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Aug 15. 2022

“오늘 내 학교에 갔어요.”가 이상한가요?

우리 vs. my

한국에서 국제학교 교사로 일하는 미국인 C는 지금까지는 영어의 my를 항상 우리말 ‘내’로 바꿔 썼다고 했다. 내 아파트, 내 강아지, 내 학교, 내 학생, 내 가족, 내 엄마, 내 아빠, 내 할머니, 내 할아버지......


지난번 수업에서 ‘우리’를 공부하고 나서부터는 ‘내’를 사용할 때마다 멈칫거리게 된다고 한다.


“오늘 내 학교에 갔어요. 아니, 우리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내 학생들, 우리 학생들하고 요리했어요.” C가 가라앉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름 방학 동안 진행되는 영어 캠프에서 유치원 학생들과 샌드위치 만드는 요리 수업을 했더니 목이 잠기고 많이 피곤하다고 했다. 열정적인 C가 잠자코 한 곳에 있지 못하는 꼬마 학생들에게 큰 목소리로 얼마나 열심히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가르쳤을지 안 봤어도 눈에 선하다.  


C에게 “오늘 내 학교에서 요리했어요.”보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 요리했어요.”가 더 자연스럽다고 말해 주었다. C가 학교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내가 잘 알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를 굳이 쓰지 않고 “오늘 학교에서 요리했어요.”도 괜찮다고 했다.


수학공식처럼 영어의 my가 ‘내’ 그리고 our가 ‘우리’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C가 ‘우리’와 ‘내’를 어법에 맞게 쓰는 일이 쉽지 않다.


C가 일상생활에서 ‘우리’ ‘’를 자연스럽게 쓰게 하려면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한국 사람을 만나면 아무래도 미국에 사는 C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므로 가족부터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 말할 때 언제 ‘우리’를 쓰고 또 언제 ’를 쓰는지를 알려주면 C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우리 가족을 C에게 소개한다고 가정하고 가족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아래 문장의 빈칸에 ‘우리’ 또는 ‘내’를 넣어 보았다.  


(우리, 내)_____ ㅇㅇㅇ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아버지, 엄마. 나보다 두 단계 또는 한 단계 높은 어르신 앞에는 ‘우리’를 쓴다. ‘내’는 쓰지 않는다.

“우리 할아버지예요.” (O)

“내 할아버지예요.” (X)


시댁의 아주버님, 형님, 시동생, 동서, 올케. 남편의 형제들과 동서들에 대해 말할 때도 ‘내’를 쓰지 않고 ‘우리’를 쓴다.

“우리 형님이에요.” (O)

“내 형님이에요.” (X)


친정의 여동생과 두 남동생, 매부와 올케. 여동생과 남동생들에게는 ‘우리’도 쓰고 ‘내’도 쓴다. ‘우리 여동생, ‘ 여동생 둘 다 괜찮다. 동생들의 배우자인 매부와 올케에게는 아무래도 우리’가 더 자연스럽다.

“우리 여동생이에요.” (O)

“내 여동생이에요.” (O)

“우리 매부예요.” (O)

“내 매부예요.” (X)


남편. ‘우리’ 남편이 ‘내’ 남편보다 입에 더 잘 붙는다. 사실 나는 남편보다는 ‘애들 아빠’를 많이 쓰는 편이다. 

“애들 아빠예요. (O)

“우리 남편이에요.” (O)

“내 남편이에요. (X)


딸과 아들, 사위와 며느리. 나보다 한 단계 아래 항렬인 딸과 아들에 대해 말할 때 ‘우리’와 ‘내’를 모두 쓴다. 사위며느리에게는 보통 ‘우리’를 쓴다.

우리 딸이에요.” (O)

 딸이에요.” (O)

“우리 사위예요.” (O)

“내 사위예요.” (X)


우리 가족을 소개할 때 전반적으로 우리’가 자연스럽다. 나보다 어린 여동생과 두 남동생 그리고 딸과 아들을 말할 때만 우리’와 함께 ’를 사용한다. 그 외 가족들을 말할 때는 가 어색하다. 물론 이는 나한테만 국한된 개인적인 사례이다.


왜 나는 딸과 아들, 동생들에게만 ‘내 자연스럽, 왜 다른 가족들에게는 ‘내가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을까? ‘나의의 준말인 관형어 ‘내는 나에게 속한다는 어감이 들어있다. ‘내 딸, 내 아들이라고 하면 내게 속한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이를 편하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인 딸과 아들, 동생들에게 ‘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시아버지나 ‘내 시어머니라고 말하면 왠지 예의에 어긋나 보이고 무례해 보인다. ‘우리 시아버지, ‘우리 시어머니라고 해야 공손한 느낌이 든다.


C가 미국에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해 한국인 지인에게 말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등 어른 앞에는 우리’를 쓰는 게 자연스럽고 ’는 어색하다. 동생들은 우리’와  다 괜찮다. 그리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반려견도 우리’와  모두 자연스럽다. 내 반려견이라고 할 때는 나에게 속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우리 반려견이라고 할 때는 내게 속한다는 뉘앙스는 뒤로 살짝 물러나고 친근함이 앞으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영어의 my가 ‘내’와 함께 상황에 따라 ‘우리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 학습자들이 어려워한다. 한국이 좋아 앞으로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C는 어렵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한국어를 배우는 데 열정을 다한다.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와 ‘우리’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