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통합(Latin American Integration) 이슈는 역사적으로 19세기 초 중남미 독립 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명 ‘해방자(The Liberator)’로 불리는 남미 독립 전쟁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장군은 독립 후 중남미가 유럽과 미국 등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남미 국가 또는 연방(State or Confederation of Latin American Nations)'의 창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중남미 연방 창설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치 외교적인 노력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이 주도해 창설한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마저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로 분할되고 말았다. 후세 역사가들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범미주의(Pan-Americanism)에 기초한 중남미 연방 창설을 ‘볼리바르의 꿈(Bolivarian Dream)’이라고 불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중남미 통합 이슈는 미국이 주도하는 범미주의 기치 아래 다시 논의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1889년 10월 '미주 국가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American States)' 일명 '범미 회의(Pan-American Conference)'를 워싱턴에서 개최하고 미국과 중남미 전체를 포함하는 미주 통합 이슈를 제기했다. 미국의 미주 통합을 위한 일련의 과정은 1948년에 '미주기구(OAS)'가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남미 국가들만의 통합이 최초로 시도된 것은 1951년 중미 국가 중심의 '중미 국가조직(ODECA)'과 1960년 남미 국가 중심의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LAFTA)'이었다. 이들 통합 기구는 회원 국가 규모와 기능 및 역할이 확대되며 '중미 통합체제(SICA)'와 '라틴아메리카통합협회(LAIA)'로 명칭이 바뀌었다.
1969년에는 안데스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하는 '안데스 국가공동체(Andean Community of Nations)', 1974년에는 카리브 국가를 회원국으로 하는 '카리브공동체(Caribbean Community)'가 창설되었다.
외채 위기를 맞아 중남미 통합 이슈가 일시적으로 정체된 후 다시 1994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남미 공동시장(Mercosur)'이 창설되었고 곧이어 1995년 멕시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3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G3 자유 무역 협정', 2011년 태평양 연안 국가로 구성된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 등이 경제와 통상 이슈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정치 성향의 중남미 통합 기구도 설립되었다. 2007년에는 '안데스 국가공동체'와 '남미 공동시장' 회원국이 참여하는 '남미 국가연합(UNASUR)'이 만들어졌고 2010년에는 미국 주도의 미주 기구에 대응해 '중남미 카리브공동체(CELAC)'가 창설되었다. 또한 미국 주도 '범미 자유무역지대(FTAA)'에 반대해 베네수엘라와 쿠바 주도로 '아메리카 볼리바르 동맹(ALBA)'이 만들어졌다.
1991년 과거 식민 종주국이었던 스페인과 브라질의 통치를 받았던 중남미 국가 간 이베로아메리카 국가공동체(Iberoamerican Community of Nations)가 창설되어 활동하고 있다.
기술한 바와 같이 중남미 통합 이슈는 제2차 세계대전 끝난 뒤 1948년 미국이 주도한 '미주기구(OAS)' 창설로부터 시작되었다. 미주기구는 냉전 시기의 시작과 함께 역내에 설치된 정치적 통합 기구이었다
미주기구가 창설된 이후에 역내 국가들이 주도한 중남미 통합은 볼리바르의 꿈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동기보다는 경제개발에 목표를 둔 것이었다. 이 시기 중남미 통합은 1960년대 프레비시(Raúl Prebisch)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ECLAC) 초대 사무총장이 주창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ISI)'의 이념과 틀 속에서 추진되었다.
1962년 몬테비데오 조약에 의해 탄생한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LAFTA)'은 국내 시장 협소라는 규모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 기대는 각 회원국이 추진하고 있는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의 일환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쳤다.
특히 자동차, 섬유, 농산물 등 민감 품목에서는 주요 회원국들의 이해 충돌로 상품 무역 자유화에 대한 논의가 중단되어 당초 기대했던 산업 합리화(industrial rationalization)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성과에 실망한 안데스 국가들은 1969년 별도로 '안데스 조약(Andean Pact)'을 체결하기도 했다.
1980년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을 대체해 새롭게 발족한 '중남미 통합 연합'은 과거에 경험했던 회원국 간 이해 충돌을 피하기 위해 통합 기대치를 낮추고 필요하다면 기구 내에서도 회원국 간 양자 무역 협정 체결이 가능하게 하는 체제를 운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국가 경제 통합 노력은 1980년 초 중남미를 강타한 외채 위기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역내에 새롭게 등장한 신 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에 기초한 경제 통합이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 주체들은 개방적 지역주의가 글로벌 경제의 시장 개방, 무역과 금융 자유화, 외국인 투자, 경제의 시장 기능 강화, 국가 역할 축소 등으로 특징되는 새로운 환경에 개도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인식했다.
1990년대 이후 중남미 통합은 새롭게 등장한 개방적 지역주의로 방향을 전환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우선 경제 통합은 역내 국가 간뿐만 아니라 역외 국가와 양자 또는 다자 간 자유무역 협정이 활발하게 체결되었다. 역내 국가 간에도 자유 무역, 공동 시장, 관세 동맹 등 다양한 형태의 다자간 통합이 이루어졌다. 1994년 창설된 '남미 공동시장(Mercosur)'과 2012년 발족한 '태평양동맹(PA)'이 대표적인 경제 통합 기구들이다.
'구지역주의(Old Regionalism)'로 대표되는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LAFTA)'과 '중남미 통합 연합(LAIA)'은 결과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외채 위기의 시대로 진입했다. '중남미 통합 연합'은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지만 당초 기대했던 역내 경제 통합의 동력을 상실하고 1990년대부터 새롭게 등장한 개방적 지역주의 흐름에 밀려 구시대적 경제통합의 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경제 통합 기구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당시 경제 통합에 긍정적이지 못했던 몇 가지 구조적 모순이 있다. 첫째는 역내 국가가 취했던 경제 개발 전략과의 모순성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중남미 국가들은 새로운 경제 개발 전략으로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Policy)을 실행했다. 이 정책은 필연적으로 시장경 제에 대한 국가 역할을 증대시켰고 국내 제조업 보호를 위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역내 국가들은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이 추구하는 역내 국가 간 무역자유화가 규모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이 산업 역량이 큰 국가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고 중소 규모 경제권에 속한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자국 제조업에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도 민간 기업들은 처음부터 규모의 경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경제 통합으로 역내 시장 규모가 확대되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외국인 직접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그동안 보호무역주의 우산 속에서 보호받아 왔던 자신들의 시장에 대한 기득권이 상실될 가능성을 예견하고 경제 통합에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둘째는 1969년 체결된 '안데스 조약'이다. 안데스 산맥에 산재한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베네수엘라 등 역내 중규모 경제권 국가들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대규모 경제권 국가와 이해관계 차이로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의 통합 협상에 열성적이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안데스 국가들은 자신들만의 경제 통합 기구인 '안데스 조약'을 창설했고 이로 인해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으로의 경제 통합 동력은 약화되었다.
셋째는 역내 국가 간 양자 협상에 따른 관세 인하는 '중남미 자유무역 연합'의 최혜국 대우 원칙에 따라 회원국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에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호 충돌했다. 당시 관세 협상 대상 품목은 9,200여 개에 달했는데 협상은 상호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넷째는 역내 정치 경제 상황의 불안정성이다. 1970년대에 빠르게 등장하기 시작한 군부 정권들과 여타 민간 정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함께 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경제 침체는 원활한 협상 추진에 큰 장애가 되었다.
다섯째는 미국이 '중남미 경제통합'에 대한 입장이 긍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냉전 시기 미주기구를 통해 중남미 국가들에게 패권주의적 영향력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중남미 국가들이 주도해 지역 통합 기구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유리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1990년 조지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이 발표한 Enterprise for the American Initiative(EAI) 정책으로 나타났다.
'신개방적 지역주의(New-open Regionalism)'는 1980년대 중 후반 세계 경제가 시장 개방 속에서 확장 국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채 위기로 경제 침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남미 경제상황 타개를 위해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구체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실행되었다.
대외교역 부문에서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추진했던 경제통합을 지양하고 시장개방 속에서 추진되는 신개방적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통합이 힘을 얻었다. 특히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ECLAC)는 1990년대 초 개방적 지역주의에 따른 경제통합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여기에 힘을 실었다.
신개방적 지역주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르다. 중남미에서 개방적 지역주의를 가장 먼저 주창한 로젠탈(Gert Rosenthal)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 사무총장(1985-1997)은 이를 ‘경제 자유화와 규제 해제가 잘 이루어진 지역 환경을 배경으로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성장시켜 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역내 국가들의 경쟁력을 높여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신개방적 지역주의는 무역자유화를 추진하는 논리적 근거를 넘어 역사, 문화, 경제, 사회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 간 관계를 보다 견고하게 연결해 주는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1994년 오우로 프레토 조약(Treaty of Ouro Preto)에 근거해 창설된 '남미 공동시장(MERCOSUR)'은 신개방적 지역주의를 표방한 중남미 경제통합 기구의 첫 사례이다.
태평양 연안 국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태평양동맹(PA)'도 이러한 맥락에서 창설되어 개방성을 강조하며 역내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중남미 역내 정치 및 경제 통합의 과정과 미래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중남미 다수 국가들이 역외 국가들과 양자 또는 다자간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면서 역내 통합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유엔중남미위원회도 성공적인 중남미 경제통합을 위한 이념적 그리고 물리적 인프라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남미 통합기구 중 21세기 들어 새롭게 발족한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 태평양동맹(PA), 1994년 창설된 남미 공동시장(MERCOSUR)의 역할이 앞으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역내 경제통합 관련 '남미 공동시장'과 '태평양동맹' 회원국을 합하면 에콰도르, 볼리비아, 수리남, 가이아나 등 4개국을 제외한 남미 주요 국가들 대부분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들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이념과 제도 차이만 극복한다면 양기구의 통합이 가능할 수 있다는 논의가 있다.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는 양 기구 간 협력방 안을 마련하는 등 통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도 상대 기구 회원국을 옵서버 국가로 받아들이면서 관계 증진을 도모하고 있다. 2014년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 칠레 대통령은 양 기구의 통합 추진을 목표로 2014년 ‘다양성 융합(Convergence in Diversity)’이라는 통합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여기에 근거하여 남미 공동시장의 공동시장그룹(GMC)과 태평양동맹의 최고위 그룹(GAN)은 2014-2018년 기간 중 통합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개시하고 그 결과를 2018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태평양동맹 정상회담에 제출했다.
당시 태평양동맹 정상회담에 남미 공동시장 정상들도 참석했는데 이들 8개 국가 정상들은 '양 기구 통합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채택하고 곧바로 실행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이 행동계획의 실천은 2019년부터 이어진 역내 국가들의 국내 정치 불안과 회원국 간 관계 불안으로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2020년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진전이 사실상 중지된 상황이다. 그러나 앞으로 통합을 추진과정과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대서양 국가와 관계를 중시하는 남미 공동시장과 태평양 국가와 관계를 중시하는 태평양동맹 간의 이념(Idea), 목표(Goal), 제도(Institution)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협력은 가능하지만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간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