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젊음의 태양'을 마시는
- 워킹홀리데이 온 대한민국 청년들
바닷물을 눈덩이 굴리듯 철썩, 처얼썩 파도에 말아 나에게로 쏴~쏴~ 밀려오는
바다를 보다 보면, 나도 파도치는 바다의 일부가 된다.
마음이 모래알처럼 가라앉을 때 찾아가는 엘리엇 헤드 비치. 거기서 파도보다 더
파워풀한 파도를 보았다.
호주 번다버그에 온 한국의 청년들.
가슴에 대망을 품고 태평양이라는 대양을 건너온 청년들. 그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심장이 곧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 파도 이리니. 푸른 가슴에다 푸른 꿈을 출렁출렁 품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부터 이 바다까지 멀다 않고 건너온 파도.
유고슬라비 언 한 커플과 일본 청년 한 사람도 함께 합류한 걸 보면, 그들과도 더불 더불 마음을 뭉개며 푸르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 이리라.
번다버그에 살면서도 말로만 듣던 이 청년들을 한꺼번에 목격할 일은 없었는데, 운 좋게도 여기 바다에서 이들 무리를 본다. 꼬리잡기 게임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다 보니 만조가 된 바다처럼, 내 마음도 순식간에 파도로 출렁거린다.
피붙이, 맞다.
같은 혈육의 무리를 예고도 없이 이국의 바다에서 맞닥뜨렸으니. 것도 한껏 푸르른 젊음으로 출렁이는 바다들을.
연령대가 24세에서 31세까지 100명이라 한다.
백패커에서 함께 잠자고, 같이 밥해 먹고, 때론 동동주나 참이슬도 마실 거고, 그러면서 밥벌이, 여기선 농장일이 주업 이리라.
주키니, 토마토, 라이치, 망고, 아보카도, 고구마... 주로 이런 농작물의 열매를 거두어들여 포장하는 일을 도맡아 하리라. 워킹 홀리데이 세컨 비자를 받기 위하여 농장지역인 여기로 몰려드는 우리의 청년들.
오늘은 이 농장, 내일은 저 밭으로 돌아가며 일하고 시간당 $23.66을 받거나, 쥬키니 한 바케스에 $2.2, 캡시컴 $1.0, 칠리 $5.0, 토마토 $1.8, 체리 토마토 $5.3씩 계산하여, 고귀한 땀방울의 대가를 속 지갑 속 그 깊숙한 속 주머니에다, 차곡차곡 챙겨 고이고이 쟁이리라.
저녁이면 지친 팔다리를 백패커의 이층 침대에 누이고, 낮에 벌어들인 '달러'를 '원'으로 계산해 볼 것이다. - 이때는 '달러'가 '원'보다 좀 더 비싸면 좋으련만.
오늘은 얼마를 벌고, 얼마를 먹어야 하고, 얼마를 숙박비로 지불하고, 내일은 무슨 작물을 심거나, 거둬들일지를 낮에 노동하던 그 군살 배긴 손가락을 치밀하게 곱아 보아야 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
정작 호주 젊은이들은 몸을 움츠리는, 덥고 땀내 나고 고달픈 농사꾼 살이. 우윳빛 여린 살빛이 구릿빛으로 꾸덕꾸덕 물들어 가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 같은 생. 그래도 내일 할 일이 남아 있으면 타는 목마름에 생수를 얻은 듯 더없이 반가울 터.
고국에선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생애 처음 해보는 농사일일 게다.
이 젊은이들을 보낸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형도, 머나먼 고국에서 그저 '가가 오늘은 뭔 일을 할꼬', 하며 눈을 찡그리며 손을 가려 뜨거운 해를 바라보고, 밤엔 '야가 잠은 잘 자는가', 하며 긴 동짓 밤, 때로 뜬 눈으로 지새울 게다.
그러다 그럴 게다.
'오 신이시여, 젊을 때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데, 부디 우리 그놈 몸만 건강하게 굽어살펴 주소서.' 하고 두 손을 고이 모을 게다.
어느 날 번다버그 엘리엇 헤드비치에서 본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농장일을 쉬는 토요일에 이렇게 뭉쳐서 시원~한 파도로 몰려가고 몰려오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모습.
이 주변 바다엔 까만 바윗돌이 많은데 오손도손 의지하는 풍경이 사람살이를 닮았다.
바닥의 모래 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바닷물이 참 맑다.
집에 돌아와서도, 보름달 닮은 원을 그리며 추는 전통 춤 강강술래가 연상되던, 바닷가 그 놀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둥근 대보름달 아래서 하나의 원을 그리며 추는 강강술래를 몇 번이고 재생하며 감상해보았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
이역만리 떨어져 있어도 혼자가 아니다.
100명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어울려 등을 물고 지탱해주는 거대한 희망 파도이다.
거룩하고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 딸이다.
젊음의 태양을 마시러 먼 이국땅에,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있다.
* 제목,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 김수철의 노래 '젊은 그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