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Jul 23. 2024

책방온실은 사연을 싣고



가게를 오픈하고 나서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특히 막 시작한 가게이다 보니 지인분들께서 많이 찾아주셨는데,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개중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장사가 잘 될까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죠. 맞습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카페라뇨. 게다가 책 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는 시대에 책방이라뇨. 걱정되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그것을 저나 딸이나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딸이 그랬죠. 무언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때는 꼭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자기가 힘들고 지쳤을 때, 견디고 이겨낼 힘을 준 책. 그래서 책을 통하여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다고요. 그게 하필이면 불경기에, 그것도 하필이면 책방 겸 카페를 하게 된 이유입니다.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친구가 가게를 찾았습니다. 남편이제 팔 개월 된 딸과 함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에 말입니다. 딸 친구가 그러더군요. 제가 브런치에 올리는 '딸과 아빠가 북카페를 연다네요' 연재글을 봤다고요. 글을 읽으며 펑펑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출산과 육아 등 딸과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맘고생을 많이 한 듯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글에 공감이 갔겠죠. 고마웠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큰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출산율 0.7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입니다.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정말 큰 도전입니다. 누구보다도 능력 있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자존감이 높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출산과 육아는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잠시 또는 오랫동안 밀어내야 하는 것이니까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사회의 벽이 높습니다. 그나마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정은 나은 편입니다만, 중견기업 이하 많은 기업들에서 워킹맘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구시대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고수하는 경영자와 관리자가 여전히 많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인구가 줄고 국가재정이 악화되고 그에 따른 국가쇠퇴를 걱정하면서, 막상 자기 회사부터 나서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 회사 직원들의 출산과 육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쥐어짜기만 할 뿐이죠. 저희 딸도 좋은 감정으로 열심히 다니던 회사를 결국 비슷한 유로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딸이 북카페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제가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딸의 고민과 힘든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네가 자신 있다면 우리 함께 해보자. 내가 열심히 도울께."




책방온실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또는 데이트하는 남녀가 함께 오기도 하죠. 남성 혼자 오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카페에 혼자 발걸음을 하는 남자도 드문데 책방을 혼자 찾는 경우는 말해 뭐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드문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젊은 남자 한분이 가게를 방문하였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서 카운터 옆 소파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더군요. 그렇게 한 시간가량 책을 보다가 일어섰습니다. 제가 말을 건넸습니다.


"책 보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혹시 글 쓰기도 좋아하시나요?"


"책 보는 건 좋아하는데, 글쓰기는 아직요. 그런데 사실은 사장님이 브런치에 올리신 연재글을 봤습니다. 글을 잘 쓰시던데요?"


"예? 제 브런치 글을 보셨다고요?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분은 브런치에 올린 제 연재글을 보고 궁금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정말 글 하나도 생각 없이 올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디서 누가 볼지 모르니까요. 그 손님은 다음날에도 가게를 찾았고, 한 시간가량 책을 보고 갔습니다.



젊은 여성 한분이 가게를 찾았습니다. 들어서면서부터 미소를 지으며 '우와~ 우와~' 하더군요. 북카페를 여는 게 자기 로망인데, 이렇게 예쁜 가게를 열다니 정말 부럽다고 하였습니다. 책 보며 한 시간쯤 있다가 일어섰는데, 제가 물어봤죠.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냐고. 그분이 그러더군요. 정말 좋아하고, 작가로 데뷔하는 게 꿈이라고요. 그리고 자신이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반갑던지. 소설이라뇨, 같은 동지를 만난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물었습니다. 혹시 글쓰기 모임 같은 것을 하면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요. 좋다고 하더군요. 기뻤습니다. 아아, 머잖아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딸이 독립출판 사업자등록을 하였습니다. 출판사 명칭은 '온실패밀리'. 먼저 자기 책을 낼 거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독립출판 강의를 들으며 만들었던 소책자를 다듬어서 제대로 된 책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빠가 브런치에 쓰고 있는 연재글을 다듬어서 책으로 내는 건 어떻겠냐고. 딸이 차려 놓은 밥상에 덩달아 숟가락을 얹고 싶었습니다. 출판사 명칭이 온실패밀리면 당연히 가족인 아빠 책을 내야죠. 그런데 딸이 그럽니다. 아빠  중에 고쳐할 게 너무 많다고요. 마음에 안 드는가 봅니다. 쩝. 과연 편집인 딸의 손을 통과하여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가게를 오픈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이제 일들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거 같습니다. 커피 내리는 거나 음료 만드는 것도 어느 정도 손에 익은 것 같네요. 커피나 음료 여러 가지를 만들어 맛을 보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카페라테입니다. 저희 가게 원두가 뜨거운 우유와 만날 때 풍미가 가장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 카페라테를 마십니다. 핫으로요. 딸도 핫 카페라테의 맛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것은 아이스네요. 그런  보면 확실히 세대차이가 느껴집니다.


이 브런치 연재글을 시작한 지 삼 개월이 지났습니다. 세월 정말 빠릅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뼈대만 앙상한 구옥을 본 지 엊그제 같은데, 지금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이 연재글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딸이 그린 청사진대로 모습을 갖춘 가게, 여기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딸이 기획하고 있는 독서모임, 제가 생각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이 곧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뜻 맞는 사람들끼리 딸의 독립출판사를 통하여 책을 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동안 간직했던 각자의 사연을 싣고서 말입니다.


딸은 단순히 책이나 커피를 팔려고 가게를 연 게 아닙니다. 책과 커피는 하나의 매개체입니다. 그리고 가게는 만남의 공간이 되는 셈이죠.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친 젊은이들. 그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와 격려를 하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곳. 그 방법에 대해서 딸과 개념적으로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봐야죠.


책방온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을 싣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연재글을 마무리하면서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책방온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았습니다.








이전 16화 홍보는 필수 방법은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