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사계절> 여름 3장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에 인격을 심어주거나 감정을 불어넣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대상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문제적 시(詩)들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감성적인 시가 그렇다. <스며드는 것>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간장 게장을 밥도둑이라 찬양하며 흰쌀밥 두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울 수 있을까?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대목을 읽고 어느 누가 갓 지은 밥에 내장과 알을 섞어 게딱지에 쓱쓱 비벼 먹을 수 있을까? 인간은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 <너에게 묻는다>와 <연탄 한 장>은 또 어떤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나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이 같은 강렬한 시구를 읽은 이가 골목 어귀에 널브러진 노쇠한 연탄재를 매몰차게 걷어찰 수 있겠는가? 이 시로 덕선 아빠(응답하라 1988)는 술만 먹으면 연탄재를 걷어차는 인간쓰레기, 아니 공공의 적이 되지 않았던가.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은 보고 듣지 만지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나 애써 외면하고 싶은 진짜 현실 세계를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아(我)와 비아(非我)의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그러니 시인은 게을러서는 안 되며, 독자는 시집 한 권 사들고 타자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여기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이번에는 앞의 예시와 상황이 좀 다르다. 자연과 인간에게 유익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평범하지 않은 외모 때문에 인간에게 종종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다, 바로 '지렁이' 이야기다. 故 이외수 선생님은 지렁이를 다음과 같은 강렬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이 한 문장에서 지렁이가 덮어쓴 억울한 누명이 절절히 배어 나온다. 도대체 지렁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찢기고 짓이겨지고 날카로운 바늘에 찔려 수몰되어야 하는가? 아직 어떤 시인도 이런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일까?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한 마리 지렁이 되는 것
늦서리에 선득선득해진 겉흙이 봄 햇살에 추적추적해지면
고요한 들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렁이가 꿈틀꿈틀 기어가며
생명의 기운을 토해내는 거라네
어머니 지구가 태초에 부여한 임무를 기억하며
지렁이는, 자기 몸속으로 거친 티끌을 통과시켜
흙을 기름지게 만든다네
매일 싱싱한 상추와 상큼한 오이를 따먹으면서도 몰랐네
지렁이 배설물에는
질소가 다섯 배, 인산염이 일곱 배, 칼륨은 열한 배나
풍부한 걸 나는 몰랐네
어디 그뿐이랴
땅에 굴을 파 공기가 통하도록 만들고
물이 잘 빠져나가면 좋은 밭이 된다는 걸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축복인 이가 또 있던가
인간도 인간에게 축복이지 않거늘
지렁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턴가 '징그러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일설에 따르면 지렁이라는 말이 '지룡(地龍)'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흙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묵묵히 해내니 옛사람에게 길쭉한 환형동물은 신성한 땅의 용으로 보였을 터였다. 지렁이는 주로 썩은 나뭇잎이나 동물의 똥 같은 유기물을 먹는다. 동물의 똥이나 식물의 잎은 그 자체로 토양에 흡수되기 어려워 식물이 자라는데 영양분으로 쓰이기 어렵다. 이때 이타적인 지렁이와 미생물이 등장해 유기물을 잘게 분해한다. 지렁이 배설물은 중성 콜로이드성 부엽토이다. 토양을 균형 잡힌 영양분 덩어리로 만들어 준다. 거름 성분으로 쓰이는 질소, 인산염, 칼륨 외에도 탄소, 아민산 등이 함유되어 있다. 모두 농사에 도움을 주는 천연물질인 셈이다. 게다가 지렁이 생태는 토양의 순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지렁이는 지표의 낙엽 등 유기물을 땅 속으로 운반해 흙과 함께 섭취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표의 유기물은 땅 속으로, 땅 속의 광물은 지표로 순환한다. 인간이 쟁기나 호미로 밭 가는 행위를 지렁이가 일상에서 대신해 주는 셈이다. 지렁이가 많이 사는 토양은 자연스럽게 땅 속에 미세한 굴이 생긴다. 이런 지역의 흙은 스펀지처럼 폭신하고 매우 부드럽다. 또한 지렁이가 땅 속에 만들어 둔 통로는 빗물을 땅 속 깊이 빠르게 침투시켜 식물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돕는다. 지렁이 행동 하나하나에 쓸모없는 것이 있는가? 연탄보다 뜨겁지는 않더라도 바쁜 농사꾼의 일손을 도와주기에 이보다 완벽한 동반자는 없다.
초여름 가랑비가 내리면 '소박한 한 평 텃밭러' 명함을 챙겨 텃밭에 오른다. 귀찮아서 싫다는 둘째 아이도 어르고 달래 함께 나선다. 비가 내리면 온몸으로 호흡하는 지렁이는 땅 밖으로 나들이를 나온다. 땅 속에 가만히 있으면 익사하기 때문이다. 이웃의 텃밭을 탐할 수는 없으니 이런 날이 절호의 기회다. 텃밭 주위를 서성이면 쉽게 지렁이들과 마주친다. 대부분 건실한 몸집을 자랑하는 훌륭한 선수들이다. 간혹 뱀인가 싶은 녀석들도 있다. 재빨리 뛰어가 "당신을 스카우트하겠습니다." 하며 명함을 내민다.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천연 작업장, 하루 4시간, 일주일에 4일 근무, 연차 제공 등 파격적인 조건에 다들 이적을 수락한다. 둘째 아이가 모종삽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스레 한 평 텃밭으로 지렁이를 옮겨간다. 대여섯 마리만 스카우트해도 천하를 얻은 것처럼 뿌듯하다. 자연이 내어주는 것들로도 한 평 텃밭은 온갖 식물을 키우기에 좋은 땅이 된다. 고슬고슬하고 폭신한 땅에서는 아삭하고 향긋하고 싱그러운 채소들이 자란다. 눈에 띄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언제나 충실히 맡은 일들을 해내는 이들이 있다. 자연에서 얻기만 하는 건, 그것도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로채고, 심지어 망가뜨리기까지 하는 빌런은 내가 아는 한 우리 인간밖에 없다. '지렁이 함부로 죽이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배설물만으로 이롭게 한 적이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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