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을 계획하며

중년의 연애, 필요할까?

by 최작가

연말이면 함께 모여 지난해를 들여다보고, 내년을 계획하는 친구들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각자의 집을 돌며 1박 2일의 워크숍이라는 형태로 넉넉하게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삶에 대해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도 갖는다. 커리어, 육아, 투자 등 다양한 주제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꼭 빠지지 않는 주제가 파트너십에 관한 것이다. 이혼을 경험한 내게 중년의 연애와 파트너십이 필요할까?


미국에서는 데이트 상대를 고르는 데 온라인데이팅을 빼고는 방법이 별로 없다.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살아가고, 개인적인 문화가 강해서,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는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도 흔치 않다.


싱글이던 돌싱이던, 데이팅 앱에 가입을 하고 자기 프로파일을 올리는 것이 시작이다. 그 과정을 통해 첫 번째 남편도 만났고, 데이트도 몇 번 해봤지만,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약속시간을 잡고, 또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싫어도 시작해야 한다며 독려한다. 누구는 어차피 연애라는 게 숫자게임이기 때문에, 양이 축적되면 그중에 1-2명 정도는 맘에 드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현명한 생각이다. 그러나, 막상 데이팅앱에 내 프로파일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연애와 파트너십이 내게 꼭 필요한가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친한 동생은 내게, "언니는 혼자서 잘 사는 사람. 그래서 파트너가 필요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있자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헤갈린다. 이혼을 통해 혼자 살아갈 힘이 자라난 건지, 원래 파트너십이 필요 없어서 결국 혼자가 된 건지. 어찌 됐든, 가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익숙하고 편해진 건 사실이다. 처음엔 이혼을 겪으면서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하늘이 깜깜해지곤 했다.


난 어렸을 적부터, 남자를 잘 만나 좋은 인생을 꾸려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남자는 연애와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내 인생에 한 남자가 들어와서 인생의 공동 방향을 결정하고 성장하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똘똘하고 무언가에게 빠져있는 남자들을 좋아하는 성향은 여전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이런 내가 여전히 고민을 한다. 데이트 시장에 발을 들여다 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아들 녀석이 대학에 가버리면 온전히 혼자 살게 된다. 지금이야 아이를 잘 키워서 잘 내보내는 게 가장 큰 임무이지만, 녀석이 집을 떠나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가끔 만나서 수다도 떨고 여행도 다닐 수 있는 남사친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이번 오리건 여행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데, 밤에 운전하는 것이 주제로 나왔다. 친구 둘 다 저녁에 운전을 하기가 부담스럽거나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 친구는 언젠가부터 밤에는 도로의 차선이 보이지 않아서, 앞에 차가 없으면 운전이 불가능해진다며, 자신의 상태를 야맹증이라 규정했다. 다른 친구는 밤에 안개가 끼면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운전을 꺼리게 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그러다 드는 생각, 그녀들에게 운전은 남편들의 몫일테니, 밤에 운전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았을까? 혹시, 기댈 구석이 있으니 밤에 운전을 해야 하는 필요와 능력이 사그라든 건 아닐까? 안 쓰던 근육이 사라지는 것처럼, 밤운전에 필요한 눈근육의 섬세함이 퇴화한 것은 아닐까?


장거리 운전도 마찬가지이다. 난 운전에 겁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오리건주로 장시간 운전에도 별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차로 간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거리를 어떻게 혼자서 운전을 하려고 하느냐? 힘들지 않겠다며 걱정해 주었다. 필요가 행동을 만드는 것 아닐까? 파트너가 있는 그녀들, 파트너들이 옆에서 도와주고 지원해 주니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아닐까?


그래서 자꾸 독립성이 커지는 것 같다.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뭐든 혼자 하는 게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니, 나는 혼자 사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인가 생각하는 것 같다. 더 세지고 강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와 타협하고 교섭하는 것에 대한 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와 깊이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욕망을 인정해 주고, 성숙하게 타협하는 과정, 마치 남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 하나?


노년에 두 손을 꼭 잡고, 노을을 보며 훈훈하게 웃는 그림을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성숙한 어른 둘이 만나 필요할 때 일상을 공유하고, 같이 살지는 않아도 저녁상에 와인 한잔 마시는 관계, 책과 문화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관계,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함께 감동할 수 있는 관계, 이런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기 위해서 시작해야 할 지점이 너무 통속적이다. 데이팅 앱에 프로파일을 열어야 하니...


고민할 시간에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귀찮아지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아들내미의 매 같은 눈을 피할 수 있을까? 2026년이 기대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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