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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l 16. 2022

마음에서 빛 고이던 날


꽤 자주 버넷 해드 비치를 따라 산책을 한다.  



해변길을 따라 몬레 포까지 한 바퀴 돌고 오면 거의 10,000 스텝이 찍힌다.  하루 목표가 6,000 스텝이니 남는 장사다. 이곳은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는 걷는 코스이니 이제 주변의 풍경 익숙하다.  주 보는 사람도 생기니 서로 반가운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은 공중에 노란 헬리콥터가 탈탈 탈거리지 않는 걸 보면 응급환자가 없나 보다. 바람 부는 쌀쌀한 날씨인데 아픈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대신 바다 한편에 카누가 떠 있고, 우리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가족이 한 무리 지나가고 나자, 맞은편에서는 백인 할머니가 까만 개까지 태우고 누워서 타는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돌리며 오신다.  와중에도 활짝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의 뇌리로 칠순의 머니가 되어도 저렇게 싱싱할 수가 있구나, 하며 부럽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간다.



어쩜 우린 해변의 풍경과 맑은 공기보다, 이처럼 낯익거나 생경한 사람들과 잠깐이지만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자극을 받기 위하여 익숙해진 이 길을 더 즐겨 찾는지도 모른다.

 자주 오다 보니 사람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만나는  특별히 길들여진 장소도 생긴다. 이곳에 올 때마다 가슴 설레하는 해변가의 꽃밭이.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궁금해지는 이 꽃밭은 산책길 건너편 집주인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서너 해 동안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은 없었다. 분명 마음이 따스한 분들일 것이라고 나 혼자 상상했다. 


꽃밭을 지나칠 때마다  꽃밭을 즐기다 다시 내 길을 걷곤 했었다. 마치 꽃밭에 초대받은 손님인 양, 미지의 그들 정성들어간 꽃밭에 머물곤 했었다. 갈하게 꽃밭 잡초를 뽑아놓고, 데이지, 난초 같은  꽃을 심어주고, 조약돌을 깔아서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만들어놓고, 아들 장난감도 비치해둔 이곳은 나의 모든 시름을  녹아내리게 하는 무언의 이 있다. 어느 날은 헌 어린이 장화와 4인 가족의 운동화에다 나란히 꽃을 심어 둔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이곳에 오면 괜히 이 꽃밭 속을 오래 서성이곤 한다. 무당벌레 조약돌도 만져보고 아이처럼 쪼그려 앉아서 꽃들을 쓰다듬기도 한다.





오늘도 난 햇살 비치는 해변의 꽃밭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분을 만났다.
누굴까, 궁금했던 이 꽃밭의 주인공을.


노란 뚜껑이 달린 쓰레기통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있 그 댁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꽃밭이 너무 이쁘다고 가 먼저 손짓으로 표현을 했더니 화장까지 곱게 한 할머니가 데이지 꽃처럼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내가 있는 꽃밭으로 건너왔다.


20년 전부터 당신 남편이 이 작업을 시작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관할 시청에서 싫어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하고 내가 의아해서 묻자, 시청에서는, 바닷가답게 그저 자연 그대로원시적 풍경 유지환경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은 시청에서도 이 꽃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바로 옆집 아줌마가 그림을 잘 그려서 바닷가 사방에 널린 자갈을 주워다가 저 당벌레 같은 알록달록한 앙증맞은 곤충을 물감으로 칠해다고. 이 꽃밭 창시자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다며 할머니께서 눈을 비비신다. 바람 부는 날씨 속에서 얇은 옷을 입 할머니, 낯선 동양 여인에게 반색을 하며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그녀가 추워 보여서 인사를 나누고 보내드렸다.


정겨운 사람을 만나서 그런가. 시계를 보니 아직 2,300 스텝밖에 못 걸었는데도 벌써 만보를 채운 듯 마음과 몸이 사뿐사뿐 개운해져 있었다. 상큼한 바닷바람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다 내 것인 듯 마음 부자가 되어있었다.  


이 따끈따끈한 돌 속처럼
내 마음속에도 빛이 고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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