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Oct 14. 2023

내려가야 하는데 올림 버튼을 눌렀어요!

한국어 '네, 아니요'처럼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남편이랑 산책을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면 바로 내려가야 하는데, 문이 닫혔다가 스르르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뭐지? 이상해서 남편쳐다보았다. 남편이 씨익 웃으며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멈춰 있길래 순간 올림 버튼을 잘못 눌렀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25층으로 어서 올라오라고 올림 화살표를 누른 것이다. 나는 놀란 토끼 눈을 남편을 쳐다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갑자기 나도 같은 실수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내림 버튼을 당당하게 눌렀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다. 


2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 엘리베이터가 우리보다 아래에 멈춰 있든 우리보다 위 있든 상관없이 내림 화살표를 눌러야 한다. 14층에 있는 엘리베이터에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와 달라고 일부러 부탁할 필요가 없다. 25층에서 내림 화살표를 누르 엘리베이터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와서 우리를 태우고 1층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가 문득 영어의 'yes, no' 답하기와 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28층에 있든 14층에 있든 상관없이 내가 지금 서 있는 층에서  올라가려면 올림 버튼을, 아래 내려가려면 내림 버튼을 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긍정의문문으로 묻든 부정의문문으로 묻든 상관없이 내가 그렇다면 'yes', 아니라면 'no'라고 답한다. 꿋꿋하게 입장에서 '올림 또는 내', 'yes 또는 no'를 선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2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함.

상황 1: 엘리베이터가 28층에 있음.

상황 2: 엘리베이터가 14층에 있음.

행동 1&2(똑같이): 내림 버튼누름.


<영어 대답>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음.

질문 1: Did you have dinner?

질문 2: Didn't you have dinner?

대답 1 & 2(똑같이): No, I didn't.


초급 한국어를 배우던 미국인 학습자가 생각났다. 한국어가 아직 서투른 학생은 내가 "저녁 먹었어요?"라고 물어도 "저녁 안 먹었어요?"라고 물어도 똑같이 "아니요. 안 먹었어요"라고 대답한다. 긍정의문문이든 부정의문문이든 질문 유형에 구애받지 않고 영어식으로 '아니요'라고 말한다.


<초급 학습자의 영어식 대답>

질문 1: 저녁을 먹었어요?

질문 2: 저녁을 안 먹었어요?

대답 1&2(똑같이): 아니요. 안 먹었어요.


그렇지만 국어는 상대방의 질문에 맞춰 그에 맞는 답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물은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 '아니요', 동의하 '네'라고 응한다. "저녁 안 먹었어요?"라는 질문에 동의하면 ", 안 먹었어요."라고 답해야 다.


<올바른 한국어 대답>

질문 1: 저녁을 먹었어요?

대답 1: 아니요, 안 먹었어요.


질문 2: 저녁을 안 먹었어요?

대답 2: . 안 먹었어요.


질문에 구애받지 않는 영어의 'yes, no'처럼 지금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고 2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면 당연히 내림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질문에 따라 '네' 또는 '아니요'를 다르게 선택하는 한국어처럼 엘리베이터가 28층에 있다면 물론 내림 버튼을 누르겠지만, 엘리베이터가 14층있다면 왠지 내가 있는 25층으로 올라와 달라고 올림 버튼을 누를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익숙하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는 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