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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 Dec 01. 2022

인도에서 생긴 일(12)

사막의 중심에서 낭만을 외치다

 인도의 사막은 황량했다. 폐허가 된 우주의 어느 행성 한가운데 서있는 듯했다. 듬성듬성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돋아난 이름 모를 풀, 거친 자갈과 뒤섞인 모래, 생명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주변 풍경에 일행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고운 모래언덕을 상상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엔 오르기도 버거웠던 낙타와 한 몸이 되어갈 때쯤 저 멀리 크게 솟아오른 듄이 보였다. 이제 진짜 사막인가.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이 날 설레게 했다. 어디선가 카메라가 날 찍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영화 세트장 한가운데서 낙타를 타는 여주인공처럼 터번 자락을 휘날리며 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낙타몰이꾼들은 2인 1조로 나뉘어 줄의 맨 앞과 뒤에 서서 낙타를 이끌었다. 나는 맨 앞에 있는 낙타에 타게 됐다. 내가 탄 낙타의 이름은 한국 연예인의 이름과 같았다. 정말 그게 낙타 이름인지 여행자의 국적에 따라 매번 이름이 바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내가 언제 톱스타 등에 올라타 보겠는가.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낙타에 올라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나를 태우기 위해 한껏 등을 숙였던 낙타가 다리를 쭉 펴고 일어설 때면 엄마야라는 비명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노노. 엄마는 꼬레아에 있어. 그만해.”


 결국 인도인 낙타몰이꾼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창피했다. 인도까지 와서 엄마를 찾는 마마걸이라니. 그래. 엄마는 코리아에 있으니까 조금 더 의젓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뒤로는 주언이 낙타를 타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 뒤로 여자의 일행과 영인 일행이 일렬로 늘어서 사막을 누비는 중이다. 잠시 후 낙타몰이꾼들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준비해야 한단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로 불을 지피고 카레를 뚝딱 만들어낸다. 그 사이 우리는 작은 모래 언덕에 둘러앉아 짜이를 한잔씩 홀짝였다. 


 사막에서 먹는 카레맛은 기대 이하였다. 먹을 때마다 모래가 으적으적 씹혔다. 하지만 여행과 사막이란 낭만을 한 스푼 섞어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언제 모래 카레를 먹어보겠는가.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그 누구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낙타에 올랐다. 듄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선 조금 서둘러야 했다. 천천히 걷던 낙타몰이꾼도 여행객의 낙타에 올라타 속도를 올렸다. 그중 한 명은 나와 함께 낙타를 탔다. 


 “어, 저기.”


 주언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나한테 하는 말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낙타와 함께한 지 반나절이 지났지만 낙타 위는 여전히 무서웠다. 멀리 경치를 내다보며 사막을 두 눈에 담아본다. 그래 봐야 사방팔방 전부 모래뿐이지만 그 자체로 좋았다. 바다와 산의 풍경만큼 사막 풍경도 절경이고 장관이었다. 


 드디어 듄에 다다랐다. 불룩 솟아오른 듄에 오르니 사막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석양이 지고 있다. 사막은 이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우리는 듄에 올라 아무 말 없이 석양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들 사진 삼매경에 빠졌다. 여자는 남자 친구를 듄 아래로 내려보낸 뒤 엄청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일류 사진작가보다 더 열정적으로 미친 듯이 셔터를 둘러댔다. 나머지 일행들도 각자 흩어져 사진을 찍었다. 나도 듄 위를 천천히 걸으며 사막 곳곳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찍어드릴까요?”


 이번에도 주언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언이 카메라를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주언의 말에 긍정적인 화답을 했으면 좋으련만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불쑥 먼저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거절의 대답을 해버렸다.


 “아니요. 괜찮아요.”


 주언이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젠장. 말을 더 걸고 싶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주언을 찾아 여기까지 쫓아와놓고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주언에게 흥미가 없어진 것일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주언이 궁금하다. 대화를 더 나누고 싶다.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다르게 자꾸 뚝딱거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같이 사진 찍자! 이리오시죠.”


 멀리서 영인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영인은 내게도 눈짓을 하며 이리오라고 소리쳤다. 영인의 부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듄 가운데로 모였다. 주언도 영인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도 주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주언이 힐끗 뒤를 돌아본다. 


 “같이 가자.”


 처음이었다. 주언이 내게 말을 놓은 것이. 동갑인걸 알면서도 내내 존대를 했었다. 함께 사막을 누비며 나에 대한 내적 친분이 쌓인 것일까. 신중하고 과묵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인싸 재질인 것인가. 먼저 친구처럼 대해주니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 그래.”


 어색한 말투였지만 나도 주언에게 반말로 화답했다. 우리는 듄 한가운데 모여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날렸다. 그 뒤로 석양이 내린 붉은 하늘이 세트처럼 펼쳐졌다. 우리의 밤은 얼마나 또 아름다울까. 그렇게 사막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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