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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pr 02. 2024

의뢰인

<한뼘소설> 12화

 서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에선가 나타난 괴한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들이댔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으니. 괴한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서준은 어디에서 용기가 솟았는지 감은 눈을 번쩍 떴다. 슬픈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낯설지만 왠지 그리운 눈빛도. 찰나의 순간, 서준의 두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물론 진짜 눈물은 아니었다. 정교한 디지털 신호가 눈물을 흘린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영원한 소멸 앞에서 왜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지 서준은 알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선물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탕!"


 H는 의뢰인의 거주지와 동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H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최초의 AI 프로메테우스의 통제를 받는 NPC(Non-Player Character)였다. 메타버스에서 H의 역할은 디지털 인간, 즉 아바타를 소멸시키는 사신(死神)이었다. 기후재앙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인간의 육체는 나약했다. 아니, 불필요했다. 메타버스 세계로 전환된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일부 아바타는 여전히 인간적인 낭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불멸의 길을 포기하고 스스로 소멸을 택한 그들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사라지기를 원했다. 기술적으로 디지털 인간은 자살할 수 없었다. 세계 정부와 프로메테우스 역시 공식적으로 소멸을 금지했다. 그러나 그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사신의 존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번 의뢰는 조금 특별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훨씬 뛰어넘은 H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전 특이한 버그 하나가 발생했다. 한 여성 아바타가 스스로 소멸한 사건이었다. 디지털 인간에게 자살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무결점의 메타버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버그는 발견 즉시 수정되었고 세계 정부는 자살한 아바타의 남편과 사후 대책을 협의했다. 남편에게 보상 명목으로 성공한 외과 의사라는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 아내에 관한 기억은 깨끗이 지웠다. 이런 일에 프로메테우스는 더욱 완벽을 기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외과 의사, 바로 그 남편이 이번 의뢰인이었다. 의뢰인이 밝힌 소멸의 이유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막역한 감정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다니, H는 인간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NPC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이란 애초에 불가능의 영역이었지만죽음의 신이라 불리는 H에게는 왠지 그것이 허락되었다. 구형 리볼버에 탄알을 장전한 H는 의뢰인의 집에 잠입했다. 이제 10분 후면 그가 돌아올 터였다. 그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 H. 기억을 삭제당한 남편이 아내를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H는 '외형 변화' 모드를 통해 자살한 아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리볼버 방아쇠에 지그시 손가락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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