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코로나로 맞이한 긴 겨울방학 동안 미술 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후 저녁에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매일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는 아들이 “저 요즘 미술 배우니 너무 행복해요.”라고 고백한다. 밤하늘의 달이 너무 예쁘다고 망원경을 들고 다시 나가 달을 관찰하고 들어와 고백한다.
“달이 진짜 예뻐 오늘 행복해요.”
조카 결혼식이 있어 부산을 가던 중 고속도로의 하늘을 바라보며 고백한다.
“하늘 오늘 진짜 환상적이에요. 예쁜 하늘 때문에 오늘 참 행복해요.”
남편이 초밥을 포장해 귀가해 집에서 함께 초밥을 먹던 아들이 대뜸 고백한다.
“배가 매우 고팠는데 지금 맛있는 초밥을 먹으니 와!! 진짜 행복해요.”
MBTI 유형이 ENTJ인 나는 이런 아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기가 오랜 시간 동안 참 어려웠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들을 처음 이해하게 된 계기가 상담대학원에서 MBTI 검사를 하고 4주 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아들이 정반대의 성격유형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과와 성과가 중요한데, 아들은 과정과 지금이 중요하다. 우리는 개와 고양이처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자이다.
에크하르트 툴레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 ‘마음’은 훌륭한 도구이지만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정의한다.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 속의 지금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는 달이 태양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과거와 미래의 실재는 지금에서 빌린 것이라고 정의한다.
에크하르트 툴레 결론은 “영적인 차원으로 가는 열쇠가 현재에 있다”라는 것이다. ‘지금’ 속에 머물러 사는 것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오랜 습관을 깨뜨리라고 조언한다. 과거와 미래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성격유형이 ENTJ인 나에게는 항상 ‘성과’와 ‘성취’가 제일 중요했다. 결과 중심적인 성격유형을 지닌 탓에 무엇이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운전할 때도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나는 달려간다. 일을 할 때도 준비를 많이 하니 당연히 결과들이 과분하게 좋았다.
아들에게도 내가 최선을 다해서 아들에게 INPUT을 해주었으니 아들은 원하는 결과를 안겨주어야 했다. 아들은 나의 기대를 산산 조각내 주었고 견딜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었다. 성과로 나 자신의 존재를 가늠하던 나는 6년 전 건강이 무너지면서 비참해졌다. 잠시 고장이 난 시계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
무용지물이 된 쓸모없는 나를 용납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우울의 감옥 문을 열고 나왔던 내가 다시 우울의 감옥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살아가야 할 희망도 의지도 다운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래로 바닥을 치며 추락하던 시간, 나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쓰다듬어 주는 손길들이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강아지 행복이가 나를 따뜻한 온기로 희망을 공급해 주었다. 나 자신이 그냥 존재만으로 충분함을 나는 너무도 늦게 40년 만에 깨달았다.
그 후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존재만으로 충분함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니 더는 분노할 일이 없었다. 바닥을 향해 추락하던 시간을 통해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에크하르트 툴레는 목표에만 지나치게 맞추어 성취감에만 치우치면 ‘지금’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고 알려준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도 볼 수 없고 그 향기를 맡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지금 여기에 존재함으로써 맛보게 될 기적과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노력에 비해 과분한 성과를 얻으면서도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에크하르트 툴레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진단해 준다.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지금’에는 문제가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다고 설명해 준다.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해진다. 두려움의 실체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를 찾아왔던 모든 두려움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문제화했기 때문이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 일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보다 그 일을 하는 자체에 더 관심이 있느냐고 나에게 질문한다.
“행동의 결과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행위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 열매는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심리적 시간”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심리적 시간에 머물고 있는가?’
‘현재에 머물고 있는가?’
지금 하는 일과 행동에서 기쁨, 편안함, 가벼움을 느끼고 있다면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심리적 욕구가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심리적 시간에서 해방되면 이제는 두려움인 분노, 불만족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고 한다. 나 자신이 지금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임을 인식시켜 주었다. 깊은 존재 차원에서 내가 이미 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내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흐를 수 있다고 안내한다. 나는 이미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