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 둘

- 약국 사람

by 예나네

Y엄마를 톡톡 터치하여 불러온다.

똑 부러지는 그녀 특유의 맛깔나는 깔끔한 언어와 진정성 어린 표정이 내 마음의 액정에 뜬다. 5학년 Y의 담임선생이 조회시간에 이야기 한 건데, 우리나라 엄마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멘트란다. 그날 Y의 담임은 한 시간 가량 늦은 시간에 헐레벌떡 나타났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을 못 볼 뻔했어. 왜냐하면 내가 너희만큼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어버렸었거든. 그런데 다행히도 아침에 막 찾았단다.’하며 그 담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쉬더라는 거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담임선생이 고양이 한 마리 잃었다고 결근을 한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정신 나간 선생이라고, 자모들의 항의가 쏟아졌을 거라는 그녀의 멘트에 우리는 허허 웃었다.

그런데 Y의 담임선생 말속에 스며있듯이, 이 나라 사람들의 동물을 아끼는 수준은 상상 이상이다.

예컨대 S 언니네 집 정원에 어느 날 뱀이 들어왔다. 언니 남편은 급히 커다란 막대기를 찾아들고 뱀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를 본 이웃집 백인이 급히 달려왔다.

‘너는 저 뒤에서 그냥 잠자코 지켜보고 있어 봐’라고 하더니, 지휘봉처럼 생긴 막대 하나를 달랑 들고 나와서, 지휘자처럼 막대를 흔들며 뱀과 호흡을 맞추더란다. 커다란 쓰레기통 안으로 뱀을 유인하더란다. 그 속에다 뱀을 쏙 집어넣더란다. 쉰내 나는 쓰레기통을 자기 승용차에 통째로 싣더란다. 먼 숲 속까지 운전하고 가서는, 뱀을 자유롭게 풀어놓더란다.

‘그 뱀은 독이 없어 사람을 헤치지 않는 우리의 좋은 친구’라는 말을 전해 들은 S 언니는, 무작정 뱀을 때려잡으려고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있던 남편의 손이 괜히 부끄럽고 민망하더란다.

마지막, 호주 약사인 지인을 노크해서 부른다.

약국 동료가 이틀 동안 연가를 낸 사연이다. 강아지가 뱀한테 물려 병원에 데리고 갔다나. 12시간 안에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는데, 다행히 강아지가 살았다고 박수를 받았다나. 뱀한테 물리면 피가 응고되지 않아 사망에 이른다고.

그래도 그렇지, 하루나 반나절이면 이해가 되지만 이틀 동안이나 강아지 때문에 연가를 냈다니, 내가 의아해하자 지인은 그런 일이 다반사라며 또 빙그레 웃는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물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었다. 10여 년 전 호주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내 방으로 오동통한 도마뱀 한 마리가 까만 눈을 동그랗게 번쩍대며 들어왔다. 나는 징그럽다며 아우성을 쳤다. 그 당시만 해도 내 인식은, 동물을 보면 무조건 파리채를 들고 잡아 없애는 거라 단정했다. 죄책감도 없었다. 내게 불편한 동물은 죽이는 게 관례였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길들여져 왔으니까.

그러던 내가 달라졌다.

집안에서 도마뱀을 만나면 장갑을 먼저 낀다.

몸체를 살짝 잡아서 밖으로 보내주고 있다.

인간이 사는 곳 어디에든 범죄도 발생하고 좀도둑도 있지만, 이 나라 인식의 기본 틀은 하나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긴다는 거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타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습성이 그저 이들은 몸에 밴 듯하다. 그 대신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일을 했다가는, 이후로 그 사람은 누군가의 마음에서 블랙리스트가 된다. 즉 신용을 잃어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어진다.

예를 들면 자신이 이혼을 했든, 계모나 계부가 되었든, 그런 건 괴의치 않는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단지 그 사람만의 사생활이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감추고 싶은 사생활이지만, 이들은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정직하고 정당한 정보에 정예화되어있다. 이들은.

사족을 단다.

지인의 약국에 어떤 손님이 억지를 부려서 이 앳된 약사가 울었다. 그것을 본 동료가 나섰다. 그 손님을 뒤따라 나가 그를 불러 세워서 잘잘못을 따졌다. 그리고 다음부터 이런 무원칙을 일삼으려거든, 다시는 우리 약국에 오지 마라며 경고를 했다면서 위로해주더라고.

이처럼 이 나라 문화는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대신, 원칙에 어긋나는 사람은 가차 없이 고립시키는 문화를 지녔다. (물론 개인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사회의 통상적 구조가 그렇다는 거다.) 한국보다 더 유연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엄중하고 예민하다. 좋게 보면 그렇고, 달리 보면 정이라곤 없다. 어쩌다 식사초대를 해도 빈 손으로 오거나 아주 조그마한 초콜릿 하나 달랑 들고 들어온다. 대신 이야기를 마음 가득 넣고 와서 속내의 이야기보따리를 다 풀어놓고서야 일어선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이유가 이 나라 사람들이 마음바탕이 착해서만 그런 건 아니다. 법규를 어기면 지불해야 할 페널티가 우리나라보다 서너 배는 더 비싸서 그렇다.

그러고 보면, 원칙을 정해놓고 이를 잘 준수하게 하면, 자연히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훌륭한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 멀리 보면, 보다 고급한 문화가 보장된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받은 건강한 정신의 유산은 바로 해피투게더, 미투로 가는 길이다.

힘이 악용하는 인권침해 걷어내고,

힘이 선용하는 인권존중 찾아내는.

분명 나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 타인의 말을 무시했다. 나의 이득을 취하려고 내 잇속대로 우길 때가 많았다. 낯부끄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성이 된다.

그릇이 그리 큰 사람이 되지 못하니 대단한 선행을 기획할 수는 없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약자의 편에 서고, 청년들에게 다가가 말 한마디, 글 한 줄로나마 희망을 보태주려 나름 노력한다. 부끄럽지만, 뒤늦게라도 나의 태만을 깨달아 섣부른 성질머리를 바로 세우려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해피투게더,
함께 있어 행복한.

내면의 원칙이 바로 서는 그 엄중함으로써,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던 지독히도 이기적인 유전자, 인간의 그 유치한 졸부 기질을 도려내고 “해피투게더, 미투” 의 깃발을 내 안에다 먼저 꽂는다. 꼭꼭 눌러 어린 나무처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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