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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May 11. 2020

나린이 탄생 설화

ⓒ 바람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산골 마을에 내려와 첫겨울을 맞았을 때 이곳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황량했고 몹시 추웠다. 둥근 산처럼 솟아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낡은 농가 마당에 쌓인 눈을 볼 때마다 나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자주 읊조렸다.


처음 살던 집은 낡은 시골 농가였다. 돌담은 반 이상 무너져 내렸고 녹슨 대문의 문짝은 제대로 닫히지도 않을 만큼 기울어졌지만, 꽤 운치 있고 정감 가는 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과 우물이 있었다. 유월이면 우물 옆 보리수나무에서 빨간 열매가 익어갔고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장독대 위에는 전 주인이 쓰던 항아리들이 햇빛을 받아 반질반질 윤이 났다.


커다란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가 두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가마솥을 빼내고 황토로 틀어 막아서 봉긋한 무덤 같았다. 겨울에 불을 지필 때마다 봉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낡을 대로 낡은 싱크대는 어느 것 하나 아귀가 맞는 게 없었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닭장으로 쓰던 공간에 나무 발판을 대고 쓰레받기에 오물을 담아 재를 뿌려 사용했다.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가난해서 아름답고 가난해서 평화롭던 시절이었다. 시골살이의 불편함을 오롯이 시골 낭만 생활로 받아들이던 청춘이자 신혼이었다. 눈이 푹푹 나리는 마당을 보며 태어날 아이를 생각했다.


이듬해 이른 봄날,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백석의 시를 떠올리며 아기에게 나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주에서 내려온 아이 나린이

 



몇 개월간 온 정성을 기울여 손보았던 이 집은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하는 동안 화재로 전소했다. 천장에 살던 팔뚝 만한 쥐들이 전선을 갉아먹는 바람에 전기 합선으로 인해 불이 난 게 아닌가 추정할 뿐.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기로 한 전날 밤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우리 가족을 위해 마을에서 빈 집을 마련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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