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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04. 2019

산 자와 사자가 이웃으로 사는 나라

처음 목격한 건 2007년도였다.


호주에 와서  아이들을 학교에 픽업해주던 첫날, 2차선 차도를 따라 축구장 몇 배 크기의 공동묘지가 이어져 광경을 보았다. 맞은편엔 산 자들의 오렌지색 지붕들이 묘지만큼이나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자의 동네와 사자의 마을이 이웃해 있다는 게 낯설 뿐만 아니라 섬뜩했었다. 그때만 해도.


여긴 우리나라처럼 봉분 위잔디가 자라묘지가 아니었다. 시멘트로 덮개를 하거나( 전가족을 층층으로 함께 매장도 한다고.), 사자의 관 위에다 생명나무를 푸르게 거나, 화장을 하여 터를 작게 하고 묘비를 세워놓기도 하였다.


묘지 앞엔 하늘나라 간 아기의 장난감도 있었고, 생전에 활짝 웃는  사진도 새겨 넣기도  하는가 하면, 믿음의 십자가도 세워 두었다. 그런 공동묘지는 도심뿐만 아니었다. 비치 메모리얼 파크라는 이름을 달고 바닷가에도 있었다. 심지어는 내가 사는 시골마을 샤론 컬리지라는 여학교 앞에도 공동묘지가 있어서, 머리를 두 갈래로 단정하게 땋아 내린 여학생들이 묘지 앞을 지나쳐야만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사자를 떠나보내는 의식도 자유롭다.


죽음 후 사흘장이나 닷새장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병원과 상가의 개별적 사정에 따라 날짜를 조정하여 장례를 치른다. 내 친구 리나네는 아버지 장례식을 돌아가시고 일주일 후에 치렀다. 방문하는 지인들은 조의금이 든 봉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관 속에  사자의 얼굴을 보고 만지고 입 맞추고 작별하고,  자 가족을 위로해주는 의식을 행한다. 가끔은 샌드위치 같은 핑거푸드를 한 가지씩 맡아 정성을 전하기도 한다.



이처럼 화장터와 장례식장과 묘지 맞은 편에도, 비즈니스용 오피스나 아파트가 묘지를 게의치 않고 세워진다.
어느 날 나는 공동묘지 앞에 숙소를 빌려 휴식을 취한 적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들여왔다는 전철역.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아파트먼트형 숙소는, 이 전철역과, 기차와, 가물가물 아주 높은 에스컬레이터까지 모두 통째로 한국에서 수입했다는 전철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물론, 곁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건 모르고 예약했었다.



시드니는 전철이 보통 2층인데, 이곳은 한국의 그것처럼 단층이며 좌석도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되어있다. 한국지하철을 탄 느낌이었다.



공동묘지는 전철역 맞은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끝 지점엔 화장터와 장례식장이 있었다. 그 옆 옆 건물이 내가 묵은 아파트였다. 이웃엔 신축 아파트도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산 자와 사자가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아파트 맞은편이 공동묘지다.내가 묵은 호텔은 아파트 옆옆 건물이다. 밤길을 걸어서 공동묘지 앞을 통과하여 닿은.



산골에서 자란 나는 동네 어귀에 공동묘지를 지나다닐 때마다 무서움에 떨곤 했었다. 그곳에선 온갖 귀신이 다 나온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땐 귀신 이야기가 스릴이 있어 어른들 앞에서 턱을 괴고 오금을 저려가며 흥미롭게 들은 적도 많다. 그래, 난 귀신을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공동묘지 옆엔 반드시 귀신이 산다고 믿어왔다.



몸의 피로가 천근만근으로 내 낡아진 바디를 내리누르듯 밀려와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내 몸은 고요한 시간 속을 파고들어 묘지 안처럼 파묻히듯 있어야 되살아날 것 같았다. 그래, 병원 대신 홀로 휴식을 취할 겸해서 이 숙소에 묵으면서, 난 묘지 옆에 귀신이 없다는 걸, 이순의 나이가 되고서야 확인했다.


깜깜 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 화장실을 갈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냉장고 문 속에도 귀신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 나라 사람들은 동네 옆에 공동묘지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집값이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며칠 그곳에서 묵으며 공동묘지 주변이라 해서 특별히 귀신이 없는 걸 확인하면서, 사람의 생각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공동묘지와 이웃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신이라도 붙은 듯,  끔찍한 생각을 해 온 내 묵은 사고를 떨쳐내게 되었다.


귀신을 털어낸 내 생각은 가벼워졌다.
공동묘지와 이웃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상하지도, 공동묘지 자체가 무섭지도 않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생각을 고착시키는,
쓸데없는 내 낡은 사고를 툭 툭 툭 깨트리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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