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민들레 영토'를 꿈꾸는
- 한인 가게들
브리즈번에 살 때,
88년도에 일찌감치 이민 온 사람들의 입방아 찧던 말이 있다.
"아이고 참내, 한국사람들은 왜 이키 단결이 안 되까요. 중국 애들이 툭하면 놀려요. 너네 나라애들은 왜 그리도 싸우냐고요."
곧바로 본말인 히스토리 하나 딸려 나온다.
"지금 여기 차이나 타운이 첨에는 한국인들 다섯 명이 호텔을 지어서 동업하던 장소였어요. 사업이 엄청 잘 됐었는데, 동업자끼리 서로 의심하고 다투다가 헐값에 중국인들한테 넘어갔지요.
그때부터 중국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차이나 타운'으로 땅을 조성해나간 거예요. 터 잘 닦아놓고 중국애들 좋은 일 시켰어요. 중국애들 봐요, 얼마나 잘 뭉쳐요. 걔들은 개인 비즈니스는 신용이 없다고 소문이 난다 해도, 자기 동족끼리 단결하는 덴 선수예요, 선수."
그러고 보니, 이 땅에 사는 차이니즈, 그 시끄럽고 일 못한다고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중국인들이 슬쩍 부러워진다. 워낙 본토 인구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도시마다 '차이나타운'이 내가 여기 왔노라, 생겼노라~, 건재 하노라, 하고 한 군데씩 턱~ 박혀 있는.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이민자로 살아가는 이곳 차이니즈들에겐 자기네 컨츄리에 대한 자부심이 활활 타 오를 게다.
88년도만 해도 브리즈번에는 한국인이 손가락으로 곱을만치 숫자가 적었다는데, 이젠 2만 명을 훌쩍 넘은 지 오래다. 비즈니스를 해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상가 렌트비도 점점 비싸진다. 코리언이 점령한 도시의 인구밀도가 팽창하고 있다.
그래, 브리즈번 시내에서 4시간 거리인 여기도 한국 샵을 오픈하는 추세다.
2017년도 부터던가.
샐러드 뷔페 '시즐러'를 개조하여 문을 연 '미각'이라는 BBQ 뷔페 레스토랑이 생겼고, 한국 식품점 'Hi 마트', 또 다른 코리언 레스토랑, 'laon '을 선봉으로 초밥 숍 서너 개, 제임스 커피숍, 백패커들이 문을 열고 있다.
드넓은 농장지역이라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온 한국 청년들은 계절에 따라 인원이 가감되지만 지금은 100명이 넘는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번다버그에서 문을 연 한인 가게들. 미각,라온,하이마트, 카페 제임스.
번다버그의 중심가인 '힌클러 쇼핑센터' 주변에 문을 연 한인 가게 앞을 지나다 보면, 왠지 내 속에서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2016년도에 이곳에다 둥지를 튼 우리는, 그 당시만 해도 브리즈번에 다녀오려면 하루나 이틀 특별한 D - day 날을 잡아둬야 했다. 5일 장 보러 가는 시골 아줌마가 되어, 그날 구입할 리스트를 써 가지고 브리즈번 시내에 있는 한인마트까지 4시간을 운전하여 갔다.
라면, 고추장, 국수... 를 사고, 2차로 코리언 헤어 숍에서 머리를 자르고, 3차로 한인식당을 가서 부대찌개를 뱃속에 두둑이 챙겨 넣고서 다시 번다버그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 한밤중이 된다. 그때마다 소곤소곤 별들이 우리를 반겨주긴 했더랬다. 깜빡이는 희망처럼.
그러다 우리를 위한? 우리의 한인 숍이 가뭄에 이슬비 내리듯 사알 짜기 들어왔으니. 우린 임을 본 듯 반가웠을 터, 잠자다가도 웃음이 헤벌쭉~ 새어 나올 수밖에.
그래 요즘은 이 모든 가게에 손님이 구름 떼같이 몰려오듯 즐겨 찾아서, 그저 한인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가 날로 날로 번창하기만을 빌고 있다. 한인 청년들 주머니도 두둑~ 해져야 할 텐데, 하며 어느 날 밤은 그저 그렇게 마음을 기울인 날도, 없지않아 있다.
이국생활에선 시시때때로 서늘한 바람구멍이 가슴에 뚫리는데, 한인끼리 '진심'으로 마음의 틈을 메우며 마음 나누다 보면 찐득~한 형제애가 꿀단지처럼 고인다. (난 이걸 한인이 많은 브리즈번에서 경험했다.)
하지만, 어쩌다 같이 비즈니스를 오픈하였다가 다른 길로 갈라서기도 하니, 동업에 대한 일은 깊이 숙고하여야 할 듯싶다. 오죽하면 동업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미각'에 마리네와 벨러리네와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불고기를 석쇠에 구워 먹는 뷔페 레스토랑인데, 그들은 석쇠를 처음 봐서 갈 때마다 딸과 내가 불고기 굽는 걸 안내 해 드린다.
짐 할아버지는 고소한 맛,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다. 지지직 대며 익어가는 세 종류의 고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뒤집어 굽는 일을 재미있어하고 즐기며 드신다.
나는 그때마다 코리언인 게 으쓱해진다.
특히 이곳 '미각'에선
카운터 앞에다 '태극기'를 세워놓고
가게 문을 연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도 흘깃흘깃 우리나라의 상징 태극기를 바라본다. 자랑스럽다가 든든해지다가, 더러는 뭉클한 적도 있다. ( 특별한 애국자가 아님에도.)
태극기만 바라봐도 이렇게 감동이 밀려드는데, 나중에 점점 한인들이 모여들어 여기, 번다버그에 '코리어 타운'이 형성되면 어떤 느낌일까.
그렇다. 난 저 태극기가 민들레 홀씨 되는 상상을 한다. 코리안 홀씨가 솔바람 타고 훨~훨~ 우리 곁으로 날아들어, 여기 번다버그에 뿌리를 내려 '민들레 영토'가 되면 좋겠다고.
저 태극기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코리아타운'이 생겨, 소복소복 소담스런 코리언 영토를 만끽해보고 싶다고. 언젠가는 꼭 누려보고 싶은, 꿈 한번 오지게 꾼다.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 좁은 길이었다해도 / 고독의 진주를 캐며 /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이해인, <민들레의 영토>.
꿈 꾸는 자에게 꿈은 이루어질 걸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