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사계절> 텃밭러의 사색(1)
지하철역도 번듯한 상가도 없는 동네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건 새로 지은 말끔한 아파트와 적당히 한적한 시골 풍경이 마음에 들었서였다. 본디 '촌사람'이라 무의식적으로 더 끌렸을 터였다. 시야를 가로막는 고층 건물과 불야성을 이루는 번화가가 없으니 불편할지언정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단지 앞으로 피라미들이 헤엄치는 실개천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초록이 무성한 마을 뒷동산과 연결되었다. 변두리 후미진 동네에 세대수도 얼마 되지 않는 아파트 단지가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목가적인 풍경이 그런대로 운치 있었다. 신접살림을 차린 신도시 역세권이 생활하기 편리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태어날 아이들에게 역세권보다 흙세권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아파트 단지 뒤편으로 작은 산에 오르는 길 중턱에 '한 평 텃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박한 한 평 텃밭러'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느새 아이들이 텃밭보다 세상(공부, 친구, 게임, 아이돌 그룹)에 관심 가질 나이가 되었다. 늘 셋이 함께 오르던 길을 언제부턴가 혼자 터벅터벅 걸었다. 한 평 텃밭에 이르는 '침묵의 계단'을 오르면 외롭기는 해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몽글거렸다. 뭐 대단한 작물을 수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가슴이 설렜다. 기억을 더듬으니 언젠가 이 같은 두근거림에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백 원짜리 동전 몇 개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오락실로 뛰어가던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혹시라도 동전을 잊어버릴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미친 듯이 달렸다. 가끔 넘어졌지만 작은 상처쯤 문제 되지 않았다. 오락실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짧지 않은 거리를 내내 뜀박질한 탓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내가, 내가 아닌 무엇, 이상적인(어린아이 시각에서) 존재로 변신한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작고 연약한 아이가 근육질의 파이터(게다가 마음껏 장풍도 쏠 수 있는)로 다시 태어났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태평양 상공을 날거나 여자 친구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공룡이 되기도 했다. 그저 작은 틈새로 백 원짜리 동전 하나만 밀어 넣으면 충분했다. 숙제나 공부 따위는 까맣게 잊고 눈앞에 펼쳐진 모험의 세계에 풍덩 뛰어들었다. 텃밭 계단을 오르면 그 옛날 오락실로 질주하던 천둥벌거숭이 어린아이의 순박한 마음이 희미하게나마 '나 여전히 여기에 있어' 하고 신호를 보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두근거림은 그 신호에 대한 응답일지도 몰랐다.
어린아이의 티 없이 맑은 심상으로 텃밭에 오르더라도 눈살을 잔뜩 찌푸릴 때가 종종 있다. 서부개척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텃밭 주변은 '개간 사업'이 한창이다. 마치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바흠(톨스토이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주인공)처럼 1평방미터라도 더 확보하려는 일부 텃밭러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입주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평씩 제공되었지만 열 평, 스무 평 이상 소유한 이들이 생겨났다. 그런 텃밭들을 '공장식 텃밭'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너른 텃밭 사이사이로 자투리 땅들이 제법 많았다. 어차피 '텃밭' 내에 있는 빈 땅, 놀리느니 품 들여 일구어 농사지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남 일에 참견하지 않는 성향도 한몫했다. 그저 한 평 텃밭에서 소박한 텃밭러로서 유유자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실수였다. 예외를 두면 안 됐다. 모두 공평하게 한 평씩 사용하는 텃밭에서 그 이상 소유하는 사례가 생기자 해를 거듭할수록 텃밭이 늘어났다. 경주마가 앞만 보고 질주하듯이 욕심이 욕심을 낳아 공유지(共有地)가 사유화되었다. 널찍했던 통로가 좁아지고 반듯했던 텃밭 주변도 눈에 딱 거슬릴 정도로 훼손되었다. 누군가는 땅을 개척하는데 방해된다고 나무를 댕강 잘라버리기도 했다. 한가로운 주말 농장을 추구하던 '여백의 미'는 사라졌고 자가 증식하는 바이러스처럼 텃밭 경계선도 점점 확장되었다. 누군가는 뒷동산을 향해 북진했고, 다른 누군가는 아파트 단지를 향해 남진했다. 누가누가 많이 확보하나 경쟁이라도 하듯이.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이론'이 있다. 소유주가 없는 공동의 목초지에서는 더 많은 소를 먹이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소를 끌고 와 풀을 먹인다. 그러면 공유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황폐화되고 만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유 자원을 함부로 사용하면 파멸에 이른다는 섬뜩한 이론이다.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주장한 이 이론은 전제에 몇 가지 오류가 있지만, 한 귀로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유한한 자연을 향한 무한한 욕망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역사를 통해 수없이 봐오지 않았던가! 굳이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는 현재 진행형이니까. 공유지를 개간해 텃밭으로 만들고 훌쩍 이사라도 가면 어떻게 될까? 관리되지 않은 텃밭은 흉측하게 변할 수 있다. 일 년 내내 개간 사업을 지속하니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요한 주민들의 마음에 '욕망의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 평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우리도 개간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리 없다.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텃밭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둘째 아이도 매번 아빠를 꼬드긴다. 한 평만 더 하자고 말이다. 욕심은 경쟁을 낳고 경쟁이 다시 욕심을 부추긴다. 어딘가에서 끊지 않으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코 멈출 수 없다. 현실적인 문제는 또 있다. 텃밭 수도요금은 공공으로 부담하는데 원칙상 한 세대당 한 평씩 텃밭을 가지므로 한 평을 경작하는 소박한 텃밭러도, 공장식 텃밭을 경작하는 텃밭러도 똑같은 요금을 부담했다. 그 금액이 결코 많지는 않겠으나 불공정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평 텃밭에서 나오는 쌈채소며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 셀러리 등을 미처 다 먹지 못한다. 풋내기 시절에는 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그대로 버리기도 했다. 몇 해 전부터는 층간 소음 문제로 늘 미안한 아래층과 옆집, 위층과 나누어 먹는다. 아이들 편에 오이나 호박을 몇 개 들려 보내면 이웃들도 꼭 무언가로 답례했다. 쿠키며 과일, 때론 용돈을 쥐어주기도 해 한때는 아이들이 서로 심부름하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한 평 텃밭 덕분에 '이웃사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웃사돈' 정도는 되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히 서로를 배려하는 사이. 주말 이른 아침, 위층 네 살배기 아이가 쿵쾅대며 뛰어다녀 잠을 깨도 '오늘 운동회날인가 보다' 하지 뛰지 말라고 항의하지 않았다. 텃밭을 일구는 가치는 딱 이만큼이면 충분했다. 톨스토이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땅은 결국 한 평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텃밭러에게는 얼마큼의 텃밭이 필요할까? 단언하건대 한 평이면 충분하다. 어느 여름날, 불볕더위로 머리카락마저 불타버릴 것 같은 날에는 그 한 평도 축구장 넓이로 느껴질 터이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참아내는 것이 진정 소박한 텃밭러의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