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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l 12. 2022

어느 날 문득 느낌

- 브런치를 재개하기로!



며칠 전 베란다에
아웃도어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딸은, 탁자와 벤치의 보호를 위해 3000불의 비용을 들인 건 좀 과하다고 했다. 차라리 두 개를 3년에 한 번씩 갈아 치는 게 더 수월하고 경비도 절반밖에 안들 텐데 굳이 블라인드를 했냐고 물었다.

물론, 내가 애지중지하는 원목 탁자와 벤치가 정서향 베란다에서 작열하는 태양과 거친 비바람에 시달릴 때마다 마음 쓰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유라는 건 대자면 더 많다. 대표적으로 그렇다는 건데, 딸은 한 번 픽, 웃는다.  - 그녀의 저 픽, 에도 수많은 이유가 들어있 것이니.

그런데, 확 트인 두 공간을 막아서 두 벽이 된 블라인드는 생각보다 이득이 많다. 겨울철인 요즘 (이곳은 남극, 호주다.) 따듯하고 아늑한 나의  방 한 칸이 되었으니.



햇살이 이 방안에 모이니 좋고, 비가 와도  끄떡없으니 좋고, 그것을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으니 마냥 흐뭇하다. 

5년 전 이사 온 후 시나브로 세간이 많이 늘어나 복잡해진 집에 새로운 방이 하나 지어졌으니 나는 요즘 독서, 음악 듣기, 뜨개질을 이곳에서 하게 된다.

사실, 시공사와 계약을 한 지 9주 만에 설치하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고민이 많았었다.  할까 말까, 계약을 파기할까, 말까 망설이게 했었는데, 하길 잘했다.



방 하나의 크기인 베란다는  95% 밖이 훤히 보이는 망사형 두 벽을 설치해서 생겨났다. 두 개의 벽이 된 진청색 망사 벽에 대하여 시공자인 카펜터 필립이 "앱솔루틀리 어매이징!" 하다고 할 만하다. 내가 있는 안에서 밖은 훤히 보이는데 밖에서는 나의 실루엣도 볼 수 없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난 이제 옆집 릭 할아버지가 하루에 몇 번씩 양철로 된 요란한 게라지 문을 열고 SUV 스바루를 몰고 외출을 하는지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 가든의 버드 베쓰에는 몇 마리의, 어떻게 생긴 새들이, 하루에 몇 번씩 제 깃털을 담그러 오는지, 그리고 물을 몇 모금이나 마시는지를, 바로 앞에서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인가. 얼마나 똑같은 새가 내 집 울타리 꼭대기 앉아 얼마나 괴상한 소리로 꾀액 꾀액 대는지,  고올 골, 공중을 고 날아가, 빗소리는 몇 박자로 떨어지는지를 분위기 있는 이 방에 가만히 앉아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횡재라서 그런가. 난 요즘 세상을 구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만큼 나 홀로 마냥 차오르는 희열을 감출 수 없다. 희열의 크기와 세기와 벅차오름이란!




지금 빗줄기가 밖에서 또렷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또또렷, 또또 또또 또또렷, 흐린 하늘 아래로 투명 그물망 바깥쪽에 맺히며 번지는 이 물방울무늬를 어느 화가가 이리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도 그건 불가능하다. 아마도, 자연 자체를 뛰어넘는 화가나 사진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게다.

 그물 망사 바로 너머 내가 심은 들꽃들이 자란다. 잔잔한 노랑꽃, 작고 이쁜 하양 꽃, 핏빛처럼 붉은 꽃들은 비람에 살랑, 춤추듯 흔들리고 있다.


많은 이유 , 가장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건 뭘까. 어쩌면, 가장 현실에 직면한, 현실성이 짙은 성향을 띠 아닐까. 말하자면, 내가 있는 방안으로 빗물과 세찬 바람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 든한 바람막이가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탁자와 벤치가 비에 젖지 않는다는 안도감. 절실히 원하던 이것이 내 마음 바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난, 많은 다른 걸 포용하고, 사랑다. 빗방이 방에 무단 침입할지라도 용서한다.


앞으로 난, 작은 이 방에 머물면서 한국에서 갓 발행한 책을 보내준 사람들과, 엄마가 글을 다시 쓰기를 요구하는  딸의 소망과, 나의 마지막 남은 의지를 버무려서 글을 쓸까 한다. 오래 묵혀 둔 영어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홍차의 향들을 미하면서.



 




* 후기 ; 블라인드를 하길 참 잘했다. 겨울은 따스하고, 삼계절은 그늘을 주니 시원하고 아늑해질 것이다. 2022. 8. 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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