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승미 Oct 05. 2023

#9.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누군가의 가족을 지키는

<간호사 살리기>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발인이 있던 날,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리던 그날은 비가 많이 왔었다.



분명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던 오전이었는데,

목놓아 울던 가족들의 마음을

하늘이 대변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단시간 내에 쉼 없이 쏟아졌다.



영락공원에 도착해서 할머니의 화장을 기다리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그 상황마저도 내게는 구슬프게 느껴졌다.





그렇게 할머니의 차례가 찾아왔고,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제야 또 참아왔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보내드리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아서.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이제는 화장터로 들어가셔야 한다는 말을 듣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기다리니 할머니의 화장이

마무리됐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한 줌의 고운 재가 되셨고,

할머니의 무릎을 지탱하고 있던

인공관절들만이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뜨거운 불 속에서도 달궈지기만 할 뿐

부서지지도, 녹지도 않은 그 인공관절을 바라보니

할머니가 그간 얼마나 무겁고 단단한

인공관절을 몸에 지니고 사셨는지 실감이 났다.




그 작은 체구에 이렇게 큰 인공관절들이 박혀서

할머니의 몸을 지탱해 왔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제 아픔 없이,

고통 하나 없이 평안하게 쉬실 수 있겠구나.



나중에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끝내고

우리 모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할머니가 살아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겐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동안은 할머니집에 가면 할머니가 언제나처럼

우리를 반겨주실 거라는, 그런 허무한 상상도 했다.





어떤 날은 응급실에 방문하는

할머니 환자분을 마주할 때면

자꾸만 할머니 생각이 나서

속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살려내는데 보람을 느꼈던 내가

할머니의 위급했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간호사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회의감마저 들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할머니의 부재는 내게 익숙해졌고,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과 회의감도 사라졌다.




대신, 할머니가 겪으셨던 고통스러운 순간을

비슷하게라도 겪고 있을 누군가가

응급실에 찾아왔을 때

적어도 내가 환자 분류를 하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들을

함부로 흘려듣지 않고 신속히 사정하며,

상태에 맞는 응급처치들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강한 의지로 단단히 다져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필연적인 결과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수없이 살리던 의료진들도

결국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선 똑같은 인간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힘쓰고

누군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간호한다.




내겐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 수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살리고 간호하기로 다짐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