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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Oct 27. 2020

솔멩이골 아이들

에필로그


ⓒ 바람풀


깊어가는 가을, 문득 단풍나무 숲의 안부가 궁금했다.

지금쯤 어떤 빛깔로 물들었을까? 작년에 주워왔던 모과 열매는 또 떨어져 있을까?

이슬이 마르기 전 비밀의 숲으로 달려갔다. 화양계곡 입구에 차를 대고 자연학습원을 통과해 단풍나무 군락지로 들어섰다.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한 화양계곡은 워낙 사랑받는 산책로라서 사람들이 자주 오가지만 이곳은 비밀의 숲이다. 여기서 가족캠프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숲의 존재를 영영 몰랐을 것이다.   


매년 시월이면 초등학교 가족캠프가 열린다. 주변에 이름난 계곡이 많다 보니 수련시설과 캠핑장들이 곳곳에 있다. 그중 자연학습원은 마을에서 제일 가깝다. 이날만큼은 농사일로 바쁜 엄마 아빠도 잠시 일을 멈추고 아이들과 함께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직 입학 전인 어린 동생과 중학생이 된 언니 오빠들도 줄줄이 와서 함께 캠프를 즐긴다. 전교생이 40명 안팎인 시골학교라서 가능한 마을 축제다. 산둘레길을 걷고 보물찾기를 하고, 탁 트인 잔디밭에서 온갖 재미난 놀이를 한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고 나면 모두가 기다리는 캠프파이어 시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모두가 손잡고 한바탕 노는 시간이다.

 이 녀석들, 내년에는 또 얼마큼 자라서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몇 해 전 가을, 1박2일의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엄마와 아이들을 이 숲으로 데려갔다. 다들 이런 곳이 있었냐며 탄성을 질렀다. 누군가 숲에 붉은 등을 켜 놓은 것 같았다. 온종일 신나게 놀고 난 아이들은 생기가 넘쳤다. 마른 잎을 친구들에게 뿌리며 까르르 웃어댔고 숨바꼭질하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어디선가 흰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나 말을 걸어온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잎이 물들어 갈 때면 이 숲에서 퐁퐁 솟아오르던 아이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한해 지나 다시 찾은 단풍나무 숲은 그대로였다. 오렌지빛이 감도는 불그레한 숲, 그 황홀한 빛깔에 홀린 듯 걸었다. 아이들 웃음소리 대신 쪼롱 쪼롱 새소리가 숲을 채우고 있었고 걸을 때마다 바삭바삭 마른 잎 밟는 소리가 났다.



가을의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단풍나무, 당단풍나무, 신나무, 중국단풍나무, 고로쇠 단풍나무...  같은 단풍나무과에 속하지만 이름도 빛깔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가장 화려한 색으로 절정의 순간을 맞은 가을의 빛 조각들!

곧 땅으로 돌아가 세 계절을 살다가 다시 잎을 피워내겠지?


자연의 순환과 함께 솔멩이골 아이들도 쑥쑥 자라났다.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는 아이들. 백두대간과 속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축복의 땅에서 해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말랑하고 보드랍고 제멋대로인 어린 천사들이여.
너만의 아름다움을 잃지 말고 
지금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자라나렴.

나무와 풀과 새와 개미, 하늘과 햇살과 바람.
지구가 품고 있는 모든 생명이
오래오래 서로를 품어줄 수 있기를.

세상 모든 어린이가 좀 더 행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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