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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Oct 21. 2020

깊은 산골 작은도서관


ⓒ 바람풀


시골살이 첫해, 가까이에 도서관이 없는 게 무척 아쉬웠다. 다른 문화생활은 접어두더라도 책이 가득한 공간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설익은 시골 살림에 첫 아이까지 출산하고 나니 피로와 우울감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누구라도 붙잡고 앉아 수다를 풀어낼 공간이 절실했다. 이웃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온갖 재미난 놀이와 배움이 어우러진, 그곳은 도서관이어야했다.  

우리 함께 도서관을 만들어볼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마침 지구 중심까지 땅을 파서라도 함께 샘을 길어 올려 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나와 같은 해에 첫아기를 낳은 엄마들이었다. 때마침 공간과 후원금을 선뜻 내주신 마을 분들 덕분에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젖먹이 아기를 들쳐업고 날마다 만났다. 기저귀를 잽싸게 갈고 아가에게 젖을 물리며 구입할 책 목록을 작성하고 기증받은 책들을 정리했다. 엄마들이 책을 정리하는 동안 아가들은 목수 아빠가 만들어준 빈 책장 사이를 기어 다니며 책을 놀잇감 삼아 놀았다.


도서관 개관식 준비를 하며 앞으로 이 공간에서 펼쳐질 재미난 일들에 대한 상상으로 밤마다 히죽히죽 웃으며 잠을 설쳤다. 누군가 와서 책을 읽고 빌려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영상처럼 아른거렸다. 동네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책 읽기 모임도 만들어야지. 같이 그림도 그리고 책도 만들면서 재미나게 놀아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새로 산 책과 지인들이 보내준 책들로 빈 서가가 채워지는 동안 마을에 정착하는 가족도 한 집 두 집 늘어갔고 도움의 손길도 많아졌다. 우리는 마을 구석구석 다니면서 개관 잔치를 알리는 초대장을 나눠드렸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 마을에 이사 온 새댁이에요. 마을도서관을 만들었어요. 꼭 놀러 오세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한 집도 빼놓지 않았다.


하늘 보고 별을 따고 땅을 보고 농사짓고,
책을 보고 꿈을 꾸며 도란도란 살아보세.


우리가 꿈꾸는 도서관은 이런 게 아닐까?  좋은 책을 만나러 가고 날마다 누군가로 따뜻해지는 곳. 함께 책을 나누고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며 이웃과 정답게 살아가는 공간. 개관식 때 걸어둘 커다란 광목천에 이런 우리의 마음을 글로 적었고, 아이들이 모여 앉아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해 주었다.


6개월간의 준비를 마치고 오월의 마지막 날, 흥겨운 개관 잔치가 열렸다. 아이들이 함께 부른 맑은 노랫소리와 팔순이 넘은 마을 할아버지의 구성진 시조창에 모두의 마음은 따뜻하게 차올랐다.


굽이굽이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 촉촉한 문화의 단비가 되어준 고마운 공간. 솔멩이골 작은도서관은 올해 열 살이 되었다. 꼬물꼬물 기어 다니던 아기들은 열두 살이 되었고 어린 동생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동안 한 아이의 눈부신 성장만큼 도서관도 무수한 진통을 겪으며 자라왔다. 느릿느릿 우리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아이들도 도서관도 푸른 나무처럼 여전히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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