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사계절> 가을 1장
"아마도 중년은 켜켜이 쌓인 껍데기를 벗는, 혹은 벗어야 하는 시기이다. 야망이라는 껍데기, 소유욕이라는 껍데기, 자아라는 껍데기…, 자만과 그릇된 욕망, 가면과 갑옷 말이다. 사람들은 경쟁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갑옷을 입은 것이 아니었던가? 만약 경쟁을 그만둔대도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 더 빨리 벗어내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중년에는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찬란한 해방인가!"
여성 파일럿 겸 작가이자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내 앤 모로 린드버그가 쓴 <바다의 선물>에 나온 이 문장을 읽으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지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어 가슴 한 구석을 콕콕 찌르는가 싶으면, 문장 자체(비록 번역일지라도)도 질투 날 만큼 매력적이다. 나이 듦을 이토록 멋진 메타포로 풀어내다니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언제쯤이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쓸 수는 있을까 싶다. 열심히 운동하면 잔근육이라도 늘어나는 법인데 어찌 글 쓰기 근육은 늘어나는 법이 없는지 땅이 꺼져라 한숨만 깊어진다.
다른 한 편으로 이 문장을 가만히 읽으면 한 평 텃밭의 '가을'이 떠오른다. '중년' 대신 '가을 텃밭'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도 왠지 정서적으로 묘하게 잘 들어맞는다. 단어 하나 바꿀 뿐인데 한가로운, 다소 적막한, 가을 텃밭의 풍경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누군가는 갑자기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라도 텃밭을 일구며 두 계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해하리라. 화려하고 싱그러운 여름이 지나면 껍데기도 갑옷도 훌훌 털어버린 날것 그대로의 가을 텃밭이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평 텃밭의 가을은 봄만큼이나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다. 여름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채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땅을 솎아주고 잔돌을 고르며 좋은 보약이 되어줄 압축 계분을 겉흙에 고루 뿌려준다. 하지만 시작이라는 의미는 같을지언정 결과는 사뭇 다르다. 싱그러움이나 생기로 가득했던 작은 공간은 아늑함이 꿰찰 터였다. 경쟁도 없고 욕심은 더더욱 내려놓는다. 만물이 태동하는 봄의 정기가 소박한 텃밭러의 욕심에 불을 지핀다면, 늦여름의 뜨거운 바람은 한껏 달아오른 욕심을 다시 잠재운다. 무더운 여름날, 소박한 밥상을 푸짐하게 만들어 준 온갖 채소들을 길러내느라 고생한 텃밭에게 "그래, 너도 좀 쉬었다 가야지." 다독인다.
8월 마지막 주말, 아직 남아 수줍게 피어 있는 호박꽃, 오이꽃, 가지꽃, 그리고 토마토꽃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헬렌 니어링 여사를 흉내 내 고맙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순환하는 계절 사이에서 텃밭러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당한다.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 채소들을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배추와 무를 심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텃밭 4대 천왕'처럼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지는 않지만, 왠지 찬 바람이 불 때면 속 뽀얀 배추와 채수 내릴 때 그만인 무가 그리워진다. 어쩌면 확증 편향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어 한여름을 불꽃처럼 살다 간 녀석들과 작별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름 울창했던 한 평 텃밭을 갈아엎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에 비해 뿌리들은 참 쉽게 뽑혀나갔다. 흙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굵은 땀인지 눈물인지는 하늘만이 알 터였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여름 채소들의 흔적을 지운다. 울퉁불퉁 보기 싫은 땅을 쟁기와 호미로 고슬고슬하게 만들어주면 가을맞이는 끝난다. 그리고 일주일, 고생한 한 평 텃밭에 늦은 여름휴가를 허락한다.
일주일 후, 조금 모자란 휴가를 끝낸 한 평 텃밭에 배추 모종 여섯 개를 심었다. 배춧잎은 매번 인간이 먹는 것보다 애벌레에게 양보하는 부분이 훨씬 많지만, 지난해 한 번 쉬었으니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한 평 텃밭의 테루아(프랑스어로 와인을 재배하기 위한 제반 자연조건을 총칭하는 말. 토양, 품종, 기후 등)는 특정 채소와는 상극이고 안타깝게도 배추도 그 무리에 속하지만, 고추 농사가 잘된 데 한껏 고무되어 심기로 결심했다. 여섯 포기 중에 하나라도 건지면 손익분기점은 넘는 셈이니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나란히 심었다. 무는 씨앗으로 심었다. 누가 정해 놓은 방식도 아닌데 배추는 모종으로, 무는 씨앗으로 심었다. 배추를 씨앗으로, 무는 모종으로 심어도 상관없을 테지만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전부터 내려온 가문의 전통 비법으로 증류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사소한 루틴 하나 바꾸기 싫어하는 걸 보면 소박한 텃밭러도 은근히 귀차니스트다. 대파도 브로콜리도 떨어져 나간 화분과 텃밭 가장 후미진 곳에는 쪽파를 심었다. 장모님이 구해 주신 쪽파는 심기만 하면 금방 쑥쑥 자랄 것처럼 생글생글하더니 정말 심자마자 마법처럼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자랐다. 무럭무럭 자랄 쪽파들이 올 겨울 김장에 어떤 활약상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된다.
시끌벅적했던 한 평 텃밭의 파티는 끝이 났다. 누구보다 푸르르고 열정적인 채소들은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들을 다시 만나려면 또 한 번 계절의 순환에 운을 걸어야 한다. 이별은 슬프지만 늘 그렇듯이 다른 만남으로 잊힌다. 싱그럽고 찬란한 여름 다음에 오는 가을은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직 한 평 텃밭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마지막 바람을 담아 뿌린 무 씨앗들이 튼튼한 아내 다리처럼 무럭무럭 자라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