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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Jun 23. 2020

옆집 할머니와 딸기


ⓒ 바람풀



우리 집 마당 앞에는 산으로 오르는 조붓한 샛길이 있다. 그 길 건너편에 낡디 낡은 집 한 채가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살고 계셨다. 정목수가 한창 우리 집을 짓고 있을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수분이 다 빠진 대추알처럼 쪼글쪼글했다. 아이처럼 몸집이 아주 작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나린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배 속에 있는 둘째와 함께 집 짓는 현장에 다녀오고는 했다.  


 “새닥, 이리 와 봐. 딸기 줄게.”


텃밭에서 풀을 뽑고 계시던 할머니는 호미를 든 채 나를 마당으로 데리고 갔다. 싸리비 자국이 선명한 할머니네 마당은 정갈했다. 흙벽에 걸려있는 농기구들은 집만큼이나 낡고 오래되어 보였다. 마당 곳곳에 있는 물건들 모두 할머니만큼 작고 귀여웠다. 할머니는 잘 익은 딸기 하나를 따서 유모차에 앉아 있던 나린이 손에 먼저 쥐어주셨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크고 잘 생긴 딸기였다. 입 주변이 빨갛게 물든 나린이가 연신 발길질을 하며 또 달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이거 모종 캐 가서 밭에 심어.”


 “집 다 지어 이사 오면 그때 심을 게요.”


난생처음 먹어본 노지 딸기는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 만큼 시큼했다. 싱싱한 맛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했지만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할머니는 산 초입에 있는 굴참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 옆에는 도토리가 가득 담긴 포대 자루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네 밭에서 퍼진 딸기 덩굴이 야트막한 돌담을 넘어와 샛길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새 집에서 텃밭을 일구고 할머니네 딸기 모종을 옮겨 심었다. 튼실하고 긴 어미 넝쿨에서 어린잎들은 잘도 뿌리를 내렸다.



"여기도 있고, 음~ 여기도 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지오가 연신 이렇게 중얼거리며 딸기를 땄다. 노지 딸기는 시큼한 맛이 강해서 잼을 만들면 더욱 맛이 좋아진다. 이틀 동안 따온 딸기로 잼을 만들었다. ‘이토록 붉고 강렬하고 진한 딸기잼은 처음이야!!!‘ 다음날엔 동네 아이들까지 몰려와서 딸기밭은 삽시간에 초토화 되었다.


"나린이 엄마, 딸기가 엄청 꿀맛이에요"


"엄마 꿀맛이야, 꿀딸기야"


아이들, 난리가 났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나린이도 친구들에게 뒤질세라 넝쿨을 헤치며 딸기를 따먹었다. 할머니 덕분에 매년 유월이면 딸기를 먹고 잼을 만든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생기면 모종을 나누어주었다. 마당에서 이 고마운 열매를 딸 때마다 고개를 들어 옆 산을 바라본다.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고르며 앉아계셨던 밤나무가 보인다. 눈 감기 전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때 되면 늘 해오던 일을 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신 삶.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축복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가볍게 날갯짓하며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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