 무거운 흙을 뚫고 싹을 틔운다는 사실도.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는 없어도 아이의 시선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제법 즐겁다. 매년 반복하는 일이지만,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기에 올해 한 평 텃밭의 사계절도 여지없이 궁금하다. 과연 이 작은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발길을 따라 자연으로 나들이를 떠날 시간이다. 준비물은 필요 없다. 따뜻한 차 한 잔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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