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말랑한 알 하나를 바다 둥지에 낳고 있었네

- 엄마와 딸

by 예나네


엄마가 묻는다.
달 보러 다시 와 볼까?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본,

촛대바위를 철썩철썩 철썩이며 바위틈으로 거품을 새하얗게 낳는 물살이 장관이었다.

우린 그 풍경에 마음을 다 내어 주고 있었다.

거긴 바로 달이 뜰 동쪽이었고,

오늘 바로 만월이 뜨는 보름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또 물었다.
"달 보러 이따 함 와 보까?"
"그래. 와 보자."
딸은 순순히 응수했다.

그래, 6시 10분 pm. 에 집을 다시 나왔다.






아직 달 뜨긴 이른 시간이다.
서쪽 바다를 감도는 감빛 노을이 하늘 가득 담겨 찰랑찰랑 넘치듯 바다로 흐른다. 바다를 물들인 노을빛은 하늘빛까지 촉촉한 감촉으로 반사하면서, 짙어오는 절정의 오렌지 빛 색채를 맘껏 발산하고 있다.


나간 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는 바다는 바람이 몹시도 불고 파도가 가히 높다. 총각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한껏 고조된 파도와 바람에다 근육질의 온몸을 실어 카이트 서핑을 하고, 세명의 처녀들은 엑트리스인 양 비키니 입은 몸매의 방향을 요리조리 바꾸어가며 사진 찍기 놀이에 푹 빠져있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바다의 풍경이 푸덕푸덕 살아난다.




물이 아직 덜 찬 한쪽 바다는 얼굴이 해맑은 소녀 같다. 모래바닥이 투명하게 비치는 개울 닮은 바다 한 켠을 사람에게 내어놓는다. 나는 맨발을 들여놓고 찰방찰방 물살을 따라다녀 보았다. 뒤에서 놀던 물살이 내 보드라운 정강이 살을 간질간질 간지럽히며 장난을 걸어온다.


모래바닥에서는 넓적 미끈한 몸에 모래를 뿌린 듯 덮어쓴 가오리가, 모래바닥에 몸을 바싹 붙이고 미끄러지듯 헤엄을 치고 있다. 녹두알 만 한 까만 눈알이 콕 박히듯 몸 위쪽에 붙어있는, 꼬리가 가오리 연처럼 기다란 이 바다의 생명체는, 푸른 바다 물살을 따라 갓 들어온 듯하다. 모래색으로 보호색을 한 살아 움직이는 가오리를 난생처음 본 내가 촐랑촐랑 따라다니자, 가오리는 숨을 곳을 찾느라 온몸에 진땀이 난다. 그런데 연인인가. 남매인가. 이 두 마리의 반가운 생명은.

"어, 빅 피시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이 복합적 랭귀지. 코리언과 잉글리시에, 배우 놀이하던 세 처녀들이 호호홋 몰려왔다.

나는 유년의 개울에서 송사리 떼를 졸졸 좇아 다녔듯이, 무릎까지 걷어붙인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가오리 꽁무니를 우우 따라다녔다.

"엄마, 엄마 꼭 어린애 같애.

물가에서 지켜보던 딸이 손뼉을 치고 후후훗 웃는다.


한바탕 웃는 소리에 해가 새빨갛게, 지평선 너머로 새빨간 거짓말처럼 거의 다 떠밀려 넘어가고 있었다. 우린 영화같이 아름다운 붉은 노을을 뒤로하고, 낮에 봐 둔 그 언덕바지 바다 풍경 속으로 차 머리를 돌렸다. 동쪽과 서쪽 하늘은 한없이 멀 것 같지만, 단지 1분 거리에 있다. 아니 뒤로 돌아서기만 해도 동쪽 하늘이 바로 눈에 잡힌다.




기다리는 시간은 도무지 안 올 것 같다가도, 달이 차면 반드시 온다. 더더구나 달, 하늘에 뜨는 보름달이 제 시간을 어기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달은 6시 53분에 감빛 쟁반만 한 동그라미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면이 아니라 부피로 올라오고 있었다. 동그라미가 그냥 차 오르는 게 아니라 공처럼 구르면서 살이 부풀듯이 차 오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달은 말하고, 기억하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 같았다. 두둥실 뜨는 저 달이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딸은, 달이 동쪽에서 해 같이 뜨는 광경을 첨 봤다는 엉뚱하고 생뚱맞고 생소한 말을 지지배배 재잘대는 아기 제비처럼 뱉어놓고 있었다. 서른이 된 딸의 그 조금 난감하며 무감한 고백을 들으면서 만월은 점점 노란색을 띠며 우리 가까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보니 하늘은,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달이 꽉 찬 노른자 하나를,
바다에 분만하고 있었다.
바다는 달둥지였다.
안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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