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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Sep 03. 2020

꽃잎 흩날리던 날

ⓒ 바람풀



우리집 현관문을 나와 살짝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 이웃집 할머니네 담장이 이어진다.

부지런한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참 많은 꽃과 나무를 심으셨다.

채송화, 붓꽃, 백일홍과 봉숭아, 장미, 설악초, 족두리풀 꽃, 접시꽃, 분꽃, 금잔화 등

계절마다 소박한 꽃들이 줄줄이 피어난다.


그중에서 유독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꽃은 불두화다.  

봉긋하게 솟은 둥근 모양이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불두화

여린 연둣빛으로 피어오른 불두화는 오월이 깊어가면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꽃잎이 흩날렸다.

아이들이 이 꽃을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손만 뻗으면 작은 손바닥 안에 향긋하고 풍성한 봄이 한아름 만져졌다.

오월이면 불두화는 아이들 소꿉놀이에 빠질 수 없는 주재료로 등극했다.

앙증맞은 그릇에 담긴 작은 꽃잎들은 풍성한 고봉밥이 되어 '냠냠냠'

내 입 네 입, 우리 모두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꽃만큼이나 환한 함박웃음을 터뜨렸고,

마당은 새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듯 금세 하얘졌다.

이 길을 오갈 때마다 아이들은 앞서 뛰어가 내게 꽃을 뿌려 주곤했다.


오월마다 그 꽃을 지르밟으며 아이들도 나도 한 뼘씩 자라났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소꿉놀이도 하지 않고 꽃을 따지도 않는다.


그래도 몸은 기억하겠지.
온 세상에 봄을 뿌려대던 마음과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말이야.
우리 모두에겐 그런 날들이 있었지.
봄날 햇살처럼 따사롭던 날들.

반짝반짝 빛나고 눈부시던 어린 날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살면서 겪는 그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엄마는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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