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음식이 난무하고, 무엇이든 신속한 속도를 선호한다. 책 한 권을 읽는 데에도 책을 길들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더 많이 읽으려는 조급함이 우리 안에 가득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터부시 한다. 성공을 하기 원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유익이 될 수 있는 인맥을 쌓는데 온 힘을 다할 뿐이다. 시간을 들여 한 사람을 알아가는 길들임의 시간을 무시하고 원하는 것만 얻으려 한다.
상대방보다 더 시간을 들여 손해 보는 것을 너무도 싫어하는 시대이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한다. 생텍쥐페리가 살아가던 그 시대도 그랬다. 생텍쥐페리는 그 당시 전쟁과 혼란 속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관계를 위한 길들임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 어린 왕자’로 전한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1943년 미국에서 소설 ‘어린 왕자’를 발표했다. 그는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때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프랑스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어린 왕자’를 썼다.
생텍쥐페리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소설에서 어린 왕자는 작은 별을 떠나 6개의 작은 별을 거쳐 지구에 도착한다. 각 별마다 어린 왕자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작은 별에 혼자 살면서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는 어른, 모두 자신을 우러러본다고 잘난 체하는 어른, 쓸모없는 일을 계속하는 어른, 종일 별을 세어 종이에 적어 서랍에 보관하고, 수억 개의 별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다양한 어른들이 살고 있다.
미국 사진기자 존 필립스가 어린 왕자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질문했다. 생텍쥐페리는 ‘어느 날 흰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가만히 쳐다보았더니 어린아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고 답했다.
“넌 대체 누구니?”
그랬더니 그 아이가 ‘난 어린 왕자야’라고 답했어.”
어린 왕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에게 나타났듯이, 생텍쥐페리에게도 어린 왕자가 느닷없이 출현했다.
프랑스 리옹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생텍쥐페리는 1920년 공군에 입대했고, 1926년부터 우편 조종사로 일했다. 비행사였지만 글을 사랑했던 생텍쥐페리. 늘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을 비행했으나 감정을 글로 표현했다. 그의 삶에는 비행과 글이 함께 공존했다. 유년시절 네 살 때 아버지를, 열일곱 살에 남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후일 여성 작가 루이즈 드 빌 모랭과 파혼을 했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대부분의 작품을 프랑스 영토 밖에서 집필했다. 미국은 생텍쥐페리를 무척 사랑했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을 피해 그가 뉴욕에 도착하자 미국인 친구들이 그를 환대해 주었다. 그는 유배당한 외국인으로서 비애감에 젖어있었고, 프랑스에 두고 온 친구와 가족을 그리워했다.
생텍쥐페리가 친구에게 바친 헌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레옹 베르트에게
나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물론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하나 있다.
이 어른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이 어른이 모든 걸,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까지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도 있는데,
지금 프랑스에 사는 이 어른이
굶주리고 추위에 떤다는 것이다.
그는 위로받아야 할 처지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들이었다.
-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쓴 때는 자본주의가 극으로 발달하고 대공황과 참혹한 전쟁을 겪던 시기였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메마른 어른들에게 촉촉한 감성을 내려준다. 여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하고 고유한 의미를 갖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길들임을 통해 서로에게 맞추어지면서 특별한 존재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
생 택쥐페리 《어린 왕자》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관계의 가치를 깨달은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와 똑같은 꽃들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여우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장미에게 책임을 다 하고자, 마음을 보내주기 위해 여우를 떠난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 “관계”의 미덕을 여우와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의 아름다운 스토리에는 인생에 가장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다. 여우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의 관계를 맺어가는 사랑에는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를 길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길들인 것에는 언제나 책임이 있다.
시추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며 서로를 길들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강아지와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시간이 필요했다. 경계를 풀고 무한한 신뢰와 환대를 갖추기까지 강아지들에게도 길들임이 필요했다. 길들임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강아지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내 존재가 궁금해질 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너무나 아름다운 어린 왕자의 울림이 마음을 두드린다.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난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이제 내 비밀을 말해 줄게. 내 비밀은 별 게 아니야.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2년 동안 2차 세계대전만큼이나 강력한 후유증을 남기며 지나가고 있다. 일상의 삶이 하나 둘 정지되는 현실, 사람과의 만남과 교류가 단절되는 현실을 맞이한다. 사막처럼 메마름의 고통이 펼쳐지는 날들이지만 살펴보면 어딘가에 우물이 감추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 시대 레옹 베르트뿐 아니라 지금도 어른들 모두가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이다.
동시대의 전쟁을 경험하면서도 자신보다 더 춥고 배고픈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해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따뜻한 마음이 온기가 되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