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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 Dec 12. 2022

인도에서 생긴 일(13)

낭만은 개뿔, 난관에 부딪히다.

 하루 동안 사계를 견뎌냈다. 사막으로 출발할 무렵엔 봄이었다가 한낮 사막을 걸을 때는 불볕더위를 경험해야 했다. 석양이 드리우자 선선한 가을이 되었고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사막의 하루는 마치 현실에서의 365일과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점점 주언에게 마음이 쓰였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연인처럼.





 다행히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듄 근처에 잘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카만 어둠만이 남았다. 낙타몰이꾼들은 별빛을 가로등 삼아 불을 피우고 저녁 바비큐를 준비했다. 은박지에 닭다리를 하나씩 곱게 쌓아 장작 안에 던지면 준비 끝이다. 고구마도 빠질 수 없다. 감자도 몇 개 넣어줬다. 우리는 장작불을 가운데 두고 크게 빙 둘러앉았다. 잠시 불멍을 때리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랑 제 남자 친구는 연상연하 커플이에요. 제가 3살 많아요. 근데 다들 제 남친보고 오빠 같다고. 호호호호. 동안인 것도 사실 별로 좋은 거 아닌데.”


 여자는 여전히 신나 보였다. 여자의 남자 친구도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싫지 않은 듯 맞장구치며 웃었다. 여자의 주도로 다들 통성명을 하고 나니 모두 비슷한 또래였다. 그래 봐야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와 맏이가 5살 차이였다. 영인이 나이를 다 알고 나더니 또래와 함께라 운이 좋은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들이랑 지내는 것도 좋은 경험인데, 나중에 여행 끝나고 보면 또래끼리만 연락이 이어지더라고. 우리 벌써 12명이 친구 된 거니까. 운이 좋고 말고. 안 그래?”


 영인이 옆에 있는 주언에게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졌다. 주언은 피식 웃더니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너는... 왜 혼자 왔어?”


 순간 주언의 질문의 저의를 살피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이 무리에 끼었냐는 말인지, 그보다 더 앞서 인도 여행을 왜 혼자 온 것이냐 묻는 건지 조금 헷갈렸기 때문이다. 영인은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 대신 주언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막 투어를 왜 혼자 왔냐고? 아님, 인도 배낭여행을 왜 혼자 왔냐고? 뭐가 궁금한 건지, 질문할 때는 육하원칙에 의거하진 않더라도 정확히 부탁해요. 여러분.”


 영인의 깐족거림에 주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대답이 늦어지면 분위기가 험악해질까 봐 얼른 대답했다.


 “아, 나는... 그냥 원래 인도 여행이 꿈이어서. 혼자 인도 배낭여행하는 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거든. 타지마할도 보고 싶었고.”


 그랬다.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꿈꿔왔었다. 나 홀로 인도 배낭여행이라. 생각만 해도 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희로애락이 마냥 고생스럽지만도 마냥 힘들지만도 않을 것이라 상상했다. 물론 그 상상은 인도 여행 첫날부터 틀렸다는 것을 몸소 느꼈지만.


 “나는 친구들이랑 오긴 했는데, 흩어져서 다녔다 다시 만나고 그래. 다들 일정이 다르고 원하는 곳이 달라서.”


 “그래. 맞아. 주언이 너 첫날은 여자친구랑 왔었지? 누구더라. 희정이였나? 난 처음에 둘이 커플인 줄 알았다니까.”


 옆에서 거드는 한인식당 매니저의 말에 주언이 말을 멈췄다. 그리곤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아,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들이 있는데 3명. 그중에 하나가 희정이고 또 하나가.”


 “나야.”


 영인이 또 끼어들었다. 그럼, 영인과 주언은 원래부터 친구라는 얘기인가. 희정이는 누구일까. 알 수 없는 질투가 느껴졌다.


 “맞아. 나랑 주언이 이 새끼랑 희정이라고 예쁘장한데 성격 드러운 여자애 하나 있거든. 우리 셋이 왔어. 아, 우리라고 하니까 좀 닭살 돋네. 소름이다. 암튼 희정이랑 얘랑 어릴 때 썸탄 적이 있긴 한데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악. 왜 때려!”


 영인이 말하는 것이 아닌 나불거리는 것이라 느꼈는지, 주언은 영인의 등짝을 후려쳤다. 둘은 잠시 투닥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인도여행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며칠 되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영인은 원래 기질이 사람을 좋아하고 말 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주언은 조금 낯을 가린다며 지금도 이렇게 둘러앉아 있는 것이 약간 어색하다고 말했다. 주언의 얘기 끝에 한인식당 매니저가 말을 거들었다.


 “너네 불알친구라기엔 성격이 너무 다르긴 해. 근데 주언아, 여긴 사막인데. 어색해하면 안 되지. 하긴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친해질 수밖에 없겠다. 서로 소변 대변볼 때 오줌 메이트, 똥 보디가드 해줘야 할 사이들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막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을. 아까 저녁노을이 멋지게 드리웠을 때도 일행 중 누군가는 둔 너머 모래를 파고 소변을 보고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장작불과 별빛이 내린 주언의 까만 동공을 보며 설렐 틈도 없이 꾸룩 거리는 배를 움켜쥐며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피니쉬. 먹어라. 인조이~”


 낙타몰이꾼이 거멓게 그을린 은박지 덩어리를 꺼내어 한 사람씩 나눠주었다. 내 앞에도 커다란 닭다리 하나가 놓였지만 차마 먹을 수 없었다. 당장 화장실부터 해결해야 했다. 손을 덜덜 떨며 카메라를 챙겼다. 그리고 가방 앞주머니에서 휴지뭉치를 꺼내 바지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일행들이 닭다리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를 틈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안 먹고 어디가?”


 이런 씨. 영인이었다. 영인의 말 한마디에 주언과 그 주변 몇몇의 눈동자가 내게 날아와 꽂혔다.


 “아. 하하하. 사진 좀 찍으려고. 저기, 아무도 없을 때 가서 사진 좀 찍고 올게. 먼저 드세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돌아섰다. 등 뒤에서 먼저 먹고 하지, 이따 같이 찍죠, 안 무섭냐는 등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나는 앞을 향해 나아갔다. 몇십여 미터 앞 떨어져 있는 낙타들이 쉬는 장소에 가서 일을 해결할 생각이다. 낙타 무리에 숨어서 볼일을 해결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 부푼 마음과 방광을 부여잡고 사막을 헤치고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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