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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Oct 29. 2020

초록빛 아이들



숲이란 말이 좋아서 숲에서 '숲이다' 하고 소리 내어 말하면 숲의 기운이 온몸으로 쏙 들어오는 것 같아. 오월이면 자꾸만 자꾸만 숲으로 달려가고 싶어 지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빛깔을 보면 꼭 너희들 모습 같아. 크는 게 아까워서 두 손으로 꽉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오월의 숲도 그렇단다.   


부처님 오신 날, 선주 이모네랑 담이네 가족을 불러 화양계곡에 갔던 날을 기억하니?  



초록빛이 어룽대는 길을 걷다 보면 구름에 물든 절 채운사가 나오지. 토끼풀로 꽃반지랑 팔찌를 만들어 동생 손에 걸어주었고 오동잎은 우리의 모자가 되어 주었지. 채운사에 도착해 절을 하고 배낭에 담아 간 쌀로 시주를 대신했어. 계곡에서 내려온 시원한 약수 한 모금씩 마시고 절에서 주신 밥을 맛있게 먹었지. 떡이랑 전이랑 과일도 잔뜩 먹고. 두 시간 넘게 걸어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니? 돌아오는 길에도 깔깔깔 까르르 너희들 웃음소리가 계곡물처럼 싱싱하게 흘러넘쳤지. 



샛길로 빠져나가 우리는 파천이라는 계곡으로 내려갔어. 여기서 하나 알려줄 게 있어. 조선시대에 우암 송시열이라는 학자가 계셨어. 이 분이 절경을 자랑하는 아홉 개의 골짜기마다 이름을 붙여서 화양구곡이라고 불렀대. 이 계곡에 머물면서 화양서원을 짓고 공부를 하셨다지. 그중 가장 멋지다는 아홉 번째 계곡이 바로 여기 파천이야. 수천수만 년 동안 비바람에 깎여 내려간 저 바위들 좀 봐. 너희들 살결처럼 얼마나 부드러운지 몰라. 움푹 파인 곳들이 마치 공룡 발자국 같지 않니? 너른 암반에 물결모양도 그대로 새겨져 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희들은 속옥만 입은 채 물속으로 첨벙했어. 이끼 낀 바위는 미끄럼 타기에 딱이야. 쪼르르 줄을 서서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지. 몸에 감기는 이끼와 물의 감촉.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젖은 몸을 말리는 방법도 너희는 알고 있었어. 오후의 햇볕이 데워준 바위에 다들 벌렁 누웠잖아. 



우리 마을을 알기 전에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어. 잠시 몸 담았던 대안학교 아이들과 함께였지. 마침 보름달이 뜬 밤이었단다. 달밤에 숲길을 걸으며 반딧불이를 보는 체험이었어. 오롯이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걷다니. 신기했어. 정말 반딧불이가 많았거든. 고요한 숲을 걷다가 이 계곡으로 내려왔지. 물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 마치 시간은 멈추고 무한한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단다. 그땐 미처 몰랐지. 이 길이 내 일상의 산책로가 될 줄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어떤 유명한 수필가가 글을 남기셨지. 난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어. 사월이 말랑하고 보드라운 아가의 얼굴이라면, 오월은 금방 초록물로 세수를 한 천진한 어린이의 얼굴이라고. 오월이 되면 숲의 요정 같던 너희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를 거야. 


여름밤에 반딧불이 보러 또 같이 가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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