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유감

by 이산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새로 고문으로 취업한 회사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 출근을 요구했다. 매주 수요일을 출근일로 정하고 팀원들에게도 알렸다. 목요일 험한 산행이 예정되어 전날인 수요일을 비워 체력을 비축코자 이번주는 화요일에 출근을 했다. 갑작스런 나의 출근에 선약이 있는 팀원들은 다들 12시가 되기도 전에 자리를 비웠다. 꼼짝없이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급하게 근처 후배에게 전화를 넣었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 톡도 보지 못하는 걸로 보아 업무가 바쁜가보다. 삼십분여 빈 사무실에서 실없이 인터넷 뉴스를 뒤적이다 아침도 거른 허기에 항복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람이 적어 혼자 먹는 밥이 두렵지(?) 않은 식당을 찾아 주변을 돌았다. 사무실 근처 대부분의 식당은 점심시간이라 사람들로 붐볐다. 몇군데 식당을 지나치다 한 냉면집에 용기내여 들어갔다. 대부분 좌석은 삼상오오 그룹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석쇠에 구운 불고기와 면발이 가는 함흥식 냉면을 세트로 주는 점심 정식을 주문했다. 혼자 앉은 좌석이 나도 모르게 불편하다. 주변의 시선이 '어쩜 주변머리가 없으면 혼자 밥을 먹으러 왔을까'라고 동정하는 듯 느껴진다. 음식이 나오자 전투하듯이 먹어 치우고 먼저 온 옆 테이븰 일행보다 먼저 일어나 나왔다. 점심 식사는 만남을 풍성하게 하는 식사모임 자리도 아니고 한 끼 때우는 생리 행위인 것을 난 왜 이리 혼자가 불편할까? 나에게 외로움을 이기는 독립심이 부족한 것인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들고 걸어가는 그룹뒤에서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사람과의 만남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습관이 생겼다. 소위 '약속'을 주기적으로 계속 만드는 것이다. 특히 회사를 퇴직하고 백수가 되고 나서 누군가를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적 충만감을 높이는 것 같다. 한 주에 서너번의 약속으로 대부분은 술 자리로 이어진다. 만남, 관계의 성격을 보면 크게 세가지 형태다. 첫째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하기 어려운 관계다. 서로의 일상과 성격, 취향등은 오픈되나 내적 경험과 생각의 공유는 제한적이다. 포장되고 예의 바른 관계이고 서로에게 사회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관계에 대한 절제된 요구와 사회적 에티켓이 중요한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순수하게 나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뤄지는 개인적인 만남이다. 두 관계의 차이는 하나는 그룹으로 이뤄지고 다른 하나는 일대일로 이뤄진다. 이 두 모임은 나의 경험과 지난 역사에 대한 상당한 공유가 전제된다. 그룹모임의 대표적인 것은 동창모임, 동호회, 기타 친목모임 등이다. 이 관계는 나의 캐릭터가 피상적이지만 상당부분 본질과 유사하다. 주기적인 회합으로 이뤄지는 이 모임은 과거 일정한 공간, 시간, 행위속의 공통 분모가 만남의 주된 주제이다. 간혹 회비를 주기적으로 걷어 참여를 강요하는 관계도 있다. (아.. 어찌 사람의 관계를 돈으로 강제한단 말인가!) 다자간의 만남으로 인해 관계의 깊이가 다소 제한적이다. 세번째 관계는 내가 선호하고 감정적 유대가 잘 되는 사람과의 주기적인 일대일 만남이다. 나는 대충 열명 정도의 사람과 한달에 한두번 정도 대상을 로테이션하여 주기적으로 만난다. 대부분 술 자리를 매개로 이뤄진다. 일대일의 만남이 가져다 주는 상대에 대한 집중도는 밀도 높은 대화를 이룬다. 삶의 여정속에서 맞는 문제와 내면의 고민을 공유한다. 물론 이 관계가 늘 영속적이지는 않다. 일정시간이 흐르면서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하고 새로 추가되기도 한다. 더불어 관계의 독점이 주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관계속에 한번 세워진 캐릭터가 고착되고 과장되어 나중에는 본질과 동떨어져 지는 경우도 있다. 둘만의 관계를 적절하게 견제할 3자가 없음이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나이들수록 혼자에 익숙해지기가 강요되는 것 같다. 자식은 독립하여 품을 떠나고 배우자 또한 '따로 또 같이'를 외치며 같이 하는 시간을 피한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준비가 필요하다. 관계의 틀을 방패 삼으려는 맹목적인 관계보다 본질적인 자아를 들여다보고 스스로 케어할 능력을 높여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혼밥, 혼여, 혼영, 혼트...내일부터는 혼자 놀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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