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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May 27. 2021

Who am I?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전환점이다

“삶이 네 여정 한복판에 역경을 갖다 놓았다면, 

너는 그것으로부터 강인함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되어 있단다. 

그것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지.”

조셉 M. 마셜《 그래도 계속 가라 》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한 겨울을 홀로 견디면서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하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그에 대한 내 첫 번째의 답은 ‘거절당한 아이’였다.     


1남 2녀의 장녀이면서 부모님의 허니문 베이비로 태어났다. 결혼 후 너무 이른 출산에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다행히 태어난 아기가 아버지의 얼굴을 그대로 닮아 안심했다는 이야기가 누군가를 통해 우연히 듣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지나갈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애정이 0.1%도 채워지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거절당한 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내면의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 거절감이 자라면서 친구에게도 먼저 다가갈 수 없게 하는 두려움의 원천이 되었다. 타고난 내성적인 성격과 심한 낯가림에 거절감이 더해졌다. 학창 시절 내내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항상 혼자가 되어 외로움이 가득하였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두 번째 답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부모님을 통해 처음 마주한 세상은 불행이 가득했다. 나의 부모님은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셨다.  5살에 할아버지를 여의고 너무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되어야 했던 아버지는 인생의 무게가 너무 고단하셨다. 49년 동안 알코올에 의지해 살다 결국 알코올 중독 간 경화로 쉰도 못되어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시집살이 했던 엄마와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아빠는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인 365일 중 거의 360일 동안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하셨다. 아버지의 귀가는 전쟁의 선포였다. 삼 남매는 모두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이불속에 숨어야 했다. 아빠와 다투던 엄마는 외가댁으로 피신을 하는 결말이 반복되었다.     


부부싸움이 1차로 끝나면 아버지는 늦은 밤 2차로 삼 남매를 호출하셔서는 아버지의 고생했던 사연을 밤새 들려주셨다. 아버지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가 알코올의 힘을 빌려 자녀들에게 토로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인생 레퍼토리는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언제 들어도 똑같은 줄거리였다. 


결혼과 육아를 감당하기에 부모님은 모든 것이 미숙했다. 부모님도 자라오는 과정에 결핍이 많았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보고 배우지 못했다. 가장 없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피해 의식을 내성적인 아버지는 술로 풀어내셨다. 아버지는 세 자녀와 어머니, 연로한 할머니까지 부양해야 했다. 


부모님들도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해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해 주지 못했다. 부모님의 삶이 너무 버거워서 자녀들에게 애정을 흘려보낼 여유가 없었다. 거절당한 거부감에 애정 결핍이 얹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 버림받은 존재’로 정의했다.     




가장 따뜻한 햇빛이 비추고 파릇한 싹이 돋아나야 할 시절 추위와 폭풍우에 시달려야 했다. 가정은 쉼과 안식을 주어야 하지만 우리 가정은 전쟁터였다. 매일 두려움과 쿵쾅거림이 가득했다. 환영받지 못한 탄생, 사랑받지 못한 성장 과정으로 내 마음은 깊은 우울감으로 차오르게 되었다. 강력해진 우울감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가장 불쌍한 아이’ 라고 나를 정의하게 했다.


처음 맞은 긴 겨울 동안 계속 된 질문에 대한 답은 ‘거절당한 결핍 덩어리’,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사랑받을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였다. 내 안에서 잘못된 목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우울증이 깊어갔다. 우울의 늪에 한 번 빠지면 자꾸 내 발목을 잡아끌고 더 깊이 들어갔다. 빠져나오려 애를 썼지만, 내 곁에는 발버둥 치는 나를 끌어내어 줄 단 한 사람이 없었다.


언젠가 내 병든 마음을 온전히 치료하게 된다면 나처럼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치료해 주는 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상담사의 꿈을 품었고, 글로 치유를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장 지오노의《나무를 심은 사람》에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가 양치기 노인으로 등장한다. 다른 지역에 살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가족과 모두 사별한 상처를 지닌 그는 살던 마을을 떠났다. 낯선 땅으로 옮겨와 버려진 오두막에서 살아간다. 깊은 슬픔의 상처는 3년 동안 외톨이로 살아가게 한다.  

   

어느 날 부피에가 오두막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 척박한 산비탈에 씨앗을 심기 시작한다. 그는 밤마다 도토리 열매들을 꺼내 성하고 실한 열매들과 나쁜 것들을 골랐다. 매일 실한 열매 100개를 골라내면서 그는 자신의 불행한 삶에서 긍정을 골라내었다. 37년 동안 매일 100개의 실한 도토리를 산비탈에 심어 수십만 그루의 나무들을 싹 틔웠다. 그가 심은 씨앗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울창한 삼림으로 변했다. 세 명밖에 살지 않던 마을은 만 명의 주민이 사는 살기 좋은 울창한 숲 마을이 되었다.     


삶은 때때로 우리 삶을 폐허와 황무지로 만들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예기치 않은 불행들도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불행이 찾아와 우리 삶이 폐허가 되고 황무지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의 인생을 담은 한 권의 책이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의 풍경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상실과 불행의 삶 속에서 실한 씨앗을 골라내어 성실하게 심는 희망으로 바꾸었다. 황무지를 울창한 푸른 숲으로 가꾸어 간 주인공의 모습이 나에게 가슴 벅찬 도전이 되었다.     


주저앉아 절망하기에는 상처보다 우리의 삶이 훨씬 크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성장 과정이 당연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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