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산책을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면 바로 내려가야 하는데, 문이 닫혔다가스르르열리더니다시 닫혔다. 뭐지? 이상해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씨익웃으며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멈춰 있길래순간올림 버튼을잘못 눌렀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25층으로 어서 올라오라고 올림 화살표를 누른 것이다. 나는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남편을 쳐다보다가 빵웃음이터졌다.
갑자기 나도 같은 실수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내림 버튼을 당당하게 눌렀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다.
25층에서 1층으로내려가려면엘리베이터가 우리보다 아래에 멈춰 있든우리보다 위에있든 상관없이 내림 화살표를 눌러야 한다.14층에 있는 엘리베이터에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와 달라고 일부러 부탁할 필요가 없다. 25층에서내림 화살표를누르면엘리베이터가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와서 우리를 태우고1층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가 문득영어의'yes,no' 답하기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28층에 있든 14층에 있든 상관없이 내가 지금 서 있는 층에서 위로올라가려면 올림 버튼을, 아래로내려가려면 내림 버튼을 누르는것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긍정의문문으로 묻든 부정의문문으로 묻든 상관없이 내가 그렇다면 'yes', 아니라면 'no'라고 답한다. 꿋꿋하게 내 입장에서'올림 또는 내림','yes 또는 no'를 선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누르기>
2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함.
상황 1: 엘리베이터가 28층에 있음.
상황 2: 엘리베이터가 14층에 있음.
행동1&2(똑같이):내림 버튼을 누름.
<영어 대답>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음.
질문 1:Did you have dinner?
질문 2: Didn't you have dinner?
대답 1 & 2(똑같이): No, I didn't.
초급 한국어를 배우던 한 미국인 학습자가 생각났다. 한국어가 아직 서투른그 학생은 내가 "저녁 먹었어요?"라고 물어도 "저녁 안 먹었어요?"라고 물어도 똑같이"아니요. 안 먹었어요"라고 대답한다. 긍정의문문이든 부정의문문이든 질문 유형에 구애받지 않고영어식으로'아니요'라고 말한다.
<초급 학습자의 영어식 대답>
질문 1: 저녁을 먹었어요?
질문 2: 저녁을 안 먹었어요?
대답 1&2(똑같이): 아니요. 안 먹었어요.
그렇지만 한국어는 상대방의 질문에맞춰그에 맞는 답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물은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아니요', 동의하면'네'라고 응답한다. "저녁 안 먹었어요?"라는 질문에 동의하면"네, 안 먹었어요."라고 답해야 한다.
<올바른 한국어 대답>
질문 1: 저녁을 먹었어요?
대답 1: 아니요, 안 먹었어요.
질문 2: 저녁을 안 먹었어요?
대답 2: 네. 안 먹었어요.
질문에 구애받지 않는 영어의 'yes, no'처럼 지금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고 25층에서1층으로 내려가려면 당연히 내림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질문에 따라 '네' 또는 '아니요'를 다르게 선택하는 한국어처럼 엘리베이터가 28층에 있다면 물론내림 버튼을 누르겠지만, 엘리베이터가 14층에 있다면 왠지 내가 있는 25층으로올라와 달라고 올림 버튼을 누를 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익숙하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