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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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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Sep 28. 2020

같이 가요

2020년 9월 28일 오늘의 나


또르르르륵


아침 8시 30분 커피메이커에서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으면 출근 준비 끝이다. 커피가 혹시 새지나 않을까 뚜껑을 꽉꽉 돌려 잠근 뒤 가방에 소중히 넣는다. 텀블러와 파우치의 지퍼 손잡이가 부딪히며 내는 땡그랑땡그랑 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선다. 매일 나의 출근길은 그렇게 시작된다. 텀블러는 누가 발견했는지 참 요긴하다.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를, 여름에는 시원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기상청에서 예고했던 무시무시한 더위가 시답잖게 지나가고 나니 어느새 청명한 가을바람이 돌아왔다. 이런 고마운 날씨에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향하는 곳이 회사라니.... 슬프기 짝이 없다. 따가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동시에 머금은 공기를 느끼며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서러움도 함께 밀려온다.      

오늘 회사를 쨀까??? 아프다고 뻥치고 반차 낼까? 


이런 생각을 품으며 회사로 가는 버스에 올라선다. 그래 오늘은 아무데나 가보자. 어디든 가서 어제와 또 달라진 공기를 텀블러에 담아 커피와 함께 맛보자. 신 난다 신나!! 출근길에서 자주 만나는 고딩 친구 은미도 데려가야겠다. 오늘도 은미가 같은 버스에 타야 할 텐데.... 

    

“야! 우리 오늘 회사 째고 놀러가자!”     


은미와 같이 앉아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바이러스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척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했다. 오늘 이렇게 한 버스를 타고 나란히 앉아서 달리니 기분이 새롭다. 이제 곧 새로운 곳에 도착하는 것이 또 설렌다.     

 

매일 보던 건물들의 풍경을 지나쳐 점점 낯선 곳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대 가득한 눈빛을 교환하며 싱긋 웃는다. 그 사이 버스 안은 계속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진다. 빨간색 염색머리 아줌마의 시끄러운 통화소리도, 기사님의 멀미날 것 같은 운전 실력도 오늘은 그냥 참자. 오늘은 어디로든 가기로 한 날이니까. 내가 한번 참아주지 뭐.      


여기다! 여기서 내리자. 

버스에서 내리자 나를 감싸는 상큼한 공기가 다시 한 번 날씨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여름 내 괴롭히던 축축한 공기는 이제 없다. 언제 이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인지. 주변의 변화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지냈던 나를 탓하며, 그리고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바쁜 회사원의 일상을 불쌍히 여기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내 발걸음에 맞춰 들리는 텀블러 소리와 함께 그렇게 한참을 걸어간다.      


안녕하세요. 안녕~! 


끼익끽

또르르르륵     


하.. 좋다. 텀블러가 나에게 다시 돌려준 커피 한 잔에 업무 시작준비 완료다. 

이렇게 나는 또 쓸데없는 생각으로 출근길의 슬픔을 자위하며 먹고 살려고 회사에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런 생각이라도 해야 매일 똑같은 출근길이 덜 서러울 것 같다. 오늘의 출근길을 함께 해준 나의 텀블러, 이따 퇴근길도 잘 부탁해.     


오늘도 텀블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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