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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Feb 02. 2020

한강에 비쳐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며

 버스를 타고 습관적으로 책을 꺼냈다. 약속 시간이 급하거나 서서 가게 될 확률이 확실하다면 지하철을 타겠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바깥을 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버스가 좋다. 앉을 수 있고 책 몇 쪽 읽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어느새 버스는 한강을 옆에 두고 달리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밤의 한강은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매번 보면서도 새롭게 예쁜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회사의 온갖 시름 혹은 따뜻한 가정의 형태를 띠고 있을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강은 오롯이 담아 자신을 지나는 이들에게 보여준다. 



 최근 나는 이사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얼추 해결되어 희미해져 갈 즈음이었다. 강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던가에 대한 이유가 생각났다. 잊고 있었다. 이것을 보려고 이사를 왔었지.

빨강, 노랑, 초록 따위의 빛들이 물에 비쳐 일렁이는 아름다운 물빛을 보려고 왔었다. 다채로운 물빛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려고 했었다. 가까이서 보면 슬프고 힘들지만 멀리서는 감동과 빛이 될 수 있는 삶들을, 강을 건너는 버스에서 조금은 쉽게 보려고 했었다. 

이곳으로 이사한 지 2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여러가지 불평불만만 남았다. 



 어둠 속에 차갑게 깊어져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는 한강을 보며 생각한다. 열심히 살고 싶다는, 누군가의 열심과 배움과 성공을, 불빛이 아름답다는, 누군가의 노고와 힘듦을,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누군가의 불안과 두려움을, 꿈과 미래와 희망을, 누군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미처 다 쓰이지 못하고 남겨진 나의 생각들을 다시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적어본다.  






 어제에 얽매이지 않되 돌이켜보고 현재를 살고 내일을 생각하는 것.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이자 생각이라고 하기에도 어제의 나는 역시 부끄럽다. 그래도 두 눈에 가득 담기는 한강이 참 예뻐서, 곧 이사할 곳도 한강과 가까울테니 좋다. 


잘했다. 좋다. 좋을 것이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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