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의 감독 피트 닥터는〈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에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가지 감정들을 캐릭터로 보여준다.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감독은 애니메이션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우리 감정의 비밀이 밝혀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슬픔 이가 라일리의 유아기 상상 속 친구였던 빙봉을 위로하는 장면이었다. 기쁨 이가 아무리 달래 보려고 해도 안되었던 빙봉을 슬픔 이가 빙봉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며 그 상황에서 느끼고 있는 정서를 짚어주며 위로한다. 슬픔 이는 슬픔을 알고 있어서 빙봉이의 슬픔을 공감하고 짚어낼 수 있었다. 빙봉이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라일라의 문제가 슬픔 이의 역할로 돌파구를 찾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기쁨 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슬픔 이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길 때가 많다. 인생에서 슬픔 이는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슬픔 이의 역할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충분히 슬퍼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회복하도록 위로하는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피트 닥터 감독은 전해 준다.
《당신 안의 기적을 깨워라》의 저자 나폴레온 힐은 슬픔이 짓눌린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버지니아 남서쪽 산악지대의 오두막에서 태어났고, 단칸방에 말과 암소 한 마리, 침대 하나와 화덕이 전 재산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유인이 될 가망이 전혀 없어 보였던 가정환경이었다. 그의 부모는 가난했고 문맹이었다.
그는 50세에 ‘슬픔 대학’을 졸업했다고 책에 기록할 만큼 인생에 슬픔이 가득했다. 그는 슬픔에 오래 짓눌려 살았던 까닭에 다른 사람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강렬한 동력이 되어 소득이 없는 20년 동안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찾아가는 연구를 지속했다.
나폴레온 힐은 슬픔을 이렇게 새롭게 정의해 준다.
“슬픔은 영혼의 치료제이며 안내자이다.”
“슬픔은 우리에게 영혼의 문, 무한한 지혜로 들어서는 문을 열어주는 만능열쇠이다.”
“슬픔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의 씨앗이 있다.”
나의 인생도 기쁨이나 행복보다 슬픔이 훨씬 더 가득했다.
20년 동안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날들은 하루하루를 온통 슬픔으로 색칠해 주었다.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과 자기연민을 자꾸만 덧칠했다. 슬픔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오면서 나도 나폴레온 힐과 비슷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슬픔에 짓눌린 시절을 오래 겪었던 까닭에 다른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었다. 슬픔이 나에게도 강렬한 동력이 되어 상담사가 되었으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폴레온 힐은 슬픔 대학을 50세에 졸업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슬픔에 대한 전문가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폴레온 힐은 슬픔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당당히 역전시켰다. 성공과 실패의 비결을 연구해 슬픔을 덜어주고 싶었던 소원을 성취했다.
되돌아보면 내 삶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슬픔도 나폴레온 힐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영혼의 치료제가 되고 안내자가 되었다. 무한한 지혜로 들어서는 문을 열어주는 만능열쇠가 되었다. 슬픔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분별하여 새롭게 건축할 수 있었다. 내가 깊은 슬픔을 경험했기에 슬픔 당한 사람을 더 깊이 공감하고 헤아릴 수 있다. 슬픔은 나에게 보석 같은 선물이 되었다.
4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존 바이든의 대국민 메시지는 ‘통합’과 ‘치유’였다.
바이든은 코로나19가 죽음을 휩쓸며 미국 전역을 통탄에 빠뜨리던 지난 3월, 전국적인 TV 프로그램에 나가 이렇게 말했다.
“슬픔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게 연락을 주세요.
제가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제가 그곳에 있어 봤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정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극적인 가정사를 지녔다. 서른의 나이, 최연소 미 상원의원이 되었다. 당선이 되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내와 13개월 딸은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도 중상을 입어 바이든은 아들의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이후 30년을 상원의원으로 지내면서 바이든은 아들들이 있는 델라웨어와 워싱턴 D.C를 왕복 4시간 기차를 타며 정치를 해나갔다. 그런 그에게 슬픔이 더해졌다. 바이든의 후계자로 촉망받던 큰아들이 5년 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이 가득한 가정사는 바이든을 슬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일 줄 아는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부통령 시절 초등학교 총기 참사 유족에게 전화해 한 시간이 넘게 위로했다. 지난 6월 경찰에 목이 눌려 숨진 흑인의 유족을 만나 위로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2차례의 대선 도전에도 실패했다. 개인적으로 사고와 병마로 가족을 잃는 비극을 경험하면서 극한의 슬픔을 경험했다. 남다른 슬픔의 경험을 통해 바이든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함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치유를 전하는 대통령으로 준비되었다.
오랜 슬픔은 나에게도 마음의 경계를 넓혀 슬픔을 당한 이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안겨 주었다. 스무 살 아버지를 잃은 슬픔,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슬픔, 희귀 암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슬픔, 암환자가 되어 투병했던 슬픔 등 내가 경험한 모든 슬픔이 합이 되어 슬픔을 지닌 사람들을 향하여 긍휼히 되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