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재 국제학교에서 가르치는 미국인 C는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다. 강아지가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해서 거의 매일 저녁인근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고 했다.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C에게 말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산책하기가 좀 힘들겠어요." 이에 C가 답했다.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내 아파트'에 있는 실내 정원에서 산책할 거예요."
내 아파트?
"이런 경우에 한국 사람은 보통 '내 아파트'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아파트'라고 해요." C에게 말했다. "영어는 'my apartment'라 자꾸 ‘내 아파트’라고 하게 돼요." C가 씩 웃었다. "'내 아파트'라고 하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란 의미보다 내가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란 의미가 강해져요." 내가 덧붙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많이 사용한다. 외국인 학습자들이 '우리'가 영어의 쓰임새와 달라 헷갈린다고 한다. '우리'를 단수가 아닌 복수 our로 해석하면 얼토당토않은 의미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 구성원을 지칭할 때 더욱더 혼동스럽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시부모님을 이야기할 때 나는 '우리 시아버지', '우리 시어머니'라고 한다. '내 시아버지', '내 시어머니'라고 하지 않는다. 연장자와 같이 높여야 할 분에게 이야기할 때는 '우리'를 '저희'로 바꾸기도 한다.
친정 부모님에 대해 말할 때도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라고 한다. 세 명의 동생들과 부모님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의미에서 '우리'(our)를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의 아버지, 엄마'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형제가 아무도 없는 외동딸이나 외동아들도 '우리 아빠', '우리 엄마'라고 하는 것을 봐도 '우리'가 '내'(my)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 학습자들이 특히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배우자 앞에 '우리'를 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우리 남편'이란 '너와 나의'(our) 남편이 아니라 '내' (my) 남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명사 앞에 사용되는 ‘우리’를 살펴보았다.
「3」 ((일부 명사 앞에 쓰여))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다른 말로 풀이하면, 나보다 높지 않은 스스럼없는 친구나 동료, 지인 등에게 '우리' 다음에 오는 명사가 나와 친밀한 관계임을 표시한다는 의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예로 든 '엄마', '마누라', '신랑', '아기', '동네', '학교 교정'은 나와 친밀한 관계에 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대상을 나보다 높지 않은 사람에게 말할 때 '우리'를 쓴다는 것이다. 연장자나 상사에게 말할 때는 '우리'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함축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용된 예들을 영어로 바꾸면 my mom, my wife, my husband, my baby, my neighborhood, my school campus가 된다. 한국어에서는 '우리'가 자연스럽지만 영어에서는 my로 써야 맞다.
'우리'가 기본적으로는 복수 our의 의미이지만, 스스럼없는 사람에게 나와 친밀한 대상에 대해 말할 때는 단수 my의 의미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혼돈스러워하는 외국인 학습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