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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Sep 16. 2022

 '중남미'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중남미'와 '라틴아메리카'.


 이 두 용어는 모두 미주 대륙에서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모든 국가를 포함하는 지리적 영역을 지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부터 중남미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해왔다. 특히 정부 등 공공부문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외교부 직제만 보더라도 중남미 지역을 관장하는 부서가 '중남미국'이다. 다만 영어로는  'Latin American and Caribbean Affairs Bureau'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학계 자료나 시중에 출판되는 서적 등에서는 '라틴아메리카'라는 표현을 점점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남미를 '라틴아메리카'로 그리고 중남미인들을 '라티노(latino)'라고 부르는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명칭에 사용된 문자 표현을 보면 우선 중남미는 지리적 의미로 중미와 남미가 합성된 표현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북미에 속해있는 멕시코와 카리브해 도서국가들이 행방불명이 된다.


 다음 라틴아메리카는 라틴족이 거주하는 대륙 또는 통속 라틴어(Vulgar Latin)에 기원을 둔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태리어, 루마니아어 등 로망스어(Romance Languages)를 사용하는 곳을 의미하는 문화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영국, 화란 등의 식민지이었던 영어와 화란어 등을 사용하고 있는 카리브해 도서국가들이나 남미대륙의 가이아나, 수리남 등이 역시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유엔 등 국제기구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중남미를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LAC,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Amérca Latina y el Caribe)'라고 부르고 있다. 이 명칭은 문화적 표현인 라틴아메리카와 지리적 표현인 카리비안을 합성한 것으로 이 경우에는 역내 모든 국가들이 빠지지 않고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중남미나 라틴아메리카 명칭 모두 지리적으로 북미의 멕시코, 중미, 카리브해 도서국가, 남미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


 라틴아메리카는 종종 '히스패닉 아메리카(Hiapanic America)'나 '이베로아메리카(Ibero-America)'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히스패닉 아메리카'는 표현 그대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메리카의 국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중남미 33개 독립 국가 중 18개 국가가 여기에 속하고 미국령 푸에르토 리코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베로아메리카'는 20세기에 사용된 용어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를 가리킨다. '이베로'는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를 뜻한다. 따라서 이베로아메리카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 아메리카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이티 등 프랑스어권, 수리남 등 네덜란드어권, 벨리즈 등 영어권 나라는 제외된다.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나 이베로아메리카 국가기구에는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참여하고 있는데 참고로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이었던 중앙아프리카의 적도 기니가 이베로아메리카 국가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또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대서양 서쪽의 반구라는 인식을 가지고 서반구(Western Hemisphere)로 부르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를 언제 누가 처음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역사적 논란이 있는 사항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명칭의 기원은 1830년대 프랑스 정치인이자 경제학자인 미셀 세비에르(Michel Chevalier)가 통속 라틴어에서 기원한 로망스어라는 언어적 연관성을 가지고 라틴 유럽으로 묶어 게르만 유럽(Teutonic Europe), 앵글로 색슨 아메리카(Anglo-Saxon America), 슬라브 유럽(Slavic Europe) 등과 구분한 것에서 부터이다. 그의 생각은 19세기 중후반의 중남미 정치지도자와 지식인들이 받아들여졌는데 다만 이들은 당시 쇠락해가고 있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문화 모델로 삼지 않았고 진보적 성향이 강했던 프랑스를 선진문화 모델로 삼았다.


 이 용어가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1856년 칠레 정치가인 프란시스코 빌바오(Francisco Bilbao)가 저술과 발표에 사용했다. 또한 콜롬비아 작가인 호세 마리아 토레스 카이세도(José María Torres Caicedo)도 같은 해 발표한 그의 시 '두 개의 아메리카(The Two Americas) '에서 이 표현을 인용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프랑스 영향력을 확보하고 앵글로 아메리카 영향력을 배제시키기 위해 멕시코 전쟁(1861~67)을 일으킨 나폴레옹 3세는 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 명칭을 지지했다. 그는 이 용어를 지지함으로서 프랑스와 아메리카 지역 간 문화적 연대감을 강조하고 프랑스를 이 지역 내에서 문화적이고 정치적 지도자로 부상시켜 막시밀리아노 1세를 멕시코 제2제국 황제로 옹립하는 명분으로 이용했다. 이후에도 범라틴주의 운동을 이끈 프랑스 잡지인 'La Revue des Races Latines' 에 기고한 프랑스 학자들도 이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용어적 배경 속에서 볼 때 중남미라는 표현은 확실하게 지리적 영역을 나타내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우리 한국인이 중남미를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라는 지리적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중남미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라틴아메리카’보다는 ‘중남미’라는 용어를 선택해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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