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이 이어지는 붉은 하늘에서 수천 마리 까만 새떼를 보았다. 나래 치는 소리와 새 특유의 울음소리를 몸속으로 숨긴 채 점점이 하늘을 건너는 모습이 절경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때가 되면 새떼를 기다리며 공중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비 오는 날에도 새들은 어김없이 노을 지는 그 시간에 무리를 지어 출현했다. 사람의 삼시 세 끼처럼 새들에게도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정해져 있나 보다.
그런데 왜 새들은 다 저녁에 대이동을 하는 것일까.
어느 날 번다버그 토박이인 제네뜨한테 물어보았다. 그녀는 대뜸 Those are good fertilizer.라고 했다. 대농장주의 눈에는 새떼들이 새똥으로 보이는가. 그와 반대로 나는 그 시간에 인근 공원을 산책할 때 모자를 챙겨야만 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숲을 산책하게 되었다. 오후 네 시경이었나. 나무 꼭대기에 뭔가 까만 보자기에 싸인 물건 같은 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같기도 신음소리 같기도 한, 시리릿시리릿 대는 소리가 섬뜩했다. 자세히 보니 수천 마리의 검은 박쥐 떼가 나무의 혹처럼 숲 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낮엔 거꾸로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저녁때가 되면 빽빽이 저녁노을 위를 수놓으며 황홀한 풍경을 보여주던 검은 새 떼, 그들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그 근처로 가지 못했다. 왠지 그들이 흉물스러웠고 혐오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한동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쥐도 새도 될 수 없어 회색지대 Gray zone라는, 불온으로 낙인 된 비운의 동물. 내가 그들을 본 지 반년이 지났다. 그러나 박쥐들은 모기처럼 내 피를 빨아먹지도 않았고, 호주의 여느 까치처럼 뾰족한 부리로 내 눈가를 쪼는 공격도 하지 않았다. 물론 단 한 번도 내 머리 위로 똥을 싸지도 않았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적대적이며 냉소적으로 나쁜 동물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들었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라. 내면을 보고 그들의 중심을 보라’는 말이 떠올라 박쥐에 대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박쥐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 착한 동물이다. 시끄럽게 울지도 않는다. 박쥐의 음파탐지기는 사람이 만든 레이더보다 수백만 배 더 효율성을 지닌 초능력적이며, 30미터 거리에 있는 초파리 같은 먹잇감을 몇 초만에 감지한다. 모기나 해충을 잡아먹어 유익을 주며, 특히 중국에서는 박쥐가 먹은 ‘모기 눈알’을 배설물에서 채취하여 피부나 혈관, 내장에 생기를 주는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미국 텍사스의 오스틴 시에서는 석양을 배경으로 150만 마리의 박쥐 떼가 출현하여 그 비행飛行을 보려고 연간 십만 명의 관광객이 콩그레스 에비뉴 다리로 몰려든다. 이들도 처음에는 혐오감과 두려움을 준다고 퇴치하려고 했으나, 환경전문가들이 박쥐가 유익 조이며 평화 조라고 알려서 도시의 관광자원으로 바뀐 사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담황색 과일박쥐고기가 호텔 요리로 나오기도 한다.
우리 사람들이 그레이 존의 대명사로 박쥐를 분류해놓았지, 그들은 부족을 이루어 자기들만의 생을 꾸려나가고 있을 뿐이다. 따져보면 이중성과 무연한 사람은 없다. 여성에게도 아니무스라는 남성성이 있으며, 남성에게는 아니마라는 여성성이 잠들어있다. 지킬과 하이드에는 선악의 이중성이, 새것 속에 헌것이 있다. ‘죄 없는 자 이 여자를 돌로 쳐라’며 예수가 막대기로 땅바닥에 쓴 글씨도 인간의 선한 외모 속에 악이 존재함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외모로 인해 쥐와 새 사이에서 오해를 받아온 박쥐가 유익한 동물로 환영을 받고 있는 사례는 새로운 세계관을 던져준다. 글로벌 시대인 요즘은 회색지대에 살아가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꽤 많다. 그들은 어디서든 움츠릴 이유는 없다. 박쥐가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고 가 아니라, 새도 되고 쥐도 될 수 있듯이, 그들은 양국의 문화를 서로 교류하고 견인해줄 위치에 있다. 물론, 그레이 존은 이뿐만이 아니다. 불행과 행복 사이, 절망과 희망 사이의 간극도 그레이 존이다. 그 존 zone에서는 생성의 물결이 가장 강렬하게 작동되는 지대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행과 절망을 가로질러 행복과 희망으로 나올 책무가 있고 권리가 있으니까. 그래, 그레이 존 Gray zone은 블루 오션 Blue ocean으로 향하는 발화지점이다.
*블루오션 blue ocean - 포화상태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기존의 시장인 레드오션 red ocean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 등을 적용함으로써 자신만의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