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누가 다이어트를 강요하는가?

by 조이홍

정기적으로 다이어트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거울을 통해 보는 '나'는 항상 적당한 몸매의 소유자입니다. 착각입니다. 아마도 확증편향일 테지요. 거울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투사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거울을 보는 '눈'이 진실을 외면하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다이어트는 무척 힘이 듭니다. 사람이 어떻게 기름진 음식, 맛있는 음식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다이어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몸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입는 옷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벨트 구멍이 점점 앞쪽으로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허리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게으른 뇌'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다이어트에 돌입할 수밖에요.


몸이 '다이어트하라!' 명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그리한 경우는 유구한 '다이어트史'에 단 한 차례밖에 없습니다. 멋지게 옷 입기로 유명한 한 셀럽이 무척 부러웠을 때입니다. 평생 옷태 따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사람을 보며 옷이란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부끄러움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 이상의 용도가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다소 무리해서 알록달록 총천연색 옷을 열 벌이나 장만했습니다. 그전까지 힙합 스타일, 즉 헐렁한 옷을 선호했다면 새로 장만한 옷들은 죄다 몸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평소 몸으로는 절대 소화할 수 없었지요. 한방의 도움으로 한방에 다이어트했습니다. 3개월 만에 10㎏을 감량했습니다. 한 벌을 제외하고 알록달록 옷들을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 셀럽처럼 멋지진 않았지만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스스로 다이어트한 적은 없었습니다.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요. 그리하여 알록달록 옷들은 옷장 깊숙한 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끔 아내가 "요즘 배 나온 거 아니야?"라고 공격해도 "방금 밥 먹어서 그래욧!"하고 받아치며 다이어트와 담쌓던 제게 그토록 힘든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아주 성가신 녀석입니다. 요맘때 여지없이 등장하는데 올해는 더 당돌합니다. 고 녀석 이름은 바로 '상추'입니다. 손바닥만 한 한 평 텃밭에서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는지 먹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가끔 할당량을 떠넘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추는 제 몫으로 돌아옵니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밥 대신 손으로 숭덩숭덩 자른 상추에 닭가슴살, 토마토, 달걀, 오이, 치즈 등을 곁들이고 오리엔탈 드레싱으로 맛을 낸 샐러드를 먹습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일주일에 5일 정도 먹으면 입에서 상추가 자라는 기분입니다. 아래층과 위층에 나누기도 하지만 그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 먹어 치울 수밖에요. 의도치 않게 다이어트 효과가 납니다.

KakaoTalk_20230604_144021310_02.jpg
KakaoTalk_20230604_144021310_01.jpg
KakaoTalk_20230604_144021310_03.jpg

문득 알록달록 옷들이 생각나 꺼내 입어보았습니다. 어라, 왜 이렇게 잘 맞지. 몇몇은 헐렁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10㎏ 감량했을 때 성공하지 못했던 마지막 한 벌, '초록색 바지'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헉! 안 되는 일은 어떻게 해도 안되더군요. 아무리 다이어트해도 굵은 종아리와 허벅지는 어쩌지 못하나 봅니다. 허리춤까지 올릴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결국 그 옷은 아내에게 반 강제로 선물했습니다. 과연 남편 못지않게 튼실한 종아리와 허벅지를 가진 아내는 초록색 바지 입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 에피소드는 기회가 닿으면 소개해 드리지요.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지라….)

KakaoTalk_20230604_144021310.jpg <가운데 세 줄이 모두 쌈채소입니다. 상추와 청겨자가 많습니다>

매년 짓는 한 평 텃밭 농사인데 올해 유독 상추가 넘쳐나는 이유가 뭘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물론 무더위와 잦은 비도 한몫했을 테지만, 사실 올해는 상추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한 줄밖에 심지 않던 쌈채소를 무려 세 줄이나 심었으니까요. 그것도 모종이 아니라 흩어뿌리기로요. 설마 다 자라겠어했는데 정말 다 자라더라고요. 상추 못지않게 청겨자도 대풍이 들어 알싸함을 더해줍니다. 원인은 결국 돌고 돌아 제게 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요. 다이어트 결과가 가히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시 알록달록이들을 입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대신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저주 때문인지 샐러드가 점점 맛없어집니다. 첨가물이 많아지기도 하죠. 가장 언짢은 건 아내에게 "코끼리가 고기 먹어서 뚱뚱한 줄 알아? 채소도 많이 먹으면 살찐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이 말은 주로 제가 다이어트하는 아래를 공격할 때 써먹었던 말이니까요. 언제나 욕심이 화를 부르는 법이고 인생사 새옹지마입니다. 어? 이 글이 이렇게 끝난다고? 네, 열린 결말입니다. 방금 전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긴 샐러드를 먹어 치운 후라 정신이 알딸딸합니다. 상추에 알코올 성분이라도 들어 있는 걸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지개 섬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