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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Oct 12. 2022

부패(Corruption)의 뿌리

 부패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존재했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붕괴는 도덕적 가치의 해이와 함께 부패가 그 시작이었고 종교 개혁도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부패가 그 원인이었다.


 전통적인 의미의 부패(corruption)는 ‘도덕적으로 불순한 행위’를 말하고 있다. 특히 부패의 영어 어원은 라틴어로 Cor(함께)와 Rupt(파멸하다)의 합성어로 ‘공멸’을 의미하고 있는데 문맥에 따라 ‘썩음(spoil), 오염(pollute), 남용(abuse), 파괴(destroy)’등으로 사용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부패는 넓은 의미로 ‘정당한 규범에서 일탈한 행위’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규범’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고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따라서 ‘정당한 규범에서 일탈한 부적절한 행위로써의 부패’에는 과연 무엇이 어떤 범위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부패의 정의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유일한 법적 문서인 유엔 반부패 협약(UNCAC: UN Convention Against Corruption)에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국제 투명성 기구(TI)는 2012년까지 부패의 정의를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해 공직을 남용하는 것(the abuse of public office for private gain)’으로 정의했지만 2013년부터는 그 범위를 확대해 ‘개인적 이익을 위해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the abuse of entrusted power for private gain)’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위임받은 권력’, ‘개인적 이익’, ‘남용’의 정의와 범위 등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있다.


 따라서 국제 투명성 기구(TI)는 부패의 정의를 경직되게 운용하지 않고 개별 국가 국민들이 공공 부문의 부패를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즉 부패 인식(the perception of corruption) 수준을 다양한 창구를 통해 측정하고 지수화해 매년 국가별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패 인식이란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한 사회가 주어진 규범(rules)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리고 어떤 것들이 규범을 어기는 행위로 인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부패 인식은 개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유산 그리고 문화와 함께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별 국가별로 다양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부패의 범위와 영역 그리고 유형은 부패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학자들과 부패 관련 기관들은 이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비교 분석하고 부패 문제 해결을 위한 지침으로 삼고 있다.


 부패 범위에 대해 하이딘하이머(Arnold Heidenheimer) 교수는 백색 부패(white), 회색 부패(gray), 흑색 부패(black)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흑색 부패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 계층과 일반 시민계층 양자가 부패라고 인정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부패, 회색 부패는 처벌에 관해 양자 간 입장 차이가 있는 부패, 백색 부패는 양 계층이 부패를 인정하지만 처벌까지는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는 부패 유형이다.


 아울러 그는 직책 중심 부패, 시장 중심 부패, 공익 중심 부패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직책 중심 부패는 직책으로부터 직접 부적절한 이득을 취하는 부패 행위, 시장 중심 부패는 직책을 이용해 시장에서 사익을 취하는 행위, 공익 중심 부패는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며 일반 국민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 뉴욕 경찰국(NYPD) 반 부패 기구인 크나프 위원회(Knapp Commission)는 부패를 공권력을 가진 자가 수동적으로 부패를 받아들이는 초식성 부패와 능동적으로 부패(뇌물)를 요구하는 육식성 부패로 구분하고 이를 자신들의 부패 행위 사정에 적용하고 있다.


 국제 투명성 기구(TI)는 부패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the abuse of entrusted power for private gain)’으로 정의하면서 그 범위를 소형 부패(petty corruption), 대형 부패(grand corruption), 정치 부패(political corruption) 등 3가지로 구분한다.


 소형 부패는 중하급 관리들과 일반 시민들이 일상적인 공공 서비스 – 교육, 보건의료, 복지, 세무, 치안 등 -를 주고받으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유형의 부적절하고 공정하지 못한 행위들을 말하고 있다.


 대형 부패는 고위급 관리들이 공공 자원을 운영하면서 일정한 보상을 얻기 위하여 정부 정책이나 국가 기능의 왜곡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 부패는 정치인들이 권력 유지, 부의 축적, 영향력 확대 등을 목적으로 국가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남용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이 조작하는 행위를 말한다.


 부패 영역(sector)은 부패 행위가 발생하는 부문인데 부패의 정의를 넓게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좁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그 영역이 달라진다. 넓은 의미로 정의할 때 부패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포함한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즉 정부로 이해되고 있는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교육 부문, 의료 부문, 노동조합, 종교 부문, 기업, 비정부 기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부패를 좁은 의미로 정의할 때 공공 부문의 대상 영역은 통상적으로 정당,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정치 기구와 그 의사 결정 및 집행 과정 그리고 공공재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모든 입법, 행정 및 사법기구와 그 의사 결정 및 집행 과정을 포함한다.

 

 부패 유형에는 뇌물수수(bribery), 횡령(embezzlement), 부정 이득(graft), 착취(extortion), 협박(blackmail), 재량권 남용(abuse of discretion), 영향력 행사(influence peddling), 정실주의(favoritism), 족벌주의(nepotism),  파벌주의(clientalism), 관계 형성(networking)등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다.


 현실 사회에서 보면 부패 유형은 부패의 영역에 따라 그 구성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경찰 및 사법 영역에서는 주로 착취와 협박 등이 많고 정치 부패 영역에서는 뇌물수수, 부정 이득, 영향력 행사, 파벌주의, 관계 형성 등이 섞여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부패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뇌물과 선물의 차이에 대해 명쾌한 구분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간단하지 않다. 이에 대해 홈스(Leslie Holms) 교수는 어떤 행위가 부패한 것인가를 판정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개인 또는 집단이 작위 또는 부작위를 할 수 있는 공직에 선출되거나 지명되어야 한다. 둘째 공직에 있는 개인과 집단이 의사 결정권, 집행권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사익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최소한 일정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해야 한다. 넷째 작위 또는 부작위가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행해질 때 은밀해야 하며 그들 스스로 불법적이라는 것을 인지(aware)하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작위 또는 부작위가 국민과 정부에 의해 부패행위로 인식(perception)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국제 투명성 기구 중남미 부패 인식 지수는 매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는 정치권, 정부 기관, 개별 공무원들의 부패 행위에 시민들의 부패 인식이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부패 인식 지수에 따르면 우루과이(18위, 73점), 칠레(27위, 67점), 코스타리카(39위, 58점)를 제외한 대부분 주요 국가들은 중하위권 등위에 머물고 있으며 종합 평점도 20~40점 범위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등위는 180개국에서의 순위를 표시하며 지수 점수는 100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높을수록 부패 수준이 낮음을 나타내고 있다.


 주요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아르헨티나(96위, 38점), 볼리비아(128위, 30점), 브라질(96위, 38점), 콜롬비아(87위, 39점), 쿠바(64위, 46점), 도미니카공화국(128위, 30점), 에콰도르(105위, 36점), 아이티(164위, 20점), 엘살바도르(115위, 34점), 가이아나(87위, 39점), 온두라스(157위, 23위), 멕시코(124위, 31점), 니카라과(164위, 20점), 파라과이(128위, 30점), 페루(105위, 36점), 수리남(87위, 39점), 베네수엘라(177위, 14점) 등으로 전체적으로 중하위권에 속해 있다. 연도별 변화 추이는 대부분 국가들의 종합 평점이 하향 추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시민들이 부패에 대한 인식을 더 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륙별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중남미 국가들의 부패 상황이 더욱 명료하다. 2021년 기준 북미의 미국(27위, 67점), 캐나다(13위, 74점) 유럽의 영국(11위, 78점), 독일(10위, 80점), 프랑스(22위, 71점) 아시아의 한국(32위, 62점), 중국(66위, 45점), 일본(18위, 73점), 싱가포르(4위, 85점) 등과 비교해 볼 때 중남미 전체의 부패 상황이 매우 우려할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제 투명성 기구가 국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패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역내 국가들의 공공부문 부패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정치인과 경찰의 부패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 대응은 비효율적이며 부패 척결에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


 공공부문 부패는 교육과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에서 가장 심각하다. 구체적으로는 서비스 제공과  수혜 과정에서 뇌물수수가 성행하고 있다. 조사 대상 시민의 1/3이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으며 부패 신고는 사후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남미 국가들의 부패상황 악화는 역내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멕시코, 브라질, 베네수엘라, 중미 국가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부패는 법의 지배를 약화시켜서 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사법기관의 무능화를 가져와 법치주의 과정을 왜곡시킨다.


 이는 필연적으로 부패에 저항하는 언론과 시민사회 활동 탄압한다든가 범죄와 폭력이 증가하는 환경으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안정을 조성한다. 시민들은 권위주의적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을 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고 이 결과 민주적 통치 체제가 점차 약화되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현재 이러한 흐름은 중남미 전체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018년 멕시코의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opez Obrador) 좌파 정권 탄생과 브라질의 보우소나로(Jair Bolsonaro) 극우 정권 등장은 이에 대한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2017년 글로벌 부패 바로미터(GCB) 보고서는 역내 부패 축소를 위해 정부의 부패척결 노력이 강화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민 사회의 관심과 참여 확대, 강력한 법집행, 사법기관 역할 강화, 부패신고자 보호 등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남미 정치는 종종 부패를 연상시킨다. 부정 축재 정치가, 대형 부패 사건, 반부패 시위, 권력 세습 등 부패 관습이 중남미의 오래된 특징으로 ‘부패는 중남미 문화이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 인식 지수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부패를 용인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가 어디에 있으며 지도자들의 부패를 기꺼이 이해하고 용인하는 국민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브라질, 멕시코,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부패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 국가에서도 반부패 시위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중남미 역내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부패에 대한 거부감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패는 기회가 있고 제재가 충분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부패의 원인과 결과는 개별 국가별 정치, 경제, 문화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성되고 구체적으로 부패 수준으로 표시되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중남미 국가 중 우루과이, 칠레, 코스타리카 등은 부패 수준이 낮은 반면 베네수엘라, 멕시코, 브라질, 중미 국가들의 부패 수준은 같은 역내 권역이지만 매우 높다.


 중남미 부패의 원인을 정치적 요소, 경제적 요소, 문화적 요소로 구분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적 요소가 부패 수준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학자들의 연구가 많다. 이에 따르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건전한 정당이 많으면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져 부패 인식 수준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공고화로 부패를 줄일 수 있지만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부패 수준은 국가 규모, 국력, 효율성, 민주주의 수준 등 정치적 요소와 연관되어 있음은 확실하지만 그 상관관계가 계량적으로 명료하게 계산될 수는 없다. 다만 최근 계량적 연구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상관관계가 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에 활용된 지표가 과연 적정한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원활하게 운용되면서 법에 의한 지배 체제가 강한 국가일수록 부패 수준이 낮다는 것은 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중남미 국가들의 부패 수준 상황에서도 충분하게 파악될 수 있다.


 둘째 부패에 영향을 주는 경제적 요소로 소득 불평등, 경제 개방성, 경제적 자유 등이 있다. 경제적 부와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는 정치 사회적 권력 소유 차이로 이어진다. 경제적 부와 정치 사회적 권력을 차지한 계층은 다시 가난하고 약한 계층을 상대로 권력을 남용해 부패 행위를 하며 이를 은폐한다. 이렇게 해서 확산된 부패는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깊게 하는 원인이 되어 악순환이 생성된다.


 가난하고 약한 계층은 부와 권력을 차지한 계층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후원 관계(Clientelism 또는 Patronage)가 형성되어 종종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여건에 처해 있다. 이 상황은 역내 개별 국가의 민주주의 제도의 성숙 정도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부패 수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경제개방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서 경제가 개방되면 지대 추구 행위(Rent-seeking behaviour)와 부패로 발생된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이면 지대 추구 행위가 부패를 확산시키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에 깊고 넓게 내재되어 있는 종교, 권력 거리(Power Distance), 대인관계 신뢰(Interpersonal Trust) 등 문화 요소가 부패 수준과 관계가 있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론에 따르면 부패 수준은 대인 간 신뢰가 낮은 국가에서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칠레와 파라과이 경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양 국가의 대인 간 신뢰도 수준이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칠레 부패 수준이 파라과이보다 크게 낮은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는 반론이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종 언어적 분화(Ethno-linguistic Fragmentation) 정도가 부패 수준을 결정한다는 연구가 있다. 중남미 국가 중 인종 언어적 분화가 적은 국가일수록 부패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파라과이 등의 부패 수준이 역내 평균 수준보다 매우 높은 것과 백인 국가로 인종 언어적 분화가 적은 아르헨티나의 높은 부패 수준은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있다.


 호프스테드(G H Hofstede)는 권력 거리 지수가(PDI) 높을수록 부패 수준이 높아지고 있음을 구체적 데이터로 증명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들은 권력 거리 지수가 낮으면서 부패 수준도 매우 낮은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권력 거리 지수가 높으면서 부패 수준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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