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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09. 2023

작은 고추가 맵다

모처럼 텃밭에 올라갔다 고추를 따왔습니다.

한 평 텃밭에선 그렇게 안되던 고추가 올해는 제법 풍년입니다.

실한 녀석들로 고른다고 했는데 실수로 귀여운 녀석 하나가 딸려 왔습니다.

하필 그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영혼은 호기심 많은 청년인지라 작은 녀석을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컥!!!

이게 아니다 싶습니다.

입안이 얼얼했습니다.

얼른 뱉어버렸습니다.

매운 건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니 아픈 게 싫은 건 인지상정입니다.

오이고추, 아삭이고추, 롱그린고추 사이에 덤으로 받은 청양고추 하나를 심었더랬습니다.

운도 없지 작은 녀석이 청양고추였나 봅니다.

저처럼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을 위해 '맵지 않은 고추'가 개량되었습니다.

하긴 최초의 고추, 고추의 조상은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매운맛'을 생존 수단으로 삼았을 터입니다.

그 매운 걸 우리 인간이 꾸준히 공략해 순하고 맛 좋은 고추들로 바꿔놓았습니다.

인간은 참 위대합니다.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매운 고추쯤 안 먹어도 그만인데, 왜 그리 궁금하고 먹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꼭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냐?"

오태식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니 풍문쯤으로 해두겠습니다.

맵지 않은 고추들 사이에 매운 고추 하나를 심으면 비록 맵지 않게 개량된 품종이라도 매운 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주위 환경에 의해 본성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옳았다고 믿었던 사실들이, 사실이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학에 마침표는 없다, 오직 쉼표만 있을 뿐이다."라는 소설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네, 제가 쓴 SF 소설 <Angel of Death-나를 사랑한 스파이>이에 나옵니다.

인간만 위대한 줄 알았는데, 고추도 이렇게 위대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주위 환경에 맞추니 말입니다.


2년 전만 해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절대 금지'를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진짜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기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고, 걱정된다고 말하면 괴담이라고 합니다.

2년 전의 그들과 오늘의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 같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오늘의 그들이 2년 전 자신을 어떻게 설득할지 말입니다.

그리고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 환경에 맞춰나가야 하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말입니다.  


이 글이 이렇게 끝맺음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써보았습니다.

저도 주위 환경에 저를 맞춰가야 하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탑재된 생존 도구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가끔은 이타적인 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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