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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Feb 04. 2021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

《샘에게 보내는 편지》독서에세이 

오프라 윈프리가 토크쇼에서 여러 해 동안 수천 명의 사람과 이야기하며, 모두에게 있는 공통된 소망을 발견했다.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주부이든 직장여성이든,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고 이해하고 인정해 주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갈망한다고 그녀의 저서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서 나눈다.     


그녀의 결론은 가장 높은 단계 인간의 욕구를 대변해 준다. 깊고 아늑한 관계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7명의 남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운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그 인터뷰를 통해 가장 흥미롭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회상한다.   

  

남녀 구분 없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갖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7명에게서도 확인했다. 바람을 피우는 이유도 ‘나는 정말 괜찮다’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임을 그녀는 발견했다.


자신의 내연녀에게 특별히 대단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 우리는 모두 다른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로 느끼고 싶은 본능이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해 주었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들어주고,
내게 흥미를 보였고, 무엇보다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SBS 월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를 종종 시청했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화려한 피아니스트 박준영.

누구보다 바이올린이 좋아서 음대를 입학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채송아.


준영과 송아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점점 가까워진다.  어느 날 송아가 지도 교수의 심부름으로 대전을 가게 되었다. 대전에 간다는 송아를 혼자 보내기 싫은 준영이가 송아의 하루에 동행한다. 준영이 송아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준영은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의 오랜 추억이 담긴 피아노 학원을 송아에게 보여준다. 준영이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곳이었다.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송아에게 이야기해 준다. 준영은 집에 피아노가 없었고, 부모님은 가게 때문에 바쁘셨기 때문이다.     


촉망받는 천재 피아니스트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준영에게도 말 못 할 가정의 상처가 있었다. 조용한 카페에 앉은 준영은 그동안 쉽게 꺼내지 못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송아에게 조심스럽게 건넨다.         



“아버지가 나쁜 분은 아닌데 

일을 자꾸 벌이신다.

사업이며 투자하신다고 

돈을 쓰는데 잘 안됐다.

어떨 때는 내가 그 일을 해결하려 

피아노를 치는 기분이다.”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한숨을 쉬는 준영에게 송아는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미소를 짓는다. 자신도 교수님의 소소한 심부름으로 대전을 온 것이라고, 이런 거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어오기 싫었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한다.     


준영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피아노 학원을 송아에게 보여주는 것.

자신의 결핍이 가득한 가정사를 송아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

준영의 마음이 송아를 향한 진심이 담긴 사랑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준영이 송아에게만은 화려한 피아니스트가 아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도 괜찮은 좀 더 특별한 존재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음이 느껴졌다. 남자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를 보여준다.






남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사연을 꺼내어 이야기해 준다. 남자의 사랑은 그렇게 표현된다고 오래전 유열의 《남자가 사랑할 때》에 소개되었다.   


  

결혼 전 남편과의 연애를 처음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6월 6일 현충일 공휴일을 맞아 진주로 함께 첫나들이를 갔다. 첫나들이로 진주를 가자고 했던 남편이 나를 제일 먼저 데려간 곳이 자신이 졸업한 진주 대아고등학교였다.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해 부모님 집을 떠나 하숙을 치며 고등학교에 다녔다. 하숙집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던 남편의 고등학교 하숙 생활의 푸념을 종종 들었었다. 남편은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를 보여주며 여기가 내가 다닌 고등학교라고 소개해 주었다. 남해에서 공부를 잘한 아이들이 진주로 고등학교 진학을 했는데 남편도 그중 하나였다.     




오래된 고등학교 시절의 지나간 소소한 추억들을 이야기해 주며 우리는 한참 운동장에 머물렀다. 준영과 송아가 대전을 함께 다녀온 그날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것처럼 그날, 남편의 나를 향한 마음이 가벼운 호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사랑임을 처음 가슴으로 느꼈다.      


남편과 진주로 첫나들이를 다녀온 그날, 남편은 아픈 가정사를 담담하게 나눠 주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연약함을 나눠주는 남편이 나를 신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집 상처 많은 가정사도 남편에게 처음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살아가는 내내

다른 방식으로 계속 찾아올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때면,

너를 사랑하고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무방비 상태로 자신이 드러났을 때

맺어지는 친밀감 속에는

놀라운 기회가 숨어 있다.


네가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으로

사랑받을 기회가!”

대니얼 고틀립,《샘에게 보내는 편지》        


휠체어 심리치료사인 대니얼 고틀립은 그의 외손자인 샘에게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도 30대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는데 외손자인 샘은 자폐라는 장애를 지니고 성장하고 있다. 샘에게 할아버지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편지로 담았는데 대니얼 고틀립은 연약함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연약함과 부끄러움에 대하여 꽁꽁 숨기거나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낄 때 부끄러움을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라 조언해 준다. 무방비 상태로 부끄러움과 연약함을 공유할 때 맺어지는 친밀함의 기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기회가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와 깊은 친밀함을 나누는 친구들도 공통점이 있었다. 준영이 송아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장 부끄러운 상처를 보여준 것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나누지 못했던 가장 비밀스러운 부끄러움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국비 대학원을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사정을 나눠 주었던 친구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한신뢰와 응원을 보내준다. 부부 사이의 갈등을 기꺼이 나눠 주었던 친구 역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친밀함을 유지하며 속사정을 나눈다. 이혼 후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 연약함을 오픈해 주었던 친구도 서로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겉으로는 준영이처럼 화려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친구들은 무방비 상태로 자신의 민낯과 부끄러움을 드러내며 연약함을 나에게 드러내었다. 연약함을 통해 맺어지는 친밀함 속에 나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히 수용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나에게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신뢰가 있어 가능한 드러냄이었기 때문이다. 연약함을 통해 맺어진 친밀함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깨어지지 않고 더욱 견고하다.     


준영의 연약함이 송아의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준영은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송아에게 마음을 열어 연약함을 보여 주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연약함과 부끄러움을 기꺼이 드러낸다.




우리의 연약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소중한 선물이 된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연약함을 고백할 때 서로의 마음이 사랑임을 보여주는 신비가 펼쳐진다.


연약함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나의 연약함마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의 연약함을 숨길 필요가 없이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연약함은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도 열어준다.”

대니얼 고틀립,《샘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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