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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Feb 10. 2021

사랑이 언제나 예쁘고 포근하고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마음에게 말 걸기》독서에세이 

강아지 시추 두 마리를 키운다.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아지들에게도 사람을 선별하는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강아지들의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강아지들이 어떻게 환대하는지를 보면 강아지들에게 몇 순위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네 식구가 살지만, 남편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강아지들도 남편이 안방에 있을 때는 전혀 출입하지 않는 걸 보면 남편이 싫어하는 걸 잘 안다. 남편이 아침 출근을 하면 문을 긁어대며 크게 짖어댄다. 빨리 문을 열라고 강아지들이 나에게는 큰소리를 친다.    


강아지들에게 가장 만만한 나는 1순위로 대접도 받는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뛰어나와 방방 뛰고 회전을 하면서 반갑다고 짖어 환영의 인사를 해준다. 외출하러 나갈 때도 항상 현관에 나와서 잘 다녀오라 인사를 해준다. 다른 가족들에겐 그렇지 않다.     


강아지들이 나에 대한 애정도가 높은 만큼 요구하는 것이 있을 때면 가장 큰소리로 짖는다. 간식이 먹고 싶을 때 나에게 달려와 크게 소리를 내 짖는다. 간식을 빨리 달라는 요구다. 대소변을 처리한 뒤에도 나에게 와서 큰소리로 짖으며 사인을 보낸다. 잘했으니 간식을 어서 내어 달라고 말이다.   

  

목욕을 시킬 때도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린다. 다른 가족들 앞에서는 절대 내지  않는 소리이다. 나에게는 큰소리를 짓어도,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어도 받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강아지들도 안다.        




《마음에게 말 걸기》 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은 서른셋 교통사고로 목이 부러진 후 전신마비가 되어 일 년 넘게 병원 신세를 졌다. 마침내 퇴원해 집에 돌아왔지만, 몸 상태가 나빠지면 세운 계획을 취소할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지인의 집에서 열리는 수영장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두 어린 딸 알리와 데비는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고, 모두 차를 타고 출발해 갔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 못해 대니얼 고틀립의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결국 계획을 취소하고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큰딸 알리가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 미워. 목 부러진 것도 싫고 내 인생 망치는 것도 싫어!”    


대니얼 고틀립은 그날 참 많이 서럽게 울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장애로 딸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딸이 자기에게 한 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아버지로서 깨닫게 되었다.     


“딸아이는 그 정도의 분노는 표출할 수

있을 만큼 아빠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나 또한 그런 말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이를 사랑했다.”     

대니얼 고틀립 《마음에게 말 걸기》        




아이들이 “엄마 싫어! 아빠 싫어!”라고 외치는 분노를 일시적인 감정이라고 이해하고 포용한다면 아이들은 힘들 때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부모에게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음을 대니얼 고틀립은 알게 되었다. 부모로서의 사랑의 그릇은 아이들이 드러내는 격한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만큼 넓고 크다는 것을 그날 새롭게 깨달았다.      


딸이 아빠에게 속상하고 화가 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여과 없이 소리치며 표현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 나는 참 부러웠다. 과격한 분노를 표출해도 아빠는 충분히 받아줄 수 있음을 알리는 알았다. 아빠는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을 신뢰했기에 상한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게다.    

 

“사랑이 언제나 예쁘고 

포근하고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상처를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한결같이 따스하고 

편안하기만 한 사랑은 없다.”

대니얼 고틀립 《마음에게 말 걸기》    


아빠로서 대니얼 고틀립은 서로가 사랑함에도 가족들과 불편한 감정들을 경험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갖는 미안함과 아이들이 느끼는 섭섭함을 충분히 담을 만큼 부모의 사랑 그릇이 크고 안전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서로를 향한 사랑은 가끔 찾아오는 분노와 짜증과 눈물까지 모두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리가 속상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아빠에게 그대로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듯이 아들과 딸이 나에게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거침없이 엄마인 나에게 표현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를 입학해 1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된 딸을 소규모 학교로 전학시켰다. 전학을 간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한동안 힘들어했다.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반 여자 친구들과 삼각관계로 갈등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 들은 말로 마음이 상했던 딸이 집에 돌아와 속상함을 털어놓으며 흐느껴 울었다. 학교에서는 참고 울지 않았던 울음을 엄마 앞에 털어놓으며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전학을 시켜주어야 하나 마음의 깊은 갈등이 생겼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딸이 울면서 속상한 감정을 표현해주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우리 엄마 앞에서 결혼 전까지 한 번도 표현해보지 못했던 감정표현을 딸은 나에게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엄마 앞에서만은 상한 감정을 드러내어도 되는 것을 딸은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매일 피곤한 워킹맘이셨다.     


종일 일하고 퇴근하시면 그다음 날 아침까지 피곤해 일어나지 못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해 가야 했다. 아침밥과 도시락을 할머니께서 준비해 주셨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엄마였다. 필요한 옷이나 신발도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사러 다녔다.     


1년 365일 중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날은 내 생일이었다. 일하느라 바쁘신 엄마는 항상 내 생일을 깜박 잊어버리셨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미안하다며 옷을 사다 주셨다. 그런데 엄마가 사다 주신 옷은 한 번도 내 맘에 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맘에 들지 않으니 안 입겠다고도 표현을 못했다.  

    

딸의 기념일 하나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매우 섭섭했고 상처 받았다. 친구를 초대해 생일 파티까지는 아니더라도 딸의 생일날을 기억하고 축하는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러웠다. 한 해에 한 번 맞이하는 내 생일이 엄마에게 기념되지 못하고 평범하게 지나가는 것이 기분 상했다. 한 번도 엄마에게 나의 상한 기분과 감정을 표현해보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은 전쟁 중이었으니까.’ 

‘아빠 때문에 엄마는 너무 힘드니까.’ 

‘직장생활만으로도 엄마는 피곤하니까.’     


매일 아빠와 전쟁을 치르는 엄마의 힘든 사정을 이해했다. 왜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냐, 생일 선물이 이게 뭐냐 타박할 수 없었다. 생일을 눈치채지 못하는 엄마에게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라는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한편으로는 엄마가 오늘이 다 지나갈 때까지 생일 기억을 하나 못하나 두고 보자는 심보도 있었다.     


결혼을 해서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 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엄마도 어린 시절 엄마의 생일을 제대로 챙김 받지 못하고, 축하받지 못하고 성장했겠다는 헤아림이 싹이 났기 때문이다. 


결혼 후,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무엇이든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먹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입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갖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막힘없이 표현한다. 아이들이 표현하고 요구하는 일상이 너무 당연한 것인데도 나의 어린 시절 전혀 표현하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게 되니 소소한 일상도 나에겐 뭉클한 순간이 된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걸 거침없이 주문할 때, 딸이 옷을 사러 쇼핑을 하고 싶다고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물을 때 새삼 고마워 뭉클해진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을 함께 먹으면서 내가 먹고 싶은 걸 한 번도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쓰다듬는다. 이제라도 이렇게 아이들이 엄마인 나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요청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삶에 소소한 행복과 뭉클한 감사를 누린다.   

  

“한결같이 따스하고 편안하기만 한 

사랑은 이 세상에 절대 없다. 

상처를 감내할 용기가 자주 필요한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 

인생의 뿌리가 되는 가족 안에 머문다.”

대니얼 고틀립 《마음에게 말 걸기》       


고등학생 아들이 하루 동안 있었던 서프라이즈 한 사건들을 재잘재잘 나누어 준다. 물어보지 않아도 하루의 일들을 설명해 준다. 학원에서 흡족할만한 그 재잘거림이 나에게 뭉클한 감동이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함께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이 소중한 선물이다.     

한결같이 따스하고 편한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

사랑에도 상처를 감내할 용기가 자주 필요하다.

서로의 속상한 감정을 기꺼이 표현할 수 있음이 또 다른 사랑이다.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 인생의 뿌리가 되는 가족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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