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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Jul 08. 2020

안녕, 길고양이

ⓒ 바람풀


무심히 고개를 들었을 때 거실 창 너머로 너를 보았어. 볕을 쬐며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걸까? 오늘은 어느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갈까 고민하고 있는 걸까? 한참을 앉아있던 네 뒷모습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거실 탁자에 앉아 있으면 너희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해. 우리 집 마당에도 한 번씩 꼭 들르잖아. 양쪽 눈동자 색이 다른 아이, 검은 아이, 하얀아이, 잿빛 줄무늬가 있는 아이, 한쪽 다리가 없는 아이, 병든 아이, 오랫동안 씻지 않아 지저분한 아이.... 떼 지어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는 걸 보면 너희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하기도 해. 집주인의 성향에 대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숲 속 오솔길을 산책하다가도 종종 만나지. 풀숲에서 튀어나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는 너희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디서 자는지 안부를 묻고 싶어.  


동네 친구네 고양이는 윗집 아저씨가 놓은 쥐덫에 다리가 잘려 돌아왔지. 농작물을 자꾸 먹어버리는 두더지 때문에 놓은 쥐덫이었대. 옆동네에서는 어떤 노인분이 길고양이가 싫다며 곳곳에 쥐약을 놓았고,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떼죽음을 당했대. 마당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서 아이가 며칠을 울었다고 그 동네 사는 아이 엄마가 말해주었어. 동네 어르신은 마당에 널어놓은 농작물을 고양이들이 밟으며 먹고 다닌다고 고양이를 미워하셨대. 농부의 노고는 알지만 그 피해가 잔인하게 생명을 몰살시킬 만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봐. 내 먹을 게 소중한 만큼 다른 생명도 소중하다는 걸 잊어버리는 어른들이 많지. 무시무시한 괴담 같은 이야기에 몸서리가 쳐졌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여러 집이 다닥다닥 모여 살던 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어. 그때 누군가 쥐를 잡겠다고 놓은 쥐약을 우리집 강아지가 먹고 죽었거든. 


아끼던 고양이를 잃은 아이는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아이 엄마는 고양이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해 주었을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 벌레든 동물이든 생명은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걸. 커가면서 사람들은 그런 것에 너무 무뎌지는 것 같아. 나도 그렇고.


고백하자면 나도 너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어.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엔 내 고질병인 비염이 악화되어 밤에 잠도 잘 못 자. 내 딸이 침대 옆에 늘어놓은 털 인형만 봐도 코가 근질근질하거든.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집도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어. 라임 빛깔 눈동자를 가진 하얀 고양이야. 내 둘째 딸이 앞 마을에 놀러 갔다가 파도라는 고양이를 만났거든. 파도는 그 집 언니가 입양한 잿빛 줄무늬 고양이야. 한쪽 다리가 잘린 길고양이를 거두어 키웠는데 어느 날 임신을 했대. 그 파도가 새끼를 일곱 마리 낳았어. 고양이 키우자고 날마다 나를 졸라대던 딸은 꼬물꼬물 서로 몸을 붙인 채 자고 있는 새끼들을 보더니 데려가자고 떼를 썼어. 새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도 승낙했지. 며칠 뒤에 한 마리를 데려와서 바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 바다는 엄청 에너지가 넘쳐. 집 안 여기저기 안 들어가는 데가 없고 못 오르는 곳이 없어.

 

식물은 야생화, 동물도 야생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생명을 보살피고 돌보는 일에 영 젬병이야. 그건 꾸준히 시간과 정성을 쏟는 일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돌봐주겠다는 책임이 필요한 일이야. 늘 내 코앞에 닥친 일에만 급급하다 보니 난 아직도 바다와 놀아주는 게 몹시 서툴러. 그래도 두 딸이 잘 놀아주고 돌봐줘서 다행이야. 


바다를 입양한 딸 덕분에 너희들을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어. 좀 더 노력해 볼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지. 인간들 사이에 있는 무수한 구멍과 그 안에 존재하는 세계를.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안녕, 길고양이.

어디서건 잘 살아가길 바라. 그래도 우리 마을에는 너희를 챙겨주는 어른과 예뻐해주는 아이들이 많단다. 밥 잘 챙겨주는 집 찾아다니며 굶지 않기를. 아껴주는 주인을 만나 사랑받고 자라는 행운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쥐덫과 쥐약을 조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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