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를 하려고 밀가루를 꺼냈다.
천정 팬이 돌아가는 걸 잊고 무심코 꺼내놓는 바람에 밀가루가 뽀얗게 바람을 탄다. 순식간에 주위가 하얗게 바뀌고 말았다. 나는 바람에 실려 간 가루를 포기하고 남은 가루에다 한 줌 더 보태어 반죽을 했다. 해물 부추 호박 감자 당근을 다져 넣어 색이 고운 봄꽃같이 고소한 해물야채 전을 부쳤다.
일을 마치고 온 둘째 딸이 ‘아이 맛있다, 맛있다’ 하며 먹어주는 게 힘이 나서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걸 요리해놓는다. 불고기, 잡채, 김치찌개…. 한국에서 먹던 밥상보다 더 한국적 상차림이다.
거기서 끝나면 퍼펙트할 텐데,
불필요한 반찬 한두 가지를 내 입으로 밥상머리에다 보태놓곤 한다.
성격이 좋다는 아이라도 거의 매번 유사한 주제의 식상한 소리를 들으니 은근슬쩍 싫은 속내를 내비치더니, 언제부터인가 못 들은 척하고 다른 모드로 화제를 이끌어 나아간다. 나의 건조한 목소리는 아이가 잡는 그 바람결에 말을 얹어, 나뭇잎이 바람에 실려가듯 비교적 홀가분하게 후훗 거리며 딸의 말에 딸려간다. 그러다 다음 식사시간이 되면 내 입은 마른 밀가루 같은 테이프를 또다시 작동한다.
마른 계절도 바람에 딸려가는 건 마찬가지다.
마른 가지 끝의 마른 잎은 바람의 손에 이끌려 다니다 마른땅으로 마르게 떨어진다. 물기 빠져 헐벗은 마른나무는 찬 바람 속에서 하얗게 떨고 서 있어야 한다.
바람은 호령을 하듯 휘파람을 불어 가르랑 거리는 낙엽들을 요리조리 몰고 다닌다. 가끔 비가 와서 낙엽들이 반죽처럼 서로 착 달라붙거나 얼어붙어서 바람도 어쩌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건 잠시 잠깐이다. 나무의 몸통이 피돌기 같은 물기를 머금을 때, 파릇파릇 연둣빛 뉴 시즌이 나무의 몸통을 뚫고 톡톡 터져 나온다.
물 빠진 엘리엇 헤드 비치에 갔는데 거기서도 바람이 불었다.
사막같이 하얗게 마른 해변에 하얀 모래바람이 일고 있었다. 내 발목을 따갑게 때리던 모래바람이나, 주방을 초토화하듯 흩어지던 하얀 밀가루나, 딸의 말 바람에 실려가는 에미의 입이나 바람의 나래 위에서 하얗게 날아가는 건 똑같았다. 어쩜 바람은 제 바람 끝에 잡히는 것들을 가지고 게임하듯 장난을 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잠재우는 건 물 한 컵이었다.
날씨가 훅 하니 더워, 옆에 딸이 더울까 봐 천정의 선풍기를 바로 끄지 못했다. 대신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을 개었다. 바람은 그제야 밀가루를 놓아주었다. 한 컵의 물에 몸이 잠긴 밀가루의 끈적한 입자들은 서로서로 유연하게 엉겨 붙어 서로를 꾸욱 껴안고 있었다. 물 한 잔이 든 반죽이 풍력을 이길 정도로 위력이 세다는 것을 이전엔 미처 몰랐다.
엘리엇 헤드 비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썰물이 쓸고 나간 자리에 물기가 아직 못다 빠진 맑은 웅덩이. 그보다 조금 더 깊게 남아있던 파란 물. 그것들은 내가 밀가루를 갰던 물 한 컵의 확대경이었다. 물 한 컵뿐 아니라 그저 물기만 스며있어도, 모래와 밀가루는 바람에 이끌려가지 않았다.
나도 마음이 건조할 때면 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앉힌다.
계절의 몸도 피돌기 하듯 물기를 머금어
다시 제 몸에서 봄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