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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r 16. 2024

사춘기 소녀

<한뼘소설> 11화

 “티파니,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널 지지한단다. 마크도 그럴 거야. 그렇죠, 여보?”

 “오, 물론이지 챈. 티파니는 우리의 소중한 아이인걸!”

 “꼭 두 분 중에 한 분을 선택해야 하나요?” 

 “그렇단다, 얘야. 세계 정부 규정이거든. 너도 이제 어엿한 세계 시민이 되는 거란다.”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엔 전 너무 어리다고요!”

 티파니 목소리에서 신경질적인 쇳소리가 묻어났다. 곧바로 세로토닌 과다 분비가 감지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10대에게서 흔하게 발생하던 현상이었다. 티파니가 이온 워터 한 병을 송두리째 비우는 동안 마크와 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 그들도 티파니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짐작했다. 아주 오래전, 그들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을 계속 끌면 티파니에게도 좋지 않을 터였다. 오염된 지구는 물리적인 육체를 지닌 인간이 살기에 더는 적합하지 않았다. 전(前) 인류의 마지막 소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신(新) 인류 모두가 주목했다. 메타버스 내의 모든 매체들이 연일 그녀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뤘다. 


 세계 인구가 120억 명을 넘어서면서 식량 문제, 주거 문제, 경제적 양극화가 국가 단위 통제를 벗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구는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더 빨리, 훨씬 뜨거워졌다.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의 30퍼센트가 사라졌고. 그 바다 위를 인류 욕망의 잔재들이 선명하게 물들였다. 강대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여기저기서 폭동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 세계 부의 99%를 움켜쥐고 있던 다국적 테크 기업들이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세계 정부 설립과 함께 신(新) 인류 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헛소리라고 비웃었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돈을 가졌다. 비밀리에 인간 수준 AI를 구현한 그들은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쏟아부은 끝에 초지능 AI를 탄생시켰고  ‘프로메테우스’라 불리는 신적 존재가 신 인류 계획을 수행했다. 출산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인간의 육체와 유사한 안드로이드에 자신의 뇌를 업로드하거나 육체를 버리고 메타 버스 안에서 의식을 지닌 디지털 존재로 살아가거나 그대로 늙어 죽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생을 선택했다. 늙어 죽기를 선택한 것은 향수병에 시달리던 극소수 노인들뿐이었다. 마크는 최초의 안드로이드, 챈은 메타버스 내에서 의식을 가진 최초의 아바타였다. 이 둘이 신 인류 계획의 집행관이 되었다. 티파니는 육체를 가진 마지막 인간이었다. 이온 워터 한 병을 다 비우고도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결정했어요. 전 인간으로 남겠어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살래요. 간지럽다는 느낌도 아프다는 느낌도 괜찮아요. 슬플 땐 울고 기쁠 땐 웃고 화날 땐 죽어라 뛰고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격렬함도 느끼고 싶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래요. 제가 좋아하는 걸 계속하려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이제 됐죠? 전 인공 고기로 만든 햄버거나 먹으러 갈래요. 막 배가 고파졌거든요." 


 사춘기 소녀의 돌발 행동에 집행관들은 아무런 디지털 신호도 보내지 못했다. 그때 낮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 인류의 신(神) 프로메테우스였다. 

 "실험체 돌발 행동, 실험체 돌발 행동. 자각몽 프로그램 리셋, 자각몽 프로그램 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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