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의 느티나무는 지오의 비밀 기지다.
코로나 19로 학교에 가지 못했던 지난 봄, 지오는 마당의 느티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의자를 밟고 가지를 붙들고 오르기에 딱 알맞은 높이였다. 아빠가 일할 때 쓰고 버린 페인트 통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는 그 안에 아끼는 돌을 담았다. 지오가 자수정이라며 애지중지 모아 깨끗이 씻어 말린 돌이었다. 아기 때부터 유난히 돌을 좋아했던 아이.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양손과 주머니에 예쁜 돌이 가득했다. 아빠는 간벌한 나뭇가지 몇 개로 지오가 나무 위에 잘 앉을 수 있게 지지대를 만들고, 나무둥치에 홈을 파서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도 만들어주었다.
"엄마, 잎이 나니까 더 좋아졌어.”
4월 말이 되어서야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벚꽃이 다 지도록 가지만 앙상해서 언제 잎이 돋나 하고 날마다 지켜보던 참이었다. 분홍 뭉게구름 같은 꽃잔디가 시들어갈 때쯤 라임 연둣빛 잎이 쫑긋 돋더니 맹렬한 속도로 무성해지는 느티나무! 매년 반복되는 변화를 난 매번 감탄하며 바라봤다.
"엄마도 한 번 올라가 봐."
나무 위로 올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 잎사귀 사이로 보이는 파란 구멍마다 햇살이 쏟아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사락사락 잎들이 출렁거렸다. 느티나무가 바람을 만나 들려주는 하모니를 몸으로 듣고 있자니 절로 평온이 찾아왔다. '너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이 좋은 걸' 아이들의 직관은 언제나 놀라움을 안겨준다.
"엄마, 거기 책 좀 올려 줘."
나무 위에서 지오는 내가 건네준 책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벌새, 열세 살의 여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지오가 한동안 머리맡에 두고 아껴 읽던 책들이다. 이 책들을 지오는 오월의 느티나무 속에서 오월 내내 펼쳐 읽었다. 저 책들은 태생의 근원을 알게 되었을까?
"엄마, 노을이 너무 멋져!"
어느 날부터 해질 무렵이면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지오는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노을을 바라보았다. 어떤 날의 노을은 아이슬란드 오로라가 안 부러울 만큼 멋지고 경이로웠다. 황금가루가 온 세상을 뒤덮은 듯한 신비로운 기운이 집안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린 것처럼.
해 질 녘 서쪽 하늘만 보아도 우린 우주의 신비를 느낄 수 있지.
내년 봄이면 너도 한 뼘 더 자랄 테지. 느티나무의 품도 한 뼘은 넉넉해질 거야.
너만의 비밀기지 잊지 않겠지?
고마워,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