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러의 봄은 언제 시작되는가?

<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사계절> - 봄 1장

by 조이홍

흔히 봄을 만물이 태동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봄의 활기가 얼마나 역동적이면 세상에 있는 갖가지 모든 것이 생생한 기운을 싹 틔운다고 표현했을까? 봄의 거룩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지만, 솔직히 봄은 대진운이 좋았다. 모질게도 추운 겨울 다음에 오는 덕분에 다른 계절보다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오죽하면 ‘희망찬 앞날’이나 ‘인생의 한창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도 봄이라고 할까! 여름이나 가을 다음에 왔다면 지금 누리는 명예의 절반밖에 누리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모든 면에서 겨울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덕분에 봄은 언제나 멀리서 찾아오는 반가운 친구의 자격을 누린다. 겨울이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한 진중한 수묵화라면 봄은 다채로움으로 가득한 파스텔톤 수채화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세상이 포근한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미풍으로 사르륵 녹아내리고 적막했던 대지에도 푸른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면 사람 마음도 덩달아 두근거린다. 봄은 이유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어도 자꾸 설레는 계절이다.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조바심이 부풀어 오른다. 그저 달력의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2월 28일과 3월 1일이 무에 그리 다를까? 그러나 3월 1일이 되면 세상도 사람도 기어이 어제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만다.


북반구에 자리한 우리나라는 통상 3월부터 5월까지를 봄이라 일컫는다. 가끔은 심보 고약한 동장군이 때늦은 꽃샘추위로 3월에도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 옷장 안에 정리해 둔 두꺼운 외투를 기어코 다시 꺼내 입게 한다. 살을 엘 듯한 추위에도 사람들은 이를 두고 겨울이라 부르지 않고 '꽃을 샘내는 추위(꽃샘추위)'라고 호기롭게 부른다. 단 하루라도 봄의 정취에 취한 사람이라면 사나흘 추위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마음속에는 벌써 개나리며 진달래,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으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봄은 오지 않겠는가. 기온 변화에 따라 계절을 구분하는 기상학에서는 일 평균 기온이 5도 이상으로 오른 후 9일간 유지되면 그 첫 번째 날을 봄이 시작하는 날로 정의한다. 지난 수십 년간 기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을 기준으로 봄의 시작일은 3월 8일 전후였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24 등분한 절기상으로는 입춘(立春)을 봄이 시작하는 날로 본다. 올해 입춘은 한창 추웠던 2월 4일이었다. 가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장범준의 ‘벚꽃 엔딩’이 처음 라디오에서 들리는 날을 봄의 시작이라고 정의할지도 모른다. 새로 사귀기로 한 연인이 '오늘부터 1일'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듯이 텃밭러에게도 봄 1일 차가 존재한다. 과연 소박한 한 평 텃밭에서 봄은 언제 시작될까?


혹자는 텃밭에 새싹이 돋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대부분 텃밭에서는 한해살이 식물들을 주로 키우기에 바퀴벌레 급으로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초를 제외하면 저절로 싹트는 생명은 없다. 그럼 텃밭에 씨 뿌리는 순간 텃밭러의 봄이 시작되는 걸까? 텃밭 가꾸기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텃밭러의 삶은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반은 옳고 반은 그르다. 한 평 텃밭이라도 고된 노동이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온다. 텃밭러의 봄은 그해 처음 텃밭에 발을 내딛는 날 시작된다. 운동 삼아 텃밭을 둘러보는 건 예외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나긴 겨울잠에 들었던 텃밭을 깨워 곡괭이나 삽으로 흙을 뒤집어 놓는 날이 봄 1일 차다. 단순히 흙을 갈아엎는 데 그친다면 노동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당연히 진짜 노동이라고 부를 만한 플러스알파가 숨어 있다. 자연이 내어주는 대로 거둬들인다고 점잖게 말해도 욕심을 내려놓기란 어려운 법이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텃밭러가 무소유를 설파하는 고승처럼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으니 약간의 보험도 필요한 법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온갖 채소를 길러내느라 지친 텃밭에 자양강장제가 필요했다. 게다가 올해는 다른 해보다 철저히 준비해야만 했다. 지난 두 해 동안 브로콜리나 고추 같은 몇몇 식물들이 시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의 경험과 냉철한 분석에 의하면 압축 계분이 문제였다. 압축 계분은 야리꾸리한 냄새도 나지 않고 부피가 작고 가벼워 사용하기 편리했다. 한 평 텃밭은 살인적인 경사면과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는 길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계단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맨몸으로 걸어도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한 손으로 들기에 충분한 압축 계분을 사용했던 건 매우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실패 원인으로 지목된 압축 계분을 계속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40ℓ짜리 정통 계분과 식물에 좋다는 다양한 흙이 혼합된 30ℓ짜리 ‘쑥쑥’을 함께 뿌렸다. 하나도 아니고 무거운 포대를 두 개나 이고 지며 험악한 동네 뒷산을 오르자 히말라야 고산등반에서 안내인 역할을 하는 셰르파가 불현듯 떠올랐다. 산과 혼연일체가 되는 그들의 위대함을 아주 조금 이해했다. 한 평 텃밭에 오르는 내내 팔과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 고통스러워 세 걸음마다 쉬어야만 했다. 텃밭을 가꾸면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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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꽁꽁 얼었던 텃밭을 파종하기 적합한 땅으로 일구어 내면서 텃밭러의 봄은 시작된다>
3월12일 (9).jpg <이 무거운 걸 들고 혼자 텃밭에 올랐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는 아들들도 소용없었다!>

한 평 텃밭에 봄은 매해 같은 날 시작된다. 날짜로는 3월 1일, 국경일이자 공휴일인 삼일절 아침이면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태극기를 게양하고 으레 텃밭으로 향한다. 풋내기 시절에는 부지런 좀 떨어볼까 싶어 2월 중순에 텃밭을 찾기도 했지만, 꽁꽁 언 땅은 단 1cm의 곡괭이 질도 허락하지 않았다. 조급함에 서둘렀다가 되레 몸만 혹사했다. 절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었다.


한 평 텃밭을 갈아엎을 때마다 매번 미궁에 빠진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음모론까지 도달하게 된다. 매년 연례행사처처럼 반복되지만, 여전히 작은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 집안에 ‘초파리 자연 발생설’이 있다면 텃밭에는 ‘돌멩이 자연 발생설’이 무시무시한 미노타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황소, 몸은 사람인 괴물)처럼 떠돌아다닌다. 한 자리에서 10년 동안 한 평 텃밭을 가꿨다. 매년 봄이면 흙을 갈아엎고 잔돌이나 자갈을 골라냈다. 작은 돌멩이들은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텃밭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규모가 작으니 흙을 갈아엎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했다. 반면 돌 고르기는 만만치 않았다. 한 시간은 오롯이 몸을 웅크리고 흙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흙 갈아엎기가 육체노동이라면 돌 고르기는 정신노동에 가까웠다. 몸은 힘들지 않지만, 정신이 피폐해졌다. 왜 매년 한 평 텃밭에서 이렇게 많은 돌이 나오는 걸까? 카렐 차페크의 말처럼 변화무쌍한 흙이 겨우내 돌멩이를 낳기라도 했단 말인가? 한 평 텃밭은 말 그대로 고작 3.3㎡밖에 되지 않았다. 30~40cm 정도 깊이로 파내더라도 이런 작은 규모에서 나온 흙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도 한 해도 빠짐없이 돌 고르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골라내는 돌의 양도 결코 적지 않았다.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라도 제보해야 할 판이었다. 어느 해엔가는 독하게 마음먹고 좀처럼 텃밭 일에 나서지 않는 아내까지 가담해 네 식구가 한 평 텃밭에 달라붙어 돌 고르기를 했다. 이제 더 이상 잔돌이나 자갈은 없겠지 싶었는데 웬걸 다음 해에도 그만큼의 돌멩이가 발견되었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결국 음모론에 이르게 되고 만다. 누군가 우리 텃밭에 의도적으로 작은 돌멩이들을 가져다 놓는다고 의심할 수밖에. 하지만 ‘왜?’라고 질문하면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평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이웃들과 나누면 나눴지 원한을 사거나 피해 줄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모두 선량하지 않던가! 이런저런 잡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어느새 지루한 돌 고르기도 끝이 보였다. 그럼 돌멩이 자연 발생설이나 음모론 따위는 배양토(식물을 기르는 데 쓰기 위해 거름을 섞어 기름지고 영양분이 많게 한 흙)에 섞어 한 평 텃밭에 묻어 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분이 산뜻해진다. 마침내 한 평 텃밭이 봄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얼핏 보면 아직 투박한 흙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어떤 식물이라도 기꺼이 길러낼 어머니의 온기를 품고 있으리라. '흙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 작은 씨앗 하나 심지 않았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싱그러운 초록 물결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한 평 텃밭에 봄맞이가 끝나면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몇몇 텃밭은 이미 봄맞이가 끝났고 몇몇은 봄맞이로 한창 바쁘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한겨울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텃밭 가꾸기를 즐길 테니 말이다. 이미 봄맞이가 끝난 텃밭들은 죄다 우리 아파트 '텃밭 4대 천왕'이 가꾸는 공장식 텃밭이다. 이분들은 전문 농사꾼 못지않게 농사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60~70대 어머니들이다. 모든 입주민에게 공평하게 한 평씩 제공되는 텃밭을 다양한 이유에서 다수 경작하는 이분들은 텃밭을 향한 과도한 애정만 제외하면 다정한 이웃이자 훌륭한 조언가들이다. 텃밭 가꾸는 데 필요한 정보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주로 텃밭 4대 천왕께 조언을 구한다. 그럼 마치 무술영화에 나오는 고수들처럼 텃밭이나 식물에 관해서 척척 알려 주신다. 때로는 모종을 나눠주어 이미 꽉 찬 한 평 텃밭 어디에 공간을 내야 할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앞집에 사는 이웃과는 몇 년째 데면데면하지만 텃밭러들끼리는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소박한 텃밭러에게 이제 막 봄이 시작되었다. 한 평 텃밭의 사계절이라는 긴 여정 중에 고작 첫걸음마를 내디뎠을 뿐이다. 보람찬 하루였다고 스스로 인정하려면 아직 가야 할 곳이 남았다. 앞으로 몇 주간은 문턱이 닳도록 찾아야 할 장소였다. 이곳에 들르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서 어쩔 줄 모른다. 과연 소박한 텃밭러를 설레게 하는 이곳은 어디일까? 잔뜩 흙이 묻은 신발을 털고 외출할 차례이다.




이 글을 쓰고 씨 뿌릴 날을 한가로이 기다리는 주말 아침, 기어코 꽃샘추위와 함께 봄눈이 내렸다. 살포시 눈 덮인 텃밭이 제법 운치 있어 보이지만, 이른 봄에 재배를 시작하는 시금치나 대파를 심어 둔 부지런한 텃밭러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갈 터였다. 기껏 심어놓은 식물들이 얼어 죽기라도 할까 봐 텃밭에 대형 난로라도 가져다 놓고 싶을 터였다. 홀아비 마음은 홀아비가 알고 과부 마음은 과부가 안다고 텃밭러의 마음은 텃밭러가 가장 잘 안다. 가끔 ‘저 밭은 도대체 뭘 했길래 심는 거마다 잘 돼?’하며 약간의 질투심이 발동되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다. 결코 남의 텃밭에 해코지하거나 악어의 눈물 같은 위로는 하지 않는다. 텃밭러는 텃밭에서 언제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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