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다리

철든 여자 철없는 남자 #17

by 이은호



- 철든 여자 -


병원에 도착하여 겨우 그를 부축하여 응급실로 향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오는 도중에도, 응급실에서 진찰을 하는 도중에도, 연신 '애고 애고!' 하며 죽는소리를 냈다. 약 먹은 토끼처럼 날뛸 땐 언제고 다 죽어간담! 덕분에 난 엉덩이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접수를 하고 의사에게 보이고 부랴부랴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결과는 심각했다. 모 그렇다고 곧 죽을 정도는 아니고 왼팔이 부러지고 오른쪽 발목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의사 말로는 한 달 정도 입원하고 두세 달은 지나야 될거라고 했다. 의사 말을 들은 그는 더욱 죽는소리로 앓아댔고, 난 마치 엄마라도 된 양 그를 다독였다.


일단은 하룻밤을 응급실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한참 후 내가 장석 씨에게 가족에게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뭔가 생각난 듯 여기가 무슨 병원이냐고 물었다. 난 사람이 팔다리를 다치면 머리마저 어떻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자기가 누워있는 침대에도, 옆의 침대에도, 침대커버에도 분명하게 병원 이름이 쓰여 있는데 무슨 병원이지 물으니 말이다.


"똑부러지는병원인데요!"

내가 그의 침대에 적혀있는 병원 이름을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짚어가며 일러주었다.


"똑부러지는병원요?"

그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지고 있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나요?"


"예.. 이 병원에 여동생이 입원하고 있거든요.”


"예? 언제요? 어디가 아픈데요?"


정말 뜻밖이었다. 그의 여동생도 다리를 다쳐 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니! 그는 집이 시골인 관계로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자신마저 이 꼴이 됐다면서 힘들어했다.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놀라시겠는가? 오누이가 동시에 병원신세라니. 그러게 왜 술을 그렇게 마시고 까불어대냐? 한편으론 그가 얄미운 생각도 들고, 풀이 죽어 누워있는 꼴을 보니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일을 어쩐다? 이러다 내가 오누이를 다 돌봐야 하는 거 아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장석 씨한테는 내일 입원하는 대로 부모님께 연락드리라고 하였다.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여동생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나보다 더 예쁘진 않을까?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여동생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을 물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살짝 살펴보고 오겠다면서...


응급실을 나와 그의 여동생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을 찾았다. <1106호> 문앞에 걸린 '오주연'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한쪽 침대에 젊은 여자가 누워있고 그녀 앞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누워있는 여자의 허벅지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고 여자는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저 여자가 분명히 장석 씨 동생인 것 같은데 저 남자는 애인인가? 꽤나 다정한 모습인데?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자 인기척을 느낀 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아...!"

"...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본 그 남자와 난 둘 다 깜짝 놀랐다. 그는 다름 아닌 김경석! 그 남자였던 것이다.




- 철없는 남자 -


응급실에서 그들은 다행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난 그들을 피해 얼른 올라와 버렸다. 주연이의 병실로 돌아오니 추운 데서 떨어서인지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긴 머리가 몇 가닥 흐트러진 발그레한 뺨과 생길 듯 말 듯 살포시 맺혀있는 미소.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여자는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비록 날라리에 머리 나쁘고 철딱서니 없지만 그런 모든 단점이 용서가 되니 말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건 그렇고 오장석이 그 녀석은 어떻게 된 걸까? 얼핏 보기에 많이 다친 것 같았는데. 저 칠칠치 못한 게 어쩌다가 다쳤을까? 임지혜 그녀도 걸음걸이가 불편한 게 정상은 아닌 것 같던데. 혹시 둘이 싸운 건 아닐까? 그런 건 아닐 테고, 그럼 불량배라도 만났을까? 그것도 아니면 교통사고? 아니면 저 넘도 혹시 인어아가씨 가슴을 만져보려고 했던 건 아닐까? 옛날에 중학교 땐가 인어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배를 좌초시킨다는 '로렐라이'라는 노래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바닷가의 인어아가씨도 혹시? 그래서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모조리 혼내준다?


그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병실을 나와 응급실로 향했다. 오장석은 응급실 한쪽 구석에 누워있었다. 다 큰 녀석이 엄살이 심한지 징징거렸고 지혜 씨는 옆에서 그를 달래주고 있었다. 징징거리는 녀석을 토닥토닥 달래주는 그녀의 모습이 꽤나 다정스럽게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가끔씩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돌려 자신의 엉덩이께를 주무르곤 하였다. 확실히 그녀도 아픈 데가 있는 모양이었다. 쟤들이 아무래도 뭔 사고를 쳤구먼!


잠시후 응급실 담당의사가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엑스레이 필름을 펼쳐 들고 뭐라고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의사의 설명을 들은 장석이가 더 징징거리는 걸 보니까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응급실에서 그들의 동태를 좀 더 지켜본 후 주연이의 병실로 올라왔다. 어차피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는데 뭐.


"어디 갔다 와요? 혼자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정을 부렸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까지도 예쁘게 보였다.


" 미안해! 주연이 주려고 이렇게 과일을 사 갖고 왔잖아!"

귤껍질을 벗기고 한 조각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까 다리 저린 건 이제 다 나았어?"


"아니, 다리를 꼬부리고 잤더니 또 저린데?"


"그래? 그럼 다시 주물러 줄게."


난 다시 그녀의 다리를 살살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내 안마 솜씨가 좋아서인지, 아님 잠이 덜 깨서인지 그녀는 이내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또 간호사가 왔나? 점점 가까워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여자의 봉긋한 가슴이 보이고. 어? 간호사 옷이 아닌데? 고개를 들고 눈에 초점을 맞춰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그녀, 임지혜였던 것이다.


"!"

"!"


우린 입을 벌린 채 서로 멍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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