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되어 보는 완벽한 경험, 집중해서 읽기!
별다른 꿈이 없던 학창 시절, 유일하게 원하던 직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화감독'이었다. 사실 정말 하고 싶은 건 '영화배우'였지만, 우리 집에는 거울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기 객관화와 메타인지를 일찌감치 통달한 덕분에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애초에 접었더랬다. 군사독재시절도 아닌데 자기 검열에 어찌 그리 엄격했는지. 성적이 톱클래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닥권도 아니라 딱히 존재감 없던 고3 학생이 갑자기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하자 말을 잃은 담임선생님께서 즉각 어머니를 호출했다. 두 사람의 합동 작전으로 유일한 장래희망은 일주일 만에 진압되었다. 빠르지도 무섭지도 않았던 질풍노도 시기가 그렇게 온 듯 안 온 듯 스쳐 지나갔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이유는 분명했다. 배역에 따라 여러 인생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한다. 그렇게 선택에 선택을 거듭한 결과가 오늘의 내가 되는데 통상 그 길은 둘 이상이 되기 힘들다. 물론 요즘은 N잡러의 시대, 부캐의 시대지만 그건 고용 시장의 불안에서 오는 불가피한 선택인 경우가 많으므로 예외에 해당할 터였다. 아무튼 그래서 선택하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삶도 궁금했다. 칼 융은 선택하지 못한 삶이 인생의 전환기에 후회와 실망과 불만으로 고개를 쳐든다고 했는데 적어도 영화배우는 그런 시련은 덜 겪지 않을까 싶었다. 스타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아, 지긋지긋한 자기 객관화….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다양한 인간의 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가지 못한 길이 되었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뇌'에 관해 몰랐던 사실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기 위해서는 뇌의 좌우 반구 안에 있는 네 개의 엽(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과 뇌의 다섯 개 층(가장 위의 전뇌, 그 아래 양옆에 붙어 있는 간뇌, 중간층의 중뇌, 그 아래쪽의 후뇌와 수뇌)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수용해야 하는데 처리 속도가 1000분의 1초 만에 이루어진다. 이런 폭풍과도 같은 뇌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마르셸 프루스트는 이러한 읽기의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친밀한 감정을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멋지게 표현했다. 단순히 문장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타인이 되어보는 것, 그것이 '읽기'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뇌과학 실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18세기 영문학을 연구하는 나탈리 필립스는 스탠퍼드 대학교 신경과학자들과 함께 상이한 방식으로 소설을 읽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즉 주의를 집중해서 읽는지 여부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조사해 <제인 오스틴을 읽을 때 당신의 뇌>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소설을 집중해서 읽을 때는 등장인물의 느낌과 행동에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집중해서 읽느냐, 그저 재미로 읽느냐에 따라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달라진다. 촉감에 관한 은유적인 표현을 집중해서 읽으면 촉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신경망인 감각 피질이 활성화되고, 움직임에 관한 글을 집중해서 읽으면 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의 심리학을 연구하는 인지과학자 키스 오틀리는 요크 대학교 동료인 레이먼드 마와 함께 우리가 소설을 집중해서 읽을 때 뇌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식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타인이 되어보는 것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 뇌가 스스로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욕구와 다른 의식과 다른 감정을 가진 완벽한 타인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집중해서 읽는 것만으로 말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뇌가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어 보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만으로 가능하다니 정말 놀랄 노자다. 열아홉 살에 나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다. 가보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마흔아홉 살이 된 나는 더 이상 영화배우나 감독을 꿈꾸지 않는다. 다행이다, 늦게나마 철이 들어서. 게다가 자기 객관화도 정점을 찍었다. 대신 책을 읽는다. 영화배우가 되지 않아도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마지막 남은 배 열두 척으로 300척의 막강한 화력을 지닌 왜적을 무찌르는 장군이 되기도 하고, 하얼빈 기차역에서 원수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 포수가 되기도 하며,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되 여자와 약한 자를 돕고 부패한 세력과 맞서는 탐정이 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멀고 먼 행성으로 탐험을 떠나기도 하고, 수컷 알비노 향유고래를 잡기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를 항해하기도 한다. 어떤 영화배우가 이보다 더 화려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출연료가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룬다는데 그까짓 출연료쯤이야…. 이것은 영화나 동영상은 결코 채워줄 수 없는 책만의 매력이다. 그러니 그냥 읽지 말라. 기왕 읽으려거든 집중해서 읽으라. 여러분도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서가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펼치기만 하면 된다.
※ 이 글에서 인용한 뇌과학 관련 연구는 매리언 울푸의 <다시, 책으로>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