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위대함에 대하여
"난 더 이상 네가 설레지 않아."
그녀가 저에게 한 말이에요.
제 앞에서 하품이 나와도, 쌩얼을 보여도
심지어 속옷 바람이어도
더 이상 아무렇지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게 저한테는 '네가 정말 좋아'로 들려왔어요.
'나의 모든 걸 보고 사랑해줄 이는 너밖에 없어.'라고 생각됐어요.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10년. 참 길죠. 그 시간.
저의 이십 대를 전부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기도 하고.
그래서 더 지겨웠어요.
싫증 나기도 했고.
서른 살이 되어서 알아 버렸죠.
아 내 청춘. 내 인생. 이렇게 한 남자에게 올인해버렸구나.
앞으로 또한 몇십 년을 이 남자와 함께 지내겠지.
심심하다 정말.
그녀는 자꾸 새로운 설렘을 찾아요.
저보고 너 또한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지 않겠냐 말해요.
그 상황을 가만히 듣고 있는 데
대꾸도 나오질 않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과거에도 그녀였고
현재에도 그녀가 당연했고
앞으로도 그녀와 함께 할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사랑이 없다니요.
설렘이 그립다니요.
이걸 진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릴 수 도 없고.
그 사람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작디작은 설렘의 조각 티끌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우리가
서로 연결된 거라고는 의리와 정뿐인데
이것만으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그 설렘 오래 가직할 사람과 미래를 기약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니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헤어지는 거 아닐까.
그래서 결국 헤어지자 라고 말을 하고 나왔어요.
알겠다고. 알았다고. 근데 지금 너 나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널 붙잡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에게 잘 지내라고 말하고
당당히 나왔어요.
드디어 저만의 자유를 얻은 거죠.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더군요.
나쁜 기지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렇게 하고 정말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많이 했더랬죠.
자꾸 불안하고 속상하고 아프고 그랬는데
진짜 나쁜 기지배.
곧 다시 연락이 왔어요.
그것도 3개월 만에,
잘 지내냐며.
싸대기라도 한대 때려주고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러고 오려고 했는 데
그게 안됐어요.
여전히 그녀가 좋았거든요.
찌질하게도.
신명나게 놀았어요.
연하도 만나보고, 연상도 만나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부터 설레기 그지없었어요.
근데..
그 마음 아주 잠깐 지나가더라고요.
지루하고 싫증 나는 건 매번 같았어요.
심지어 그들은 저의 모든 걸 이해해 주질 못했죠.
나중에야 깨달은 건데
의리와 정. 그리고 십 년.
그걸 무시 못하겠더라고요.
저의 전부를 온전히 봐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새삼 알아버렸죠.
그래서 다시 연락을 했어요.
조심스럽게,
그가 그 마음 변하지 않았길 바라면서.
근데 지금 제 앞에 앉아있던 그가
저 말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말을 해요.
그리고는 어리고 예쁜 여자애가 그의 옆으로 앉아요.
참 작아져요.
괜히 왔구나. 그는 나를 잊고 잘 살고 있었구나.
아쉬운 건, 후회가 되는 건 나뿐이구나.
제가 제일 미웠어요, 정말.
가만히 만나서는 안되었죠.
저도 사람인지라
보기만 해도 미워 죽겠는데
어떻게 돌아와서 다행이야, 여전히 널 좋아해 라는 말부터 꺼내요.
괘씸해서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었죠.
그래서 홧김에 아는 동생을 불렀어요.
딱 그 근처에 살고 있더라고요.
상황 설명하고
잠시만 여자친구인 척해달라 부탁해서
그 아이를 불러 옆에 앉혔죠.
소개도 시켜주고.
살짝 당황하더라고요. 아니 많이 당황해 보였죠.
내가 걔를 십 년 알았는 데,
웃고 있으면서도 눈은 웃지 못하고
혼자 막 하하호호 축하해 별 말을 다하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더니 다음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면서
그러면서 먼저 나갔어요.
동생에게는 고맙다고 말하고
이래저래 상황을 설명해줘야 했고,
그리고는 어찌 되었던 저는 다시 그녀를 붙잡으러 가야 했어요.
그녀의 집, 그 앞으로요.
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서럽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맘이 변했는지
십 년을 알고 지냈던 사이가 3개월 만에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돼버린 건지.
그가 밉다가도 그를 탓할 수는 없었어요.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도,
그를 놓아버린 것도,
상처를 준 것도,
모두 다 저였으니까.
무진장 후회가 되었더랬죠.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즈음 나타나더라고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는 정신없이 흘리다가
저를 보고서 놀라가지고 뒤돌아 눈물을 닦고는 저에게로 왔어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냐고 묻는 데.
그 상황에서 사실 그냥 껴안고 여전히 널 사랑한다 그렇게 쿨하게 말하고 안아주려고 했거든요?
근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왜 그랬냐며 묻고 따지면서
그동안의 울분이 다 터져나와 버렸죠. 그냥.
그녀가 그 말을 들으면서 펑펑 우는 데,
저도 막 눈물이 났어요.
나쁜 기지배, 나쁜 기지배..
그저 그 말을 얼마나 중얼거렸는지...
먼저 다가와서 저를 껴안아 주는 데
그게 다 용서가 되었어요.
그녀를 심심하게 지루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저도 후회가 되었었거든요.
다시 돌아와서 그저,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어요.
후회된다 뭐다 다 필요 없고 사랑한다라는 말 한마디면 되었는 데
그걸 죽어도 말 하지 않은 제 잘못이 커요.
후회된다고 다시 돌아와 놓고
또 한 번 진심을 숨기려 했던 저 자신이 참 어리석었죠.
그가 먼저 찾아와 주고,
속마음 보여주고,
그래서 그 덕분에 한 번 더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절대 놓지 않을 그 손을 다시 한 번 꼭 잡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어리석은 저를 받아 준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죠, 뭐.
잘.. 해야죠. 더 많이. 잘 할 거예요. 진심으로.
히죽히죽 G
경험이 중요한 건가? 역시?
온전히 사랑하십시오.
온 맘 다해, 간절하게 :)
사진출처: 히죽히죽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